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큼 발랄 룸메 H의 이야기
H는 고동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똘망똘망한 눈을 한 친구였다.
첫인상은 해리포터와 스펀지밥의 중간 그 어딘가 ?
동생과의 10일간의 동유럽 여행이 끝난 뒤, 아직은 어색하던 기숙사에 돌아온 나와 처음 마주친 H는
다른 룸메들이 말한 새로 온 친구가 너냐며, 이름이 뭐냐고 해맑게 물었다.
나를 다른 독일인과 똑같이 대해주던 다른 룸메들과는 달리
H는 항상 날 신기해하며 질문이 참 많았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공통분모로 항상 이야깃거리가 넘쳐났으며
다음 학기에 일본으로 방문 학생을 간다는 그에게 젓가락 사용법과
동양 예절에 대해 가르쳐주며 점점 친해질 수 있었다.
H는 할머니가 짜주셨다는 폭닥해 보이는 주황색 스웨터를 겨울 내 항상 입고 다녔으며,
주말에 공용으로 사용하던 긴 복도를 혼자 청소할 땐, 이름 모를 노래를 자기 스타일대로 흥얼거렸다.
항상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장착한 채
주방에서 나를 만나면 그날의 기분을 물어봐주던,
그렇게 다른 독일인들과는 좀 많이 다르던 그가 어느샌가 점점 호감으로 다가왔다.
어느 날 그에게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날도 주방에서 저녁을 만들고 있었고, 주방 문으로 H가 들어왔다.
나를 발견하곤 평소와 같이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는데
"이번 새해에 뭐 할 거야?" 하는 그의 질문에
나는 독일 다른 지역에 사는 친구네에 놀러 가기로 했다는 대답과 함께
그에게도 새해 계획을 물어봤고,
그는 자기 남자친구와 뮌헨에 가서 시간을 보낼 것 같다는 대답을 했다.
아니 잠깐,
남자친구?
그렇게 짧고 얕았던 그에 대한 이성적 호감은 어느새 인간적 호감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렇게 H가 게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달라 보였던 점들이 좀 있었다.
가령 다른 룸메 남자들과 H의 관계성이랄지..
아직은 퀴어에 대해 보수적인 나라에서 온 입장에서
친구들이 진짜 있는 그대로의 H를 봐주고 전혀 거리낌 없이 대하는 모습이 참 신선하고 좋았다.
그 당시에는 '이게 선진국인가..' 싶기도 하고
지금껏 내가 보고 겪은 독일에선
독일인들은 주로 크리스마스를 가족들과 보내고, 새해를 친구들과 보내는 경향이 있었다.
한국에서의 난 딱 반대였는데 !
아무튼 크리스마스 주간이 되면 1-2주일간 내가 사는 기숙사를 포함해
학생비율이 높았던 내가 살던 도시 대부분의 기숙사들은 텅텅 비었다.
외국에서 온 친구들, 독일 태생 친구들 모두 가족들을 만나러
비행기를 타고 또는 기차를 타고 멀리멀리 떠났다.
기숙사 친구들도 모두 크리스마스 주간에는 기숙사를 비우고 각자의 집에 돌아가기로 했다.
크리스마스가 되기 며칠 전,
룸메들은 중세 컨셉의 크리스마스 마켓을 구경시켜 준다며 나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집을 나서기 전, 코트 하나 달랑 입은 날보곤 기겁을 하며
H는 노란 모자를, T는 두툼한 스키 장갑을 내 머리와 손에 각각 착용해주고
털모자를 처음 써봐서 어색해하는 나를 보며
룸메들은 너무 잘 어울린다는 말을 몇 번씩이나 반복해 줬다.
크리스마스 3일 전, H와 나를 제외한 모든 룸메들이 고향집으로 돌아가고
나는 H에게 "메리 크리스마스!" 라며 올해 마지막 인사를 하고 외출했다.
짧은 외출 후 돌아온 아무도 없는 깜깜한 기숙사에서 불도 켜지 않고 더듬거리며 겨우 내 방 문에 다다르자
발에 둔탁한 물체가 탁 하고 걸렸다.
H가 고향 가기 전, 내 방 문 앞에 놓아둔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독일에서의 첫 크리스마스는 참 따뜻하고 정겨웠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