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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권수 Apr 16. 2016

감정조절을 위한 이해와 연습

감성지능과 자기사랑의 시작은 감정을 인정하고 관찰하고 읽는 연습에서..

자신의 감정을 인정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가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여러 감정이 실타래처럼 엉켜서 다가오고 실체 없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또는 어느 순간에 밀려와 자동적으로 표현되고 폭발된 다음에 느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가 뭔가를 조절하려고 하면 그것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자신의 감정에 대해 잘 알지 못할 때 우리는 감정을 조절하기 힘들어진다. 자신의 감정을 관찰하고 이해할 기회가 없었던 사람은 감정을 조절하는 것이 무척 힘들게 된다. 이해가 수용을 만들고 수용이 개방성을 만들어 내듯이 자신의 감정에 대한 이해 없이는 감정을 조절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감정을 제대로 관찰하고 식별하여 행동에 활용하는 능력을 감성지능이라고 한다.  감성지능에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관찰하는 것이다. 내 감정의 관찰을 통해 상황에서 흘러나오는 감정 읽기가 가능해진다. 자신의 감정을 모르면 감정에 압도당하고 타인의 감정을 읽는 것이 불가능해지고 감정을 활용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게 된다. 감정의 조절은 나의 감정을 관찰하고 읽는 것부터 시작되어야한다. 내 감정을 관찰하고 읽겠다는 의지는 자기존중의 바탕이 되고 자신을 용서하고 위로할 수 있는 힘이 된다. 이런 힘들은 삶의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회복력의 뿌리가 되는 것이다.   

    

어린 아이가 엄마와 함께 놀고 있다. 그러다 엄마가 사라지면 엄마를 찾아 한없이 우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혼자서도 잘 노는 아이가 있다. 우리는 엄마가 있든지 없든지 잘 놀고 있는 아이를 기특하게 생각할 때가 많다. 하지만  이런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 표현을 통해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에 문을 닫아 버린 경우가 많다. 우리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이해하고 자연스럽게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타인이 자신을 위해 행동해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자기감정의 표현을 통해 상대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기대가 소용없다는 사실을 알아 버린 아이들은 감정의 표현에 의미를 두지 않기에 자신의 감정을 읽는 기회가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평소 엄마와의 안정적 애착은 감정을 읽고 조절하며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준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감정조절은 엄마나 보호자의 감정조절 능력을 그대로 학습하는 경향이 많다. 감정적 배려를 받아 본 아이들이 자신의 감정을 관찰하고 이해할 가능성과 여유를 가지게 된다. 자연스럽게 타인에 대한 감정적 배려를 학습하게 된다.  

     

언젠가 중학교 학부모 특강을 갔을 때 감정의 중요성과 조절을 강조했었다. 그리고 피어오르는 자신의 감정을 살피고 바라보는 기회를 가져 보라고 말했다. 특강을 마치고 한 어머님이 강하게 반문하는 것이다. 이미 감정은 자신이 인지하기도 전에 올라와 표현되고 있는데 성인군자처럼 어떻게 감정을 살피냐는 것이다. 한마디로 감정은 사람이 어쩔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어쩌면 당연하고 맞는 말이다. 적어도 우리가 우리의 감정을 관찰하고 제대로 이해해 줄 기회를 가져보지 못한 경우에는 당연하고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우리의 감정을 단어로 표현 해 보라고 하거나 평소 자신이 활용하는 감정적 단어를 모두 적어 보라고 하면 예상보다 잘 적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 결과에 깜짝 놀라곤 한다. 우리에게 감정은 좋은 것 나쁜 것,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으로 양분되어 있거나 단지 관습화된 몇 개의 단어로 빈약하게 통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감정을 인정받을 기회가 적었기 때문이다. 또는 감정이 이성적 판단의 부산물이나 걸림돌정도로 이해하고 특정한 감정적 표현만 강요받았던 환경 때문인지 모른다. 대학생들에게 자신에게 ‘의미 있는 타인(Significant Others)’을 적고 그 이유를 설명하라고 하면 가장 많은 경우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받아 주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있어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표현할 기회를 주는 사람이 행복과 의미를 만들어 주는 사람인 것이다.      


우리의 일상에서 감정이 주인공이 되는 대화를 많이 나누어야 한다. 그래서 감정의 단어를 늘리고 미세한 차이에 대한 이해가 확장되어야 한다. 어릴 때부터 감정적 배려와 상호작용이 많지 않았다면 특별한 훈련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평소에 내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상황과 함께 감정을 읽어 감정단어를 쓰는 것이다. 좋아 하는 사람들과 영화를 보고 주인공들의 감정을 표현해 보는 것이다. “내가 주인공이었다면 그 상황에서 어떤 느낌이었을 것이다. ”라고 대화를 나눠보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작은 메모지를 가지고 다니면서 특정한 순간에 느끼는 자신의 감정에 꼬리표를 달듯이 감정을 기록하기도 한다. 긴장된 상태에서는 엉켜서 떠오르는 감정을 구별해 내고 인식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평상시 깊은 호흡을 통해 이완을 훈련하기도 한다. 이완을 훈련하고 감정을 읽고 쓰기를 연습하면 더 섬세한 자신의 감정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다.  이런 훈련들을 통해 실제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감정적 상황에서도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감정은 늘 그 자리에 있지 않는다.  길어도 90초면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특히 부정적인 감정일 경우 우리의 생각이 감정을 강화시키고 연장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정적 감정의 순간에 감정을 떨어져 바라보려면 살짝 피하는 방법이 있다. 감정의 침투적 상황에서 주의를 돌리는 것이다. 감정은 우리 뇌의 변연계 중에서 편도체에서 일어난다. 이것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것은 전두엽에서 한다. 감정적 상황에서 어떤 의식적 판단을 하게 되면 지휘권이 전두엽으로 옮겨 오면서 감정을 조절할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격정적 감정의 시기에 “잠깐만” 하고 호흡에 의식을 돌리고 숫자를 거꾸로 세거나 무작정 산이름을 줄줄이 대면서 딴청을 피우는 것이다. 우습고 장난스럽기도 하지만 이런 방식들이 반복되면서 감정을 떨어뜨려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키우게 된다.      


타인의 감정을 읽어 내고 인정하는 과정은 자신의 감정을 이해할 기회를 넓힌다.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가 늘어나는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해 본 사람이 감정에 압도되지 않고 감정을 관찰할 여유를 가진다. 그런 여유가 감정을 읽고 수용할 힘을 키워주는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은 반사적인 편도체에 지휘권을 넘겨주는 것이 아니라 통합과 조율자에 해당되는 전두엽에 지휘권을 넘겨주는 것이다. “내가 좀 속상한 모양이구나”, “내가 초라해서 질투가 나는 모양이구나”, “더 잘하고 싶은 열망이 강한가 보구나” 이렇게 자신을 설명할 기회를 준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아름다운 용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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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감정의 존중-내 감정으로 나를 사랑하기 : https://brunch.co.kr/@hesse24/36


감정을 대하는 뇌의 비밀 - https://brunch.co.kr/@hesse2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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