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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sse Nov 13. 2024

ep 1. 내 룸메가 엘프라니?!

내 인생 첫 룸메들, 사랑스러운 커플 K와 P의 이야기


드레스덴 중앙역. 이 낯선 기차역이 참 커 보였는데


동생과 캐리어 4개, 백팩 2개를 메고 지고

아침 9시 드레스덴 중앙역에 도착했다.


'음악과 예술의 도시, 독일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도시 드레스덴.

앞으로 내가 살아갈 곳 !'


잠깐 감상에 젖었지만, 이젠 정말로 서둘러 기숙사로 향해야 한다.

입 안에 오쏘몰을 탈탈 털어 넣은 뒤,

트램에 올라타고

삐뚤빼뚤한 돌길을 달달달달 캐리어를 끌며

둘 다 기진맥진한 채로 기숙사에 도착했다.



기숙사 가는 길에 떨어져있던 수많은 도토리들. 내 마음처럼 쉽게 열리지 않던 나의 첫 기숙사 문.



하우스마이스터가 미리 알려준 장소로 가서 키는 쉽게 찾았지만,

거대한 난관이 하나 남아있었다.

바로 기숙사 문 열기 !

수 십 번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아직 손에 익지 않은 낯선 키로

굳게 닫힌 기숙사 문을 열기엔 역부족이었다.


한참을 문과 고군분투하고 있던 그때,


 덜컥 !


살짝 열린 문으로 키가 2m는 되어 보이는 준수하게 생긴 짧은 머리의 남자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할로! 하고 첫인사를 건넸다.

마찬가지 어색한 미소로 답인사를 하고

짐을 한 아름 들고 드디어 들어온 기숙사에서는

뭔가 형용할 수 없는 꿉꿉한 냄새가 났고,

방문 앞에 주욱 늘어놓은 수 십 개의 맥주병들이

빼꼼하며 나와 동생을 맞이했다.

별로 좋지는 않았던 기숙사의 첫인상을 뒤로한 채

서둘러 짐들을 방으로 옮긴 뒤

침대에 앉아 잠시 숨을 돌리고 있는데


똑똑


방 밖에서 노크 소리가 났다.


문을 열어보니 내 눈앞에 보이는 건 두 명의 엘프.. 아니

처음 보는 키 큰 여자와 좀 전에 문을 열어준 남자가 미소를 띠며 눈앞에 서있었다.

그때 당시 머릿속엔 이 생각밖에 안 들었다.


'이게 어떻게 같은 인간이야.. 우리랑 그냥 다른 종족이잖아'


멀쑥하게 큰 키와 내 주먹만 한 얼굴, 옅은 금발머리

이게 K와 P의 첫인상이었다.



" 안녕, 나는 K이고, 이 친구는 P라고 해 "

남자애가 옆의 여자애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을 했다.

그리고 무언의 대답을 바라는 듯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 내 소개해야지 참


"안녕, 나는 한국에서 왔고, 이번이 첫 학기야. 드레스덴은 오늘이 첫날이고"


이후로 K와 P는 앞으로 내가 사용할 화장실과 부엌의 사용법을 상세하게 알려주었고

내가 사용할 냉장고 칸도 손수 비워주고 닦아줬다.

물론 방 문 앞에 주욱 늘어놓았던 맥주병도 동생과 내가 잠깐 나간 사이에

말끔하게 치워줬고.




4명의 룸메이트 중 가장 처음 만났던 K는 전형적인 독일 남자였다.

식물을 사랑해서 방 안에 화분만 서른 개가 넘었고, 복슬복슬하고 귀여운 타란튤라도 세 마리나 키웠다.

언제나 그 세 마리의 타란튤라가 케이지를 탈출하지 않기만을 빌고 또 빌었지만 말이다.


언젠가 그의 방에 들어갔을 때

많은 수의 식물들로 열대우림에 온 것마냥 습한 공기에 숨이 턱 막혀 도망치듯 나온 기억이 있다.


그리고 항상 자기 몸만 한 큰 자전거를 타고 다녔으며,

아시안 요리를 기가 막히게 잘해서 종종 나와 기숙사 친구들에게 손수 라멘을 만들어 주었다.



요리하길 좋아하던 K가 만들어줬던 된장베이스 라멘


재밌던 점은

이 친구가 술부심과 맵부심이 조금 있었다는 것.

맥주의 국가 독일에서

술부심은 어느 정도 이해했지만,

그래도 한국인 앞에서 맵부심이라니?

걷기 시작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김치로 단련된 나에게 K는 한 번도 듣도보도 못한 음식들로

종종 승부를 걸어왔다

언제나 눈물을 글썽이며 백기를 들었던 건

당연히 K였지만

 

P가 나에게 권했던 과일맛나던 매운 사탕



그리고 그가 나에게 선물한 첫 화분도

여전히 내 창문틀에서 쑥쑥 잘 커가고 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 화분들도


선인장과 몬스테라를 제외한 K에게 선물받은 3개의 화분



P는 조금 뒤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K의 여자친구였다.

둘은 영국에서

1년간의 어학연수기간에 만났다고 했다.

처음엔 둘이 너무 닮아서

남매로 오해하기도 했는데,

역시 사랑하면 닮는다는 정설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인가 보다.

한국에서야 애인 사이에 같은 기숙사를, 아니 5인 WG에서 남녀가 같이 생활한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일 테지만


여기는 독일


렌트비를 줄이기 위해

동거나 WG에서 주방과 화장실을 남자, 여자 나누지 않고 공유하면서 사는 형태는

흔하디 흔한 일이었다.


그녀는 K와 때때로 티격태격했지만

금세 화해를 하고

사랑한다며 애정 섞인 말을 나눴고,


무엇보다 호박죽을 끝내주게 잘 만들던 친구였다.



P가 룸메들에게 만들어줬던 호박죽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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