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빵은 두툼히 썰려 나왔다. 따끈하고 부드러웠다. 앙버터가 유행인지라 즐겨 찾는 맛은 아닐지라도 앙버터로 주문했다. 팥의 단맛이 좀 덜하길 바랐으나 애초에 체인점에서 수제 팥 맛을 기대하는 건 무리였다. 우린 지금, 도쿄메트로 신주쿠 교엔마에 역 앞 [코메다 커피]에서 아침으로 빵과 커피를 먹고 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트리플 앱을 열어 보니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버스 한 번이면, 와세다 대학에서 내릴 수 있었다. 여행 일정을 등록해 놓으면, 우리가 있는 곳 위치를 찾아내 편리한 교통편을 알려주는 모양이다.
버스를 타고 한 번에 와세다 대학에 도착했다. 노선도 간단했다. 베스트 드라이버인 혜경님은 우핸들인 일본의 차량과 도로, 신호등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나는 신호등까지는 보이지도 않던데 역시 사람은 자신의 깊이만큼 보이는 게 다르다.
와세다 신주쿠 캠퍼스는 생각보다 작고 아담했다. 지은 지 백 년도 넘어서인지 건물은 낡았고 무엇보다 매우 고요했다. 우린 하루키 라이브러리도 금방 찾았다. 예약이 필요할까 해서 수없이 검색하던 하루키 도서관이다. 화면으로만 보던 건물 앞에 서니 어쩔 수 없이 감개무량하다는 클리셰를. 정말 이거밖에 없니? 단어가?
유리로 된 자동문을 열고 들어서자 윗 층과 아래층이 한눈에 보이는 아치형 공간과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인다.왼쪽의 공간 입구에 흰색 쉬폰 커튼이 하늘거리고 있었다. 거기부터 입장하는 거라고 안내하는 직원이 말했다.
하루키 도서관의 50대로 보이는 여자 직원은 상당히 유쾌해 보였다. 그녀는 도서관 안내하는 일 자체를 즐기는 듯했다. 우리를 쫓아오며영상은 안 되지만 사진은 얼마든지 찍으라고 했다. 내가 벽에 걸린 사진에 대해 물어보니 대화가 통한다고 느꼈는지 더 열심히 응대했다.
우릴 앉혀두고 사진을 찍어주고, 하루키가 엄선한 재즈가 나오는 오디오 룸과 그의 책을 오디오 북으로 들을 수 있는 공간도 안내했다. 하루키가 여기 자주 오냐 물어보니 몇 번 다녀갔다고 했다. 만난 적 있냐 하니 아쉽게도 자신이 근무가 아닌 날만 다녀간다고. 세계 여러 곳에서 하루키의 팬들이 찾아와서 기쁘고 보람 있다며 그녀는 웃었다. 당신도 하루키의 팬이냐고 묻자 ‘아, 그건 아니지만’이라고 해 한바탕 웃었다. 그날 최고의 반전이었다.
팬은 아니지만 일은 덕질처럼
그녀가 네 번이나 찍어준 사진
여행지에서 만나 대화를 나눠본 일본인들은 대부분 자신이 공부한 한국어를 확인받고 싶어 했다. 또는 한류스타 얘기에 열을 올렸다. 도서관에서 만난 그녀와의 대화는 내 쪽이 아쉬움을 느낄 정도로 만족했다. 사실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 이야기 나눌 일본인은 처음 만난 셈이다.
돌이켜보니 하루키 라이브러리는 그녀 덕분에 더 즐거웠다. 줄곧 목에 명찰을 걸고 있었는데, 이름을 보고 기억해 둘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