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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권수 Jun 16. 2020

위로가 되는 식은 밥 김치국밥

걸쭉한 신맛이 끌어당기는 추억과  위로의 음식

한 겨울의 추위가 누그러지고 햇살이 따스해질 때쯤이면 언제나 김치국밥이 당긴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꼭 김치국밥을 먹어야 한다. 추억의 맛은 언제나 미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온 감각에 스며 있어서 적당한 조건만 형성되면 피는 꽃처럼 싹을 틔우고 순식간에 꽃을 피운다. 


어린 시절 슬레이트 지붕의 작은 주택 마당은 시멘트로 되어 있었지만 다섯 식구가 걸쳐서 앉을 만큼 작은 평상도 있었다. 아직은 쌀쌀한 바람에 햇빛이 반가운 날에는 평상에 누워 석유곤로(풍로)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김치국밥 냄새가 나면 이미 침이 고이고 기대감이 돌았다. 그 맛이 얼마나 푸근하고 자극적이었는지 어머니가 만드시는 것을 옆에 본 적이 있다. 특별한 레시피랄 것도 없었다. 잘 익은 김치를 넣고 어느 정도 푹 끓인 다음 식은 밥을 넣어 걸쭉해질 때까지 끓이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맛있는 이유는 잘 삭은 묵은 김치가 주재료이자 양념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직접 담은 멸치 젓갈을 넣은 김치는 고도의 숙성과정을 거치면서 신맛과 함께 깊은 맛의 육수를 만들어 내고 김치에 포함되어 있던 갖가지 양념과 야채가 끓으면서 그 자체로 좋은 음식이 되었다. 여기에 식은 밥의 녹말이 걸쭉하게 풀리면서 아무것도 없는 김치 끓인 물에 포만감 이상의 풍미가 만들어졌다. 부드럽게 넘어가는 울면의 녹말처럼 아삭함이 축 풀어진 김치의 식감은 단조로운 음식을 즐겁게 하면서 침을 고이게 했다.


 쌀쌀한 몸에 뜨끈뜨끈한 김치국밥이 넘어가면 몸이 풀리고 땀이 나면서 맛과 몸이 일치되고 마치 무아지경,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꽉 찬 만족! 얼마나 절묘한가! 신 맛이 진하고 삭았지만 땅 속에서 잘 보관되어 배추의 아삭함이 살아 있을 때는 더 다양한 맛이 났다. 묵은 김치를 푹 끓였기 때문에 배추 잎 부분은 한 없이 부드럽고 아래의 줄기 부분은 고기보다는 못해도 씹는 맛이 제격이었다. 생각해보라. 고만고만한 식단에 배만 불리던 지겨운 겨울 식단에서 생기를 돋게 하는 신맛에 풀어진 식은 밥의 녹말이 휘감기는 맛의 그러데이션, 뜨끈뜨끈한 특식이 주는 시원한 쾌감이 어찌 만족스럽지 않을까? 덕분에 세 형제는 마지막 한 숟가락까지 냄비 바닥까지 긁어가며 경쟁했다. 배고픔이거나 딱히 가난하기보다는 그 특별한 풍경과 맛에 끌려 숟가락을 놓지 못했을 것이다. 

     

감기 몸살로 입맛이 없어진 몸은 자극적이지 않고 입맛 돌게 하는 김치국밥을 선호했다. 이때 김치국밥 레시피는 좀 달라진다. 육수를 내기 위해 진하게 디포리(육수용 큰 멸치)를 끓여서 채로 걸러낸다. 시원한 육수로 개미(깊은 맛, 감칠맛)를 높이고 김치와 밥을 동시에 넣고 끓였다. 이때는 식은 밥이 아니라 따뜻한 밥을 지어서 퍼 놓은 다음 따듯한 김이 사라진 정도의 밥을 넣었다.  그리고 너무 걸쭉하게 녹말이 우러나기 전에 콩나물을 넣고 끓인 다음 달걀을 풀어 마무리한다. 달걀은 반드시 그릇에 거품이 나지 않을 정도로 풀어서 끓인 재료들과 따로 놀지 않도록 살짝 익혔다. 그러면 시원함과 함께 풍미가 남달랐다. 특별히 만든 것이라지만 여전히 소박한 재료들의 조합이었다. 아프고 맥 빠진 아들이 회복하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특별대우가 마음 깊이 전해졌다. 그래서 “개미 있네”라고 말하면 잃었던 입맛이 돌았다. 기력을 회복한 이유는 부드럽게 정화된 신맛이 신경을 당기고 푹 끓여서 강도가 높아진 뜨끈뜨끈함이었지만 진실은 엄마의 소박하지만 깊은 애정 아니었을까? 아픈 아들에게는 큰 양은냄비 통째가 아니라 정성스럽게 사기그릇에 담아 주셨다. 그리고 참기름 몇 방물은 구수함의 강도를 더 높였지만 사랑 몇 방울의 파장이 더 강했다. 때로는 이런 별 것 아닌 특별대우가 그립기도 하다.       


