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너무 엉뚱한 룸메 T의 이야기
룸메 T는 첫인상이 조금 엉뚱했다.
그를 처음 본 동생이 나에게 한 말이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다.
"언니, 저 사람 약한 것 같아.. 눈이 풀려있잖아"
그와 제대로 된 대화를 한 것은 동생과 6일간의 프라하, 빈 그리고 부다페스트의 여행 후
독일 기숙사로 돌아오고 난 후의 일이다.
물론 그때의 대화로 첫인상의 오해가 풀리긴 했다.
가령 동생이 그날 본 풀린 눈의 전말은, 그 당시 심한 몸살감기로 인해 감기약을 먹은 결과였다는 것 말이다.
당시 우리 기숙사에는 화장실이 3개가 있었는데
그중 1개는 변기만 있는 화장실로,
다섯명 중 세 명이 변기만 있는 화장실포함 두 개를 쓰고,
나머지 두 명이 남은 한 개의 화장실을 쓰는 암묵의 룰이 존재했다.
그 결과 기숙사를 7개월간 사는 내내 나는 나머지 2개의 화장실은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다.
나와 T의 방은 붙어있었고, 바로 앞의 화장실을 공유하게 되었다.
T는 바로 옆 방인데도 불구하고 항상 작은 소음 하나 없었고
가끔씩은 그가 집에 있는 건 맞나.. 하는 합리적인 의심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는 수업도 자주 빠지면서까지 집에 있는 것을, 정확히는 방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아 보였다.)
화장실 얘기로 돌아가서,
대부분 한국의 화장실은 습식으로, 화장실 바닥에는 보통 배수구가 있다.
그렇게 24년 인생 내내 습식 화장실만 사용해 본 나에겐,
독일의 건식 화장실은 어색 그 자체였다
샤워를 할 때도 물이 밖으로 튀지 않게,
세수와 양치를 할 때도 작은 세면대 밖으로 물이 흥건해지지 않도록
항상 혼자 전전긍긍이었다.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더 큰 문제는 바로 털..
독일인들의 털은 뭐 머리카락부터 시작해서 이하 등등 대부분이 옅은 고동색이거나 금색인데,
애석하게도 내 화장실 메이트의 머리카락은 금색이었다
어두운 내 머리카락과는 전혀 대조되는 금색 !!
나는 한번 샤워할 때마다 씻는 시간 반, 화장실 곳곳에 떨어져 있는 내 검은 머리카락을 치우는 시간 반이었고
종종 한 올, 두 올 놓치고 다음날 발견하면
그게 그렇게 거슬릴 수가 없었다.
그에 반해 항상 머리카락 한 올 없이 깔끔하게 화장실을 사용하던 T는 참 대단해 보였다.
며칠 뒤,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가며 화장실을 청소하기로 했고
처음 타자는 나였다.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마른걸레로 바닥을 한번 쓰는 순간,
멀리 서는 보이지 않았던 금색 털들이 우수수
마치 한국에 있는 우리 집 강아지 털갈이 시즌이 생각났다.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아.
연한 색의 화장실바닥과 T의 머리카락은 일종의 보호색 같은 거였다.
나에 대한 탐색기간이 끝나고 내가 조금은 마음에 들었는지
주방에서 만날 때마다 T는 자기 얘기를 미주알고주알 해주었고
나는 그가 무슨 전공 수업을 들으며, 교수님은 어떻고,
현재 과에서 무슨 프로젝트를 하는지까지 알게 되었다.
그렇다
그렇게도 소심하고, 말수 없어 보였던 그는
정말 투머치토커였다.
가끔 전공수업에 치여 피곤할 때는 주방에 그가 있으면
방에서 조금 기다리다가 나가는 일도 있었지만
아마 그는 지금까지 그런 사실은 꿈에도 모를 거다.
그래도 좋았던 점은 룸메이트들 간의 화합을 중시했던 T로 인해
매주 수요일이 다섯 명 다 같이 모여 같이 요리를 하고, 같이 밥을 먹고,
같이 보드게임을 하는 날로 지정이 되었고
그 시간들이 아직까지 나에게 있어서
독일사람에 대한 인상의 8할을 차지하고 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