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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권수 Sep 02. 2017

음미, 그 기억은 우리를 지켜주는가?

기억과 공감하는 순간에 온전히 살아 있음을 느끼는 나

햇빛에 바짝 마른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면 언제나 기분이 좋다. 이 세상에서 가장 상쾌한 감각이 있다면 까끌까글한 마른 수건이 얼굴의 물기를 끌고 갈 때의 감촉이다. 그리고 단어를 찾을 수 없는 무색의 냄새다. 이때의 감각과 기억은 고단한 세월에도 언제나 수건을 삶아 바짝 마른 상태로 건네주신 어머니와 연결되어 있다. 지금도 바짝 마른 수건으로 얼굴을 닦을 때는 그 순간을 깊이 음미하게 된다. 잠시라도 멈추게 하는 마력이 있다. 그러면 이상하게 피곤하고 지친 마음도 맑아지고 힘이 솟는다. 그 순간 나의 주의는 어떤 개입도 없이 그 감각에 몰입하고 행복해진다.      


긍정심리학에서는 긍정성을 확장하는 방법으로 ‘음미하기’를 권한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경험이나 기념품, 사진 등으로 깊이 음미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 보다 행복도와 긍정적 정서가 높다고 한다. 역경을 극복하는 회복력(resilience)의 자양분이 되고 전제조건이 되는 것이 바로 긍정적 정서다. 긍정적인 기억으로 음미하는 순간이 많은 사람이 부정적인 역경의 상황을 먼저 감지하고 역경이 사라지는 순간도 빨리 인식한다. 빠른 일상에서 지친 사람일수록 하루나 과거의 경험에서 음미하는 순간을 찾아 누리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오늘의 음미할 순간을 찾거나 과거의 기억 속에서 나의 존재를 채워 준 음미의 순간을 찾아 하루에 하나씩 적어 보았다. 그러면 마음이 풍성해지고 든든해진다.      


조기준 작가의 공감 에세이 <밤 열두 시 나의 도시>를 읽고 있는데 여기저기서 장국영, 윤동주, 빨간머리앤, 카뮈, 존레논, 크루먼쇼, 무카카미 하루키 등... 나의 시간도 함께 속속들이 채웠던 인물, 영화, 책, 음악 등이 쏟아져 나온다. 작가는 일상에 음미할 수 있는 수많은 소재와 깊이 교감하며 자신의 시간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공감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 공감은 나에게도 존재했었던 순간순간들의 기억과 연결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내게도 음미할 순간들이 이렇게 많았구나! 생각하면 행복해진다. 아직도 내게 유명한 소피 마르소라는 배우는 영화 ‘라붐(La boum)’의 헤드셋을 낀 애띠고 아름다운 10대 소녀로 자리하고 있다. 영웅본색의 주윤발과 장국영의 모습도 살아 있다. 비장하고 몽환적인 영화의 주인공과 그 당시 온전히 마음을 다 내 주었던 나를 기억한다. 영화 ‘라밤바’에서 주인공 리치가 전화박스에서 사랑하는 연인에게 오~ 다나~ 하며 ‘다나’라는 노래를 직접 만들어 불러주던 장면에 취해 돌아온 친구들, 동네의 전화박스에서 ‘다나’를 미친 듯 부르던 순간도 생각난다. 기억은 끝없이 추억의 순간을 이어내며 온전히 그 순간을 음미하도록 해준다. 참 행복하고 푸근하며 오직 그 순간만으로 완벽함을 느낀다.      


바쁘게 돌아가지만 결말지어지지 않는 시간들 그리고 바로 나오지 않는 성과에 스트레스 받으며 바짝 긴장하며 사는 일상에 조기준 작가의 책은 기억과 온전히 공감하도록 만들어 주었다. 지금은 함께 살고 있는 집사람이 처음 차를 사서 긴장하고 초조해 하며 내가 있는 곳으로 데이트 하러 왔었다. 꿀맛 같은 하루의 데이트를 마치고 되돌아 갈 때 걱정과 함께 헤어짐에 아려오는 심장의 쓸림도 생각났다. 더 이상 경험하지 못할 미지의 감정들...학교를 그만두고 독립했을 때 대낮에 직장에 있지 않았던 어색함과 두려움, 그와 동시에 여유와 자유로움을 느끼며 집사람과 올랐던 지리산 노고단의 해거름 하늘도 생각났다. 인출되지 않았던 기억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온 감각이 살아나고 존재하는 그 자체로 행복하고 의미 있었다. 기억을 현재로 끌고와 현재를 온전히 음미하는 자신을 느끼며 나의 인생도 꽉꽉 채워져 있었구나 생각하게 된다.      


다시 생각한다. 자기결정성 이론으로 유명한 에드워드 데시가 말한 것을...“살아 있음의 진정한 의미는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을 온전히 폭넓게 경험하는 것이다” 음미하는 순간 내 감각과 감정이 온전히 살아서 인생을 폭넓게 유영하게 된다. 그래서 삶의 의미와 만족감이 밀려오는 것일까? 음미함으로써 기억은 오늘의 우리를 지켜준다.      




음미할 기억을 끌어내는 조기준 작가의 공감 에세이 

<밤 열두 시 나의 도시-지금 혼자라 해도 짙은 외로움은 없다. >

 http://www.yes24.com/24/goods/44998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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