음식이 치유가 될 수 있는 것은 약성이기보다는 감각의 기억에서 오는 위안인가 싶다. 안타깝게도  31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누나가 방사선 치료를 받고 집에 내려왔을 때 자신의 의지로 찾은 음식도 김치국밥이었다. 묘하게 그때가 2월이었다.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는 선고를 받고 안타까움에 그냥 있지 못한 부모님은 굳이 방사선 치료라도 택했다. 녹초가 된 누나는 아무런 활력이나 기력도 없었다. 입맛 없다고 하면서 김치국밥은 한 번 먹고 싶다고 했다. 몇 술 뜨지도 못했지만 “참 좋다! 옛날 생각난다. 이런 걸 먹고살았어야 했는데..”라며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혼자 서울 생활을 하면서 인스턴트 음식을 많이 먹어 병에 걸렸다고 생각했는지 여동생에게 남긴 마지막 유언이 인스턴트 먹지 말라는 거였다. 끝내 완치 못하고 예정된 시기에 하늘나라로 갔지만 마음을 정리할 위안을 얻은 듯해서 김치국밥 몇 숟가락은 빈천한 위로가 되었다. 화장하여 지리산에 날려 보낸 누나의 계절 5월 말에는 김치국밥으로 위로의 제사를 지낸다. 온전히 함께 머물렀던 순간들은 어쩌면 어린 시절 평상에서 국밥을 먹을 때뿐인가 싶어 억울하고 슬펐다. 때로는 먹고 싶어 먹는 김치국밥을 입에 넣다가 국밥의 맛은 사라지고 묻었던 그리움에 눈물이 맛을 대신할 때가 많다. 내가 먹는 것이 아니라 기억과 추억으로 누나와 함께 먹는 것이다. 어린 시절 마지막 한 숟가락은 누나에게 양보할 걸 그랬나... 싶다. 


지금은 시원하고 아삭함이 살아 있는 뚝배기의 김치국밥을 흔하게 먹지만 굳이 얇은 냄비에 걸쭉하게 직접 김치국밥을 끓이는 날에는 뭔가 허전함과 공허함이 앞서는 날이다. 이때는 육수도, 콩나물도, 버섯도 넣지 않는다. 일부러 김치 냉장고에서 하루 전에 김치를 꺼내 놓고 밥솥에서 식은 밥 한 그릇도 미리 준비 해 놓는다. 일부러 재료를 투박하게 만들어 기억의 원형을 살리는 나만의 위로 의식이다.  “역시 아빠의 김치국밥이 최고네”라며 습관적으로 먹는 지금의 아이들은 아직 농밀하게 채워지지 않는 아빠의 공허함을 눈치 채지 못한다. 세월에 장사 없고 미리 떠난 사람들이 많지만 누나를 잊지 못하는 것은 결핍에서 더 풍요로움을 느끼게 한 김치국밥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소외된 맛에 위로받게 된다. 때로 음식은 입이 먹는 것이 아니라 추억으로 감각에 스며버린 기억이 먹는 듯하다.  


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은 시절, 손쉽게 있는 재료로 양을 늘려 먹었던 김치국밥! 좋은 것을 많이 먹어보지 못한 가난한 미각 때문인 지는 몰라도 부족함이 채움을 더 깊게 했던 추억의 맛이 김치국밥이다. 강하고 자극적인 매운맛의 김치가 삭으면서 온화해지고 적당한 칼칼함과 신맛이 밥의 걸쭉함과 하나 되면서 착한 음식이 된다. 기운 돋고 온기를 불어넣는 최고의 음식이 된다. 맛이란 것이 혀에서 느끼는 미각의 반응 같지만 실은 분위기와 감각의 기억으로 인식하는 뇌의 쾌감이 만들어 낸다. 그런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맛의 기억이 내 감각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은 퍽퍽한 삶에 위로가 된다. 감사하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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