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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권수 Nov 24. 2015

내 삶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인간은 누구나 자기행동의 원인이 되고자 한다. 

마음의 항체, 매거진의 글이 브런치 대상을 받고 책으로 나왔습니다. 

책이 이 글의 제목으로 되었습니다.  

http://www.yes24.com/24/Goods/39008549?Acode=101


많은 사람들이 미친듯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만 만족보다는 공허함과 부족함, 뒤처지는 두려움과 긴장감 사이를 외줄타기 하며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설령 부러울 정도의 성취를 했어도 이러한 공허함은 쉽게 가시지 않는 경우가 많다. 변화의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는 요즘은 이러한 공허함이 더욱 확대 재생산된다. 


인간은 자신이 자기 행동의 원인이 되고자 한다. 자기 행동에 주인이 되지 못하고 자기행동에서 소외될 때 공허함이 만들어 진다. 너무 의무와 필요성에 맞춰서 행동하는 자신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그렇지 않으면 주변의 요구에 슈퍼맨이 되려고 달리다 진작 자신이 무엇 때문에 달리고 있는지 잊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더한 것은 외부의 필요에 의해 달리는 속도 때문에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 번도 자신에게 물어보지 못하고 평생을 달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뭔가 주변의 요구에 의해 달리고 있을 때 숙명처럼 위로를 받는 것뿐이다. 얼음판에서 맹렬히 달리다 깨진 얼음을 보고 서지만 결국 미끄러지고 만다. 달리는 관성을 이기지 못했던 많은 워크홀릭들은 불빛의 나방처럼 자신을 던지고 말았다. 그 속에서 자신과 마주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호수의 수면이 흔들리면 고요한 바닥을 전혀 볼 수 없다. 자신이 주인이 되지 못할 때 우리는 군중의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주변의 변화에 쉼 없이 흔들리고 자신을 쏟아 내야 한다. 흔들리는 마음으로 눈앞의 것이 똑바로 보이지 않는다. 흔들리며 빠른 속도에 이끌려 가는 관성에서는 멈춰서 자신을 지켜보는 것은 힘겨운 일이 된다. 그래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주인은 자신의 것으로 선택하고 쉽게 주변에 흔들리지 않는다. 자신이 가야할 길이 있기 때문이다. 삶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주변에서 쏟아내는 두려움과 충동의 흔들림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내 것이 있을 때, 내가 추구하는 것이 있을 때 이런 흔들림은 증폭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대로 수용하며 자신의 것을 바라보면 갈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산다는 것은 흔들리지 않고 자기를 바라보며 산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우리가 많은 것을 이루고도 공허하고 결핍을 느끼는 것은
자신이 소외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지켜본다는 것은 자신의 삶에서 자신의 것을 채울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행동의 원인이 자신이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많은 것을 이루고도 공허하고 결핍을 느끼는 것은 자신이 소외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결핍을 채우기 위해서 쾌락과 욕망의 충동에 약해지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충동은 중독처럼 너무 단기적이고 더 많은 결핍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 문제다. 내가 원하는 것, 자신이 채워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일어나는 일이다. 자크 라깡(Jacques Lacan)의 말처럼 현대인은 타인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으로 착각하며 살면서 나를 잃어버리고 내가 원하는 것을 채울 수 없는 무력한 삶을 운명처럼 가속화시키고 있는지 모른다. 그야말로 채워짐 없이 소모하는 피로사회다.      


주인이 될 때 자신에게 보다 더 친절하고 충실한 자신을 만나게 된다. 

삶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경우라도 나의 시공을 수용하고 즐길 수 있는 힘을 가져다 준다. 주변의 의무와 요구 속에서 스스로를 멈춰 세우고 또렷하게 자신과 만나서 물어 보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고 만족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러면 자신에게 보다 더 친절하고 충실한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주변의 속도와 흔들림 속에 그것을 바라보며 담담히 자신을 것을 추구하며 누리는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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