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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권수 Dec 08. 2021

불편함을 사는 사람들, 불편함의 충만함

편리함 속에 숨어 있는 자기소외

마음이  따라가지 못하는 편리함

무의식 중에 소외된 자신을 느리고 불편한 여유 속에서 되찾고 있는지 모른다


세상은 지속적으로 발전하며 편리해졌지만 과연 인간은 충분히 적응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혹시 우리의 건강, 심리, 정신적인 불편함과 병리적 현상들은 편리함에 대한 적응 문제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사실 인류의 발전과 오늘날 누리는 편리함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증기기관이 발명되고 산업화를 통해 인터넷으로 연결된 지금의 시대는 인류가 발전해 온 역사를 보면 아주 미약한 시간에 불과하다. 


우리의 유전자는 아직 불편한 시대의 아날로그적 궤적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데 오늘날의 편리함이 유전자를 공격하거나 적어도 어색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불편한 아날로그에 대한 무의식적인 향수가 그 증거일 수도 있다. 자연을 누리기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그 불편한 캠핑 열풍이 불고 직접 만드는 DIY 강좌와 제품이 인기를 끈다. 한 번도 경험하지 않았던 카메라 필름 현상을 배우는 사람들부터 마그네틱, 크롬 테이프나 LP판으로 음악을 듣는 사람들도  있다. 추억을 찾는 사람도 있지만 경험하지 못했던 세대에겐 추억도 아닌데 끌린다. 불편하고 느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직접 다해야 한다. 아날로그적 일상이 가져다주는 느리고 불편함 속에서 사람들은 오히려 여유와 충족감을 느낀다. 


사막을 빠르게 걷다가 영혼을 기다린다는 아프리카 부족 이야기처럼 편리함의 빠른 속도를 쫓아오지 못한 혼란스러운 유전자를 일치시키는 행동일지 모른다. 무의식 중에 소외된 자신을 느리고 불편한 여유 속에서 되찾고 있는지 모른다


불편함으로 채우는 사람들

시간과 공간을 파격적으로 극복하는 편리함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활용할 기회를 잃어버린다


불편하고 느린 생활은 완전한 인간을 만든다. 이런 생활은 자신을 완벽하게 활용할 수밖에 없다. 자신이 누리는 결과물은 온전히 자신의 역할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들이 많아진다. 직접 자신이 한 것들에서 자신의 가치와 의미를 더할 수밖에 없다. 한 끼 식사를 위해서 재료를 준비하고 불을 지피고 상황을 조절하며 기다린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실수도 많이 하면서 완벽하지 않은 식사를 준비한다. 그대로 그 밥은 맛있고 만족스럽다. 설익은 밥이라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직접 한 것이기 때문이다. 해상도 좋은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이 더 멋있기도 하겠지만 직접 필름 끼워서 사진을 찍고 직접 암실에서 현상액을 조절하며 점점 형상을 만들어 가는 사진에는 뭔가 감격스러운 매력이 있다. 


불편하고 실수도 많겠지만 자신의 감각과 감정, 조절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인간에게는 어떤 ‘채움’을 줄 수 있다. 좀 더 완벽해지려는 자신의 열망과 욕구도 느끼고 느린 시간 속에서 기다리며 설레는 자신을 완벽하게 목격하기도 한다. 이런 시간 속에서 자신을 귀중하게 생각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시간과 공간을 파격적으로 극복하는 편리함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활용할 기회를 잃어버린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결과물에 자신이 개입한 흔적은 점점 없어진다. 무의식적인 자기소외는 자기 확신을 떨어뜨리고 주변의 반응에 더 얽매이게 한다. 그래서 불안과 걱정이 커지고 자기 존중감도 따로 챙겨야 하는 짐으로 느껴진다


불편함을 찾는 사람들이 느끼는 충족감과 매력은 온전히 그 일에 관여되어 있는 자신을 찾는 데 있다. 사람들은 일상에서 자신의 영혼을 찾고 싶은 것이다. 불편함을 예찬하지는 못해도 가끔씩 찾아 길들이는 불편함의 채움이란 필요하다


불편함에 맞춰 몸을 쓰자


느리고 불편하다는 것이 편리함을 위해서 반드시 저항해야 할 요소는 아니다


다음 세대에는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사람들의 뇌는 바쁘게 움직이면서 정교하게 발달해 왔다. 그저 생각을 잘하는 것으로 정교하게 발달한 것은 아니다. 직접 움직이면서 감각과 감정을 조율하고 생각하면서 움직임을 정교하게 만들었고 뇌도 정교하게 균형을 맞추며 발달해 왔다. 편리함은 인간의 움직임을 덜하도록 만들었다. 우리는 그것을 편리함이라고 말한다


우렁쉥이는 처음에 뇌를 가지고 있다가 어딘가 정착해서 이동하며 움직일 필요가 없어지면 자신의 뇌를 먹어치운다. 움직임이 없다는 것은 뇌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심한 비유 같지만 편리함으로 움직일 필요가 없을 때 인간도 정교한 뇌를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있다. 편리함 속에서 덜 움직이게 된 우리는 육체와 정신적으로 없었던 병에 더 많이 직면하게 된다. 


느리고 불편하다는 것이 편리함을 위해서 반드시 저항해야 할 요소는 아니다. 오히려 삶을 누리고 음미하며 일상을 보다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한 부분이 될 수 있다. 지혜의 한 부분이 될 수도 있다. 느리고 불편함에 대한 관리가 풍요로운 삶에 대한 관리가 될 수 있다. 일상의 일부분만이라도 딴생각 없이 온전히 집중하며 자신의 모든 감각과 감정, 생각을 완벽하게 활용해야 하는 일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누리고 음미하는 삶에 대하여 p34, 생각을 바꾸어 보면- 불편함을 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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