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에 대한 만족을 늘리기 위해서는 소유 자체보다 만족에 집중해야 한다
소유하고도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소유하고도 누리지 못하는 문제는 방 한 가득 장난감을 쌓아 두고도 심심하다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누리기 위해서 소유한다면, 누리기 위해서 너무 많은 희생을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많은 것을 가지지 않아도 지금보다 행복했던 때를 생각하면 소유에 너무 종속된 일상의 감각을 읽게 된다. 조금 덜 소유하고도 아니면 소유하지 않고도 즐겁고 행복한 일상을 누리기 위해서는 소유에 ‘반응’하는 우리의 감각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소유에 길들여지고 구속된 감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뭔가를 소유한다는 것은 우리의 만족 시스템과 연결되어 있다. 소유는 기대만으로도 우리 뇌의 보상회로를 자극해 만족스러운 감정을 유발한다. 주변 환경에 대한 통제감을 높여주고 생존 확률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본능적으로 생존의 보장과 안정감이 주는 만족인 셈이다. 가능만 하다면 만족과 활력을 느끼기에 가장 빠른 방법이 소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소유 자체에 민감하고 길들여지기 쉽다. 소유하는 과정과 소유를 통해 누리는 만족은 시간도 많이 들고 비효율적이다. 중독물질과 중독 행위를 통해 즉각적이고 효율적인 만족이 본능적으로 우세하다. 소유에 중독되고 소유하고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진짜 생존을 위해 먹고사는 것 외에 만족을 위해 우리는 소유 자체에 너무 중독되고 매몰된 경우가 많다. 소유보다는 누려서 얻는 만족을 학습해야 할 지경이다.
소유에 집착하다 보면 소유하지 못하면 행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소유가 주는 만족과 행복은 짧다. 소유를 통해 뭔가를 만들어 가고 누리는 과정에서 우리는 보다 지속적인 만족과 행복을 느낀다. 소유는 즐거움을 느끼는 하나의 감각적이고 반응적인 방식이다. 그리고 중독되기도 쉽다. 문제는 소유만으로 만족을 느끼는 것은 누리는 과정을 학습할 능력을 잃어버리게 만든다. 감각적으로 보면 중독과 다를 바 없는 과정을 거친다. 술이나 마약 같이 즉각적인 쾌감을 단숨에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누리는 과정이 필요 없다. 더 강한 술이나 마약을 더 자주 하면 되기 때문이다. 소유를 통해 반응적으로 얻게 되는 동기와 활력을 극복하지 못하면 중독처럼 소유에 소유당하고 만다
불확실성을 기피하는 인간에게 소유는 모호한 존재의 의미를 느끼는 것보다 구체적이고 확실한 방법이다. 그래서 더 강한 동기를 자극한다. 소유의 감각에 익숙한 사람은 소유가 무너지면 몸과 마음이 무너진다. 심할 때는 자신의 존재가 무너진다. 소유가 존재를 대표한다는 착각 속에서 존재의 힘과 동기는 점점 잃어 간다. 내가 소유한 것들이 오히려 나를 소유하며 좌지우지한다. 소유에 종속된 행복과 삶의 의미는 너무 쉽게 흔들린다. 그래서 많이 가지지 못해서가 아니라 소유와 줄다리기하면서 사는 것이 우리를 더 쉽게 지치게 하는지 모른다. 소유에 지쳐 있지만 헤어날 방법이나 용기는 멀다.
탤런트 소지섭과 박신혜가 나왔던 tvN의 프로그램 ‘숲 속의 작은 집’은 살아가기 최소한의 환경 속에서 두 사람이 각각 자연의 삶을 사는 자발적 고립을 모니터링한 프로그램이다. 제주도의 숲에서 미니멀 라이프를 체험하는 다큐멘터 같은 예능, 예능 같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었다. 최소한의 도구와 음식으로 조리하고 살면서 ‘흰쌀밥에 반찬 하나’,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하기’, ‘3시간 동안 식사하기’ ‘빗속 산책’ 등의 사소한 미션을 수행했다.
소유한 것이 아닌 최소한의 소유로, 소유와 상관없이 재미와 즐거움을 만드는 모습에 사람들은 동조하고 동경했다. 프로그램이기는 했지만 자신을 덮고 있는 소유를 통해 자신이 아니라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는 모습을 보여줬고 그 ‘심심함’의 즐거움이 새롭기도 했다. 어쩌면 우리는 소유를 벗어나 행복할 수 있는 감각을 익히고 수혈받기 위해 돈을 주고 배워야 할지 모른다. 결코 ‘무소유’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소유를 즐기되 최소한의 소유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을 잃어버리지 말자는 의미다.
미국의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1845년 매사추세츠주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식량과 도구로 2년 2개월을 살았다. 최소한의 소유로 자급자족의 삶을 통해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과 직면하면서 나온 고전의 명저가 <월든>이다. 그는 진정한 삶을 살기 위해 숲으로 갔다고 말한다. 삶과 마주하고, 인생이 주는 가르침을 배우고, 죽음의 순간이 가까워졌을 때 제대로 살지 못했음을 후회하지 않도록, 삶이 아닌 것을 살지 않으려고 숲으로 갔던 것이다. 그는 자연과 어우러져 월든을 통해 소유하지 않고도 소박한 생활에서 즐거움과 행복,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고 전했다. 진정한 삶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소유의 경쟁에서 늘 우위에 설 수 없는 우리들에게 ‘소유에 집착하지 않고도 누릴 수 있는 근력’은 필요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