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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권수 Apr 14. 2016

스침의 관계 속에 커가는 자기소외

관계가 중요한 만큼  그 중심에 자신을 두는 것은 더더욱 중요하다.

인간에게 관계는 존재이며, 생존이고, 행동을 이끄는 동기의 원천이다. 그래서 '나'의 존재는 무의식적으로 관계와 연결되어 있다. 관계가 사람을 살리고 죽일 수 있다는 의미다. 환경이 인간을 조각하듯, 한 개인이 가지는 관계의 양식도 개인을 조각한다. 습관화된 '스치듯 중요한' 스침의 관계가 자신을 소외시키고 있다. 관계속에 자신을 재물로 바치며 괴로워하는 양상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 관계 속에서 살아가지만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 관계는 가히  폭발적으로 확대되었다. 과거에 비해서 만나고 함께 일하는 사람도 늘었고 SNS를 통해서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일도 많아졌다. 하지만 늘어난 관계만큼이나 관계 속에서 느끼는 공허함과 절망감이 커진 것도 사실이다. 관계 속에서 느끼는 공허함은 자기소외에서 발생한다. 수많은 관계로 상호작용하지만 그 속에 ‘나’라는 존재가 없다는 의미다. 필요에 의한 관계가 많고 ‘스침의 관계’가 많아진 탓이다. 관계 속에서 자신의 가치와 의미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줄고 필요에 의해서 만나는 관계가 늘어난 것이다. 스침의 관계가 많아질수록 자신의 감정과 느낌, 욕구, 가치와 의미를 솔직하게 표현하고 드러낼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게 마련이다. 


인간은 관계 속에 비춰진 거울을 통해 자신을 평가하고 개념화한다.


인간에게 관계는 절대적이다. 인간은 관계 속에 비춰진 거울을 통해 자신을 평가하고 개념화한다. 좋은 관계를 통해서 긍정적인 자기 이미지를 형성하는 존재가 인간이다. 관계 속에서 만족은 안정과 기쁨, 행복감을 느끼는 호르몬을 증가시킨다. 누군가의 인정과 배려, 감사는 안정감 속에서 존재감을 느끼고 활력 넘치는 인생을 만들어 가도록 돕는다. 그러니 우리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은 명확하다. 필요에 의해 만나는 스침의 관계를 줄이고 관계 속에서 만족을 늘리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부여된 시간을 그 자체로 의미 있고 나의 가치와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관계를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 적어도 팍팍한 일상 속에서도 가족이나 친구, 뜻을 같이 하는 사람과의 의미 있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 행복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일상에서 스침의 관계가 많아질수록 자기소외는 습관화된다.
습관화된 자기소외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의 일상에서 스침의 관계가 많아질수록 자기소외는 습관화된다. 이런 관성은 스침의 관계와 진정한 만남의 관계를 구분하기 힘들게 만든다. 더 무서운 것은 관계 속에서 소외된 자신을 발견하기는 더욱 어렵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 사는 게 다 그런 것 아니냐”라고 치부하는 경향이 일반화된다. 또한 습관화된 자기소외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소외된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나 가치를 인식하고 나누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결국 스침의 관계는 자기 존중감을 떨어뜨리는 주된 이유가 된다. 낮은 자기 존중은 관계 속에서 자신을 표현하고 자기주도성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부정적 정보에 민감하고 부정적으로 변하는 이유는 자기주도성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관계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개인이 인생을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구조를 만드는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의 관계가 스침의 관계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것은 자신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개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가치와 의미에 대한 존중 없이는 자신을 개방하기 힘들다. 그래서 방어적으로 관계에 설 수 밖에 없다. 자기이해와 자기개방이라는 차원에서 관계를 살펴보자.


소외되지 않는 관계를 위해서는
자기이해와 자기개방을 늘리는 것이중요하다.

소외되지 않는 관계를 위해서 자신의 위치를 알 수 있도록 해 주는 조하리의 창이란 것이 있다. 조셉루프트(Joseph)와 해리 잉행(Harry Ingham)에 의해 만들어진 사분면의 창은 자기이해와 자기개방의 측면을 통해서 자신의 위치를 알 수 있다. 자기이해가 잘 되어 있고 자기개방도 잘 되는 공개된 영역(open window), 자기개방(자기표현)은 잘 하지만 오히려 자신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맹점 영역(Blind window)이 있다. 맹점 영역의 사람들은 잘난 척 하지만 자신이 진짜 어떤 사람인지 잘 몰라 깊은 관계가 힘들다. 또 다른 영역은 자기이해는 잘 하고 있지만 타인에게 자신을 개방(표현)하지 않는 은폐된 영역(Hidden window)이다. 은폐된 영역의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잘 표현하지 않으니 다른 사람들이 접근하기 힘들고 오해하기도 쉽다. 마지막으로 자신도 잘 모르고 자신을 개방(표현)하지도 않는 미지의 영역(Unknown window)이 있다. 사람에게 관계가 중요하게 연결되어 있다면 분명히 공개된 영역(open window)을 확대시켜야 한다. 다시 말해 자기이해와 자기개방을 늘리는 것이중요하다. 자신을 잘 알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존중하며 다른 사람의 피드백에 귀를 기울이는 자기이해와 자신을 표현하고 개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야 스침의 관계가 줄고 관계 속에서 자신을 소외시키는 것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상호존중감이 사라지면 관계는 수단화되고
관계 속에서 자신을 소외시키기 쉽다.


자신을 소외시키는 관계를 늘리는 양적 팽창은 쉽게 공허한 심리만 증폭시키기 쉽다. 스침의 관계가 많아질수록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은 사라지고 남는 것은 소외의 일상화뿐이다. 삶의 의미와 활력을 만들어 내는 진정한 만남은 자기개방과 자기이해 속에서 만들어 진다. 현재 우리가 상호작용하는 관계가 상호존중과 신뢰가 살아 있는지 점검해야 하는 이유다. 상호존중감이 사라지면 관계는 수단화되고 관계 속에서 자신을 수단화시키기 쉽다. 굳이 관계에 얽매여 내 인생을 혼란스럽게 낭비할 이유는 없다. 용기를 가지고 관계를 선택하고 공허함과 절망감을 던지는 관계는 회피하며 나라는 존재를 지킬 필요가 있지 않을까? 모든 관계의 책임을 자신에게 돌릴 필요는 없다. 또한 자기 소외가 증폭되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나의 모든 것을 던질 필요도 없다. 그리고 자신을 감출 필요는 더더욱 없다. 일상에서 자신의 가치를 조금 더 확인하고 행복감을 나눌 수 있는 그런 만남의 관계를 늘려보는 것은 어떨까? 관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 있는 내가 중요하니까!


그래서 관계의 가치치기가 내면을 더욱 든든하게 성장하도록 만들어 준다. 

https://brunch.co.kr/@hesse24/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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