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와 여행의 평행이론-
이동진 평론가가 영화 <Gravity>를 보고 남긴 한줄평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어떤 영화는 관람되는게 아니라 체험된다."
나에겐 <왕좌의 게임>이 그러하다.
왕좌의 게임을 처음 접한 것은 군시절이었다. 개인발전을 위한 동영상 강의 시청을 명분으로 부대 내 PMP 반입 허가를 받은 나는 강의는 커녕 왕좌의 게임만 왕창 넣어 들어가 매일밤 이불 속에서 '겨울이 다가오기를(winter is coming)' 기대하곤 했다. 사실 시즌1을 시청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익히 들은 명성이 퍽 실감 나지 않았다. 매회 한 시간 분량의 작품을 언제 다 보나 싶은 생각에 지루한 마음도 일었다. 하지만 시즌1이 끝나고 시즌2에 접어들며 GoT의 방대한 세계관과, 그 방대함을 실잇듯 짜임새 있게 수놓은 섬세함에 점차 매료되어 갔다. 그에 더해 모든 캐릭터들 하나하나의 입체감과 그들의 사연에 집중하노라면, 대개의 영화나 드라마가 함몰되어 있는 선인과 악인이라는 거친 이분법을 경계하고자 함이 느껴졌고, 이는 곧 인간에 대한 탐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음을 확신하게 했다.
제대 후 바쁘게 살며 한참을 잊고 살던 끝에 며칠 전에서야 시즌8 최종화까지 시청을 완료했다. 후문에 따르면 미국 극성팬들은 결말에 대한 아쉬움으로 재촬영 청원 시위까지 했다지만, 개인적으로는 깔끔한 결말이지 않았나 싶다.
GoT를 오랜 시간 시청하며 종종 든 생각은 한 편의 드라마를 보고 있다기 보다 긴 여행을 하고 있다는 착각이었다. 밤마다 자리에 누워 고작 손바닥만한 핸드폰을 들고 있는 모습이 여행이라고 주장하다니... 많은 이들은 이에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진지하게 주장한다. 여행과 판타지는 제법 닮은 구석이 많다고 말이다.
군입대 전 나는 홀로 배낭을 매고 미국에 한 달 동안 여행을 다녀왔다. 처음 여행을 떠난 지 3~4일이 지나기까지는 집 생각이 간절했다. '내가 너무 무턱대고 왔나?' 싶은 생각도 들고, 가족이 보고 싶기도 했다. 버스 타는 것부터, 식당에서 계산하는 예절 등등 뭐하나 생소하지 않은 게 없는 통에 익숙한 고향 생각만 가득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내 적응이 되고 부터는 그 생소함이 신비함으로 다가오기 시작했고, 스스로가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모험가처럼 여겨졌다.
왕좌의 게임도 마찬가지였다. 시즌1까지만 하더라도, 대체 이 세계의 국가는 몇 개가 있는거고, 그들의 이해관계는 어떻게 얽혀있는 것이고, 저 둘은 왜 싸우는 것인지, 저 사람은 왜 저리도 꼬여서 사람들을 골탕 먹이는 것인지, 기억해두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은 통에 드라마를 시청하는 것인지, 공부를 하는 것인지 헷갈렸다. 때문에 왕좌의 게임은 내게 깊은 집중을 요했고 그것이 부담스러워 시즌1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미국에서의 짧은 적응을 마친 이후 내내 여행을 만끽했던 것처럼, 왕좌의 게임도 시즌1을 통해 학습한 내용들이 이후의 관람에 나침반이 되어 난 유유히 GoT의 세계에 푹 빠져들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러고보면, 무언가를 온전히 즐기기 위해서 그 세계를 학습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여행의 한자는 나그네 '려', 다닐 '행'이다. 즉 나그네처럼 떠돌아다니는게 여행이다. 나그네에게는 한시도 확실한 것이 없다. 그날 잘 곳, 그날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끊임없이 발을 구른다. 혹 안정을 찾아 어딘가에 머무는 순간 여행의 진정한 매력은 증발하고 만다. 왕좌의 게임을 보고 있는 내 자신도 나그네 같았다. 설령 그것이 화려하고 생동감 넘치는, 고작 그래픽에 불과할지라도, 새로운 광경을 체험하는 나의 감정은 가히 칸트가 말한 숭고미에 비견하는 것이었다.
혹 아직도 <왕좌의 게임>을 보지 않았다면, 이번 겨울 GoT의 세계로 여행해보길.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재미있으셨다면, 심심하실 때 유튜브도 가끔 놀러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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