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4. 할머니 호박죽은 따뜻한 색

룸메들, 그 마지막 이야기

by Hesse

지금 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이 전 에피소드들을 다 읽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오늘이 내 독일 룸메들에 관한 마지막 에피소드이다.

길기도, 혹은 짧기도 했던 7개월의 공동 WG 생활을마치고 난 지금 같은 기숙사 건물의 Einzelwohnung에 나와서 살고 있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이야기들은 모두 과거라면 과거의 이야기들인 거지.

우리가 다 같이 살았던 WG에는 사랑스러웠던 커플 P와 K, 엉뚱했던 T는 여전히 그대로 살고 있다.

가끔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지만,

모두 함께 즐겼던 수요일 쿠킹 모임과 보드게임 밤은 더 이상 없다.

아쉽지만 이렇게 글을 쓰면서 그들과 함께 했던 그 순간들을 마음껏 추억하니,

그것 나름대로 또 좋구나






어느 수요일이었다.

매주 돌아오는 쿠킹데이 !

이번 요리는 바로 호박죽이었다.

매번 밖에서 파는 본*의 동그란 새알심이 들어간 달콤한 호박죽을 사 먹기만 했는데, 직접 만든다니!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룸메들의 지시에 따라 늙은 호박을 자르고 씨를 제거하고(그 씨는 볶아서 후에 호박죽과 함께 즐겼다), 찌고, 크림과 우유 그리고 각종 스파이스들과 함께 믹서기에 곱게 간 뒤, 한번 더 팔팔 끓여서 완성할 수 있었다..!


P는 마지막 단계에서 한 냄비에 추가로 크림을 더 넣어서 두 가지 버전의 호박죽을 완성해 냈다.

하나는 약간 투박하지만 담백하고 호박의 거친 질감이 드러나는 호박죽

다른 하나는 크리미 하고 목 넘김이 훌륭했던 호박죽

나는 첫 번째 그 투박한 호박죽이 조금 더 취향이었다. 배가 호박으로 가득 차 더 이상 들어갈 공간이 없을 때까지 먹고 또 먹었다.


그 맛은 마치..

시골의 한 할머니가 잔기교없이 고요하고- 묵직하게- 사랑가득 담아,

말 그대로 몸과 마음 모두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맛이었다


커다란 냄비 2개, 그것도 가득- 차게 만든 호박죽은 그날 다섯 명이 먹고도 반 이상이 남아서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먹어야 했지만 말이다.


커다란 냄비 두 개를 가득 채웠던 호박죽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았을 12월의 어느 무렵

마트에 가서 식재료를 산다던 T가 한쪽 어깨에 커다란 난쟁이 인형을 지고 돌아왔다.

그는 인형의 작은 빨간 가방 안에는 주사기를,

나머지 다른 손에는 작은 나이프를 쥐어주며

프랑크푸르트랑 베를린에 사는 요정이라 소개했다.




12월 5일, 집을 나서려고 신발을 꺼내려는데 그 안에서 산타 모양의 초콜릿을 발견했다.

나중에서야 독일에서는 성니콜라우스날이라고 매년 12월 5일에 어린아이들이 전 날 밤에 신발을 깨끗이 닦아놓으면 니콜라우스가 와서 간식을 넣어준다는 설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룸메가 성자 니콜라우스를 자처했지만, 우리 중 그 누구도 누가 넣어놓았는지 끝까지 캐묻지 않았다.




새해가 지나고 그 해 처음으로 다 같이 모인 수요일.

K는 우리에게 줄 것이 있다며 작은 화분을 내밀었다.

학명까지 알려주며 물을 어떻게, 얼마큼 줘야 하며 이 작고 귀여운 식물이 후에 얼마큼 자라는지,

그는 목소리에 애정을 가득 담아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이렇게 여리게만 보였던 식물이

지금은 내 창가에서 두꺼워진 줄기로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고 있는 중이다.



그에 질세라 T는 모두에게 자신의 전공인 수학에 관련된 선물들을 룸메들에게 하나씩 선물했다.

나에겐 퍼즐을, P와 K에겐 풀기 어려운 매듭을, 그리고 H에겐 모양틀을

모두가 각자 앉은자리에서 T의 선물을(문제를) 푸느라 여념이 없었다.


크리스마스에 룸메들을 생각하며 내가 선물했던 양말이

H의 양초로

K의 화분으로

그리고 T의 퍼즐로 돌아왔다.


T에게 받은 공작모양 퍼즐



그리고 가끔 룸메들과 즐겨했던 Board game Night !

그 당시엔 영어가 서툴러서, 나를 이해시키기 위해 모든 룸메들이 일심동체가 되어

게임을 몇 번이나 천천히 진행시켰고, 카드를 하나하나 낼 때마다 리액션도 크게 크게 해 줬다.

우리가 항상 즐겨했던 UNO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나는 12월 초다.

오랜만에 작년 성 니콜라우스날에 T에게 받았던 초콜릿을 마트에서 발견하고 하나 집어 들었다.

마침 세일을 하더라고?


그때의 복닥 복닥 했던 WG 생활이 생각나는 겨울이다. 이 글을 보진 못하겠지만,


그땐 정말 많이 고마웠어 얘들아 !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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