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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Mar 12. 2020

내 감정을 말로 다 담을 수 없는 이유



오래전 군대에서 겪은 일화가 있다. 서른평 남짓의 창고 네 개를 혼자 청소해야 하는 날이었다. 나는 부지런히 아침 7시에 일어나 급하게 아침을 먹고 청소를 하러 갔다. 창고는 난장판이었다. 그곳 창고의 용도는 의류 보관용이었던 터라 청결함이 꽤나 중요했고, 따라서 난 썩은 쥐 시체부터 새하얀 곰팡이, 바닥에 흥건한 물웅덩이를 없애야 했다. 한여름, 야외보다 더운 실내 창고에서 한참을 땀 흘리며 낑낑대며 열심히 청소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됐다. 사실 맘같아선 밥을 거르고 청소나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서글프게도 군대는 밥을 안 먹을 권리도 허락하지 않는 곳이다. 게다가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취사실에 갈 특권은 더욱이 허락되지 않는 곳이다. 샤워를 급히 하고 곧장 취사실로 달려갔고, 후다닥 식사를 '완료'했다. 꾸역 꾸역 식사를 해결한 후 다시 창고로 돌아왔다. 무거운 의류 박스들을 같은 종류 별로, 같은 사이즈 별로,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를 한참 동안 반복했다. 이따금씩 종아리를 타고 오르는 왕거미들과, 박스 밖으로 흘러나온 옷마다 꽃피운 새하얀 곰팡이들에 질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놀람은 얼마 가지 않았고, 이윽고 난 파충류 생태계의 조련사라도 된 양 그것들을 길가의 돌 보듯 여기게 됐다. 이후로도 나의 청소는 한참 동안 계쏙 됐고 대략 20시 쯤이 되어서야 생활실로 복귀할 수 있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터덜터덜 생활실로 복귀한 나에게 지휘관이 말을 건넸다.


"오늘 하루 일과 보고할래?"


나는 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창고 정리했습니다."




젠장. 나의 지친 하루가 고작 '창', '고'. '정', '리', 단 네 글자로 끝났다. 아무렴 언어가 포착할 수 있는 것이 고작 피상적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이렇게나 탈락되는 것이 많을 줄이야. 물론 '하루종일 청소했습니다.'라고 부연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는 군대라는 환경에서 자칫 '지금 일 시켰다고 유세부리는 거야?' 소리 듣기 딱 좋은 말이다.



사실 언어라는 것이 그렇다. 같은 공간에서도 인간이 감각하고 지각하는 것이 결코 같지 않다는 사실은 철학적으로나 과학적으로나 진즉 증명되었거늘, '서로가 느낀 다른 것'을 '하나의 단어' 안에 몰아 넣고 세운 규칙이 얼마나 공허하겠는가. 이는 연인에 대한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없어 답답해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공감할 것이다. 언어의 덧없음을, 언어의 유한함을. (만일 '사랑해'라는 말이 우리의 마음을 충분히 담아낼 수 있는 것이었다면 '얼마나 사랑하는데?'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라캉에 따르면 언어는 고작 상징계일 뿐이다.


P.S : '일만그릇'의 라멘을 만들었다는 사장님의 말 때문에 군시절을 회상하게 됐다. '창고정리'가 포착하지 못한 나의 땀방울 만큼이나 '일만그릇'이 미처 포함하지 못한 고됨이 부족할 리야 있겠는가. 단어 너머의 현상계를 보기 위해선 집요한 근성이 있지 않고선 불가능하리라.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재미있으셨다면, 심심하실 때 유튜브도 한 번 놀러와주세요^^

https://www.youtube.com/channel/UCT6CEgi8KQN2MCIvCLMl-b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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