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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권수 Dec 02. 2015

나를 가둔 불행의 장막 걷어내기

아무런 근거없는 장막에 가려진 자신을 발견해야만 한다.

파이크 신드롬(Pike Syndrome)이란 것이 있다. 파이크라는 물고기가 있는데 이 녀석을 수족관에 넣어 키운다. 그리고 먹이가 되는 작은 물고기를 유리벽으로 차단하여 넣어준다. 파이크는 먹이를 먹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공격하고 덤벼봐야 유리벽에 부딪히며 상처만 입는다. 나중에 그 유리벽을 치워도 파이크는 먹이를 잡으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유유히 물고기가 헤엄쳐 다님에도 절대 잡아먹지 않는다.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기 위해 공격을 했지만 반복적으로 학습해야 했던 실패와 고통은 장막이 사라졌음에도 행동하지 못하는 것을 파이크 신드롬 또는 유리벽 효과라고 한다. 우리는 여러 가지 장애물로 인해 우리가 원하는 것을 획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장애물은 자신이 어쩔 수 없는 거대한 환경이라고 생각하지만 자신의 문제, 자신이 가진 장막일때가 많다. 과거에 자신이 할 수 없었다고 해서 현재도 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알면서도 극복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이 있다. 이렇게 학습된 장막은 너무도 익숙하게 무의식에서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며 산다.      

사카린으로 단맛을 낸 미량의 물로 쥐를 죽일 수 있을까? 로체스트 의치과대학교의 실험심리학자 로버트 애더박사는 쥐에게 위통을 유발하는 주사와 함께 사카린이 가미된 단물을 먹였다. 위통을 유발하는 주사를 중지하고 단물만 먹였지만 쥐들은 절대 먹으려 하지 않았다. 점안기를 이용해서 강제로 단물을 먹였는데 쥐들은 모두 죽어 버렸다. 위통의 주사가 쥐들의 면역체계를 파괴해서 죽게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미량으로는 그런 영향을 줄 수 없는 가설이었다. 추가적인 실험 결과 사카린을 가미한 물이 마치 사이톡산을 과다투여한 것과 같이 실제 면역체계를 억제하는 신경 신호를 유발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달달한 단물은 쥐에게 학습된 신체적 반응을 통해 쥐를 죽이는 기제로 작용한 것이다. 우리 사람에게도 전혀 위험스럽지 않은 것들이 극단을 만들어 내는 장막으로 자리할 수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사람은 현재를 살지만 많은 부분 기억으로 산다. 현재에 오감으로 들어오는 정보는 그대로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기억과 연결되어 조정되고 해석된다. 그래서 늘 새로운 것이 아니다. 조정과 생각, 판단을 담당하는 전두엽은 들어오는 정보가 저장된 기억정보와 비교하여 익숙한 것이면 개입을 하지 않는다. 효율성을 위해서 뇌를 그만큼 적게 쓴다는 것이다. 뇌로 들어오는 자극이 동일하게 반복되면 계속해서 우리의 주의를 새롭게 끌기 어렵다. 자극이 습관화되었고 이미 기억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을 잠재억제(latent inhibition)라고 한다. 이런 뇌의 기능 덕분에 우리는 새롭지 않고 중요하지 않고 뻔한 자극을 무시할 수 있게 된다. 역시 이런 효율성은 언제나 양날의 칼이다. 이 잠재억제가 너무 강할 때는 우리는 조금씩 변화하는 현실의 속성을 망각하고 현실이 아닌 기억으로 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현재를 살면서도 현재에 존재할 수 없는 이유다. 이런 장막은 누구에게나 존재하고 내 앞의 장막이 실제인지 아니면 과거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장막인지 항상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생각하는 인간에게 의식이란 기억을 기반으로 한다. 강한 기억이 있고 느슨한 기억이 있다. 이런 기억에 따라 선입관도 생기고 고정관념도 생긴다. 이런 생각시스템 즉, 기억과 습관, 선입관과 고정관념들  덕분에 빠르고 효율적인 판단과 행동을 할 수 있지만 자신을 영원히 가둬 버리는 불행의 장막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역경을 극복하는 인간의 회복력(Resilience)연구에서는 ‘사고의 함정’을 극복하는 훈련이 있다. 속단, 터널시야, 과잉일반화, 감정적 추론은 모두 이런 생각시스템의 맹점을 극복하는 것들이다. 충분한 정보 없이 사물이나 상황의 작은 일부분만 보고 판단하는 속단과 수많은 정보 중에서 특정 정보만 지나치게 빠져 해석하는 터널시야, 작은 일부분을 보고 전체를 판단해 버리는 과잉일반화, 일부의 감정을 토대로 결론을 만들어 내는 감정적 추론도 모두 기억을 기반으로 하는 인간의 맹점이자 양날의 칼들이다. 실제 현실과 현재와는 다르게 이미 만들어져 있는 기억으로 현실을 사는 우리 내부의 장막들이다. 기억을 통한 장막은 우리의 신념과 믿음이 되어 현실처럼 다가온다. 그리고 이런 기억, 신념, 믿음은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고 빠르게 반응한다. 빙산에서 보이는 부분보다 보이지 않는 부분이 훨씬 크듯이 우리 속에 있는 ‘빙산믿음’이 우리의 현실로 나타나는 경우가 더 많다. 숨겨진 빙산믿음의 내부 장막만 걷어 낸다면 현재의 순간을 충분히 만끽하면서 보다 충만한 내적자발성으로 살아 갈 수 있지 않을까 격하게 기대한다.


브런치의 글들이 <북프로젝트>의 대상을 받고, 책으로 나왔습니다. 브런치의 글과 그 외의 글들이 세련되게 정제되어 나왔습니다. 많은 관심을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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