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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리원 Aug 31. 2024

대단한 내가 된 것 같지만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본격적으로 접영을 배우기 시작하자 강사는 수영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했다. 네 가지 영법을 다 할 줄 안다는 건 그중 하나라도 제대로 하는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접영은 이제 막 웨이브를 익혔는데, 팔 돌리기를 시작했으니 정말이지 ‘이제부터 시작’인 셈이다. 


   

물 위로 떠오르면 어깨를 이용해 양팔을 저 멀리 던지세요!

   



 강사의 말을 머리는 이해하지만 몸은 여전히 그의 말을 거부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 모두는 마음과는 다르게 양팔을 휘저으며 만세를 부르는 형국이랄까.


 그렇게 접영의 어려움을 느끼며 3,4 레인의 수영 경력 십 년 된 분들의 접영을 볼 때면 경이로운 지경에 빠지고 만다. 가볍고 스무스한 웨이브, 전생에서부 내던 듯한 팔 동작, 그리고 스피드. 그들은 어느 타이밍에 숨을 쉬는 건지 보이지도 않는다.

  


 여전히 화, 목 강습을 하고 있다. 체력이 늘면 매일 해야지 생각했으나 일주일에 두 번도 체력 소모가 상당해 수영 다녀온 날은 지쳐서 쓰러져 있다. 그런 나를 달래 가며 수영을 다닌다. 그러고 보면 나이 들수록 타협의 기술은 늘어만 가서 뻔뻔해지는 게 아닐까 싶다.

  

 화요일은 일반 수영, 목요일은 오리발 데이다. 오리발을 신고 수영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 추진력과 그 신남, 간절히 기도한 적도 없는데 온 우주가 내 편을 들어주는 기분이다.  오리발을 신고 수영하면 내가 뭐라도 된 것 같다. 접영의 웨이브에 맞춰 팔 던지기아다리가 딱딱 맞는 것 같다. 체력 소모도 크지 않고, 종아리가 땡땡하니 터질 듯해도 기꺼이 터져주겠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운동이 즐거워진다. 그러나 오리발이 없으면 나는 곧 아무것도 아님을 안다. 이게 진짜 나인 것이다. 해서 목요일은 신나고 화요일은 침울해진다.

     


수영은 근성입니다. 근성이 있어야 실력이 늘어요. 그것도 아주 조금씩 늘 거예요

  


 침울한 화요일, 풀죽은 우리들을 보며 강사가 한 말이다.

그는 ‘아주 조금씩’이라는 말을 하며, 맞닿은 손바닥을 힘겹게 떼어 보이는 동작을 했다. 누군가 그의 팔꿈치를 강한 힘으로 밀어붙이고 있다는 듯이.



        



 한동안 ‘내 글 맘에 안 들어 병’에 시달려 브런치도 블로그도 방치하고 있었다. 나는 이 병이 곧잘 찾아온다. 남들은 자기 글을 자기 자신이라도 어여삐 여기고 사랑해 준다는데, 나는 왜 꼴 보기 싫은 마음이 드는지 모르겠다. 그러다 강사의 저 말에 얼른 메모해야지 생각했다.


    

‘근성이 있어야 실력이 늘어요’

  


 수영도 글쓰기도 내게 부족한 건 근성이 아니었을까. 꾸준히 가지고는 안된다. 뿌리 깊게 박힌 성질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내게 뿌리 깊게 박힌 건 무엇일까. 포기하지 않는 마음일까? 나를 인정하는 메타인지 능력일까? 쓰기 선생님은 내게 재능과 감각이 있다고 했는데, 그건 대체 어디에 숨은걸까.


 

 인생은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라는데, 이 나이가 되어도 자문은 계속된다. 나는 단순히 글을 쓰고 싶은 걸까, 글을 쓰며 얻고자 하는 게 있는 걸까. 그게 무엇인지 잘 몰라도 괜찮지 않을까? 그저 가고 있으면 된다. 대단한 나였던 것 같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 나라는 걸 알게 되는 게 삶이다. 그러니까 침울한 화요일 따위 날려버리고 즐겁게.  아, 이 타협의 기술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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