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골목 끝에 다다랐다.
과연!이라는 감탄사가 뜨겁게 달궈진 정수리 위로 둥실 떠올랐다. 막다른 골목은 아니었다. 좁고 기다란 담장이나 화분을 내놓은 출입문들이 줄지어 있는 걸 보니, 가정집들이 모여 앉은 보통 마을이었다. 그런데도 그 골목 끝의 폐가와 폐차의 풍경은 과연 압도적이었다.
하필 딸랏너이를 찾은 날은 그 골목(관광지가 되어버린 골목)이 휴무인 날이었다. 웬만한 식당이나 유명한 카페는 셔터를 내린 상태였다.
휴무면 어떤가 그건 그거 나름대로 한적해서 좋은 거지. 애써 합리화했다. 살인적인 더위에 손 선풍기마저 뜨거운 바람을 생산하고 있었고 아이들이 칭얼대기 시작했다. 골목을 걷다 문 연 커피숍을 하나 발견했다. 유일하게 하나였는데, 아무래도 이곳은 휴일이라도 문을 열어야 먹고살 수 있는 모양이었다.
아이스커피와 아이들을 위한 과일주스를 주문했다. 카페 여주인에게 이 근처에 사진 찍기 좋은 장소가 있다고 들었다. 거기 혹시 알고 있느냐고 묻자, 그녀는 한참 생각하는 표정이더니 아! 하고 반짝였다. 곧이어 가게 옆 골목으로 쭉 가서 오른쪽으로 꺾고, 그 길 따라 어쩌고....
태국말 같은 영어를 대충 머릿속에 욱여넣었다.
커피도 과일주스도 훌륭했다. 에어컨 바람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꼈는지 모를 일이다. 제부에게 아이들을 맡겨놓고 동생과 둘이서 그 사진 스폿을 다녀오기로 했다. <제부와 아이들>은 이미 녹다운이 되어서 같이 가자 해도, 한사코 거부했을 것이다.
둘이 카페 주인이 말해준 데로 골목을 걷기 시작했다.
손잡고 달래 가며 걷는 아이가 없으니 그야말로 자유였다. 서로 찍고 찍어주고, 서로 비웃으며 깔깔거렸다. 확실히 우리의 발걸음에는 분방(奔放) 함이 듬뿍 묻어났다. 여전히 햇살은 뜨거웠고 이마며 목덜미에 땀이 흥건했으나, 홀가분한 기분은 불쾌지수 따위 가볍게 눌렀다.
과연!
골목 끝은 고요했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었다.
파란 하늘 어딘가 모를 방향에서 새소리가 들려오기만 할 뿐이었다.
버려진 2층짜리 폐가와 그 앞의 폐 자동차. 폐가 앞의 이름 모를 열대식물. 낡고 허름한 형태는 기막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버려진 폐가가 이렇게 빈티지하게 보일 수도 있다니, 우리는 넋을 놓고 그곳에 서 있었다. 행여 사라질까 봐 놓칠까 봐 부지런히 사진을 찍고, 동영상으로 그 순간을 담았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풍경이었다.
바로 길 하나 건너에 차오프라야 강변의 화려한 호텔들과 명품샵, 분수쇼 등이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대비되는 고요한 아름다움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랬다. 나는 늘 허물어진 것에 마음을 빼앗겼다. 이미 다 갖춘 듯한 화려하고 멋진 상대에게는 '멋지구나' 느끼기만 할 뿐, 마음이 움직인 적은 없었다. 멋짐을 느끼는 것은 동경이다. 동경과 사랑은 다르다.
사랑에 빠지는 것에 이유는 없었다.
이유가 있다는 것은, 그 이유가 사라진다면 사랑도 끝난다는 것 아닌가? 이 얼마나 자본주의적인 사고방식인가. 그러나 인간은 대부분 그러하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기에 끊임없이 이유를 찾아야만 했던 순간들. 그게 나의 규격이라도 된다는 듯 끼워 맞추려고 했다. 거기에 진심은 없지만, 끼워 맞춘 형태는 존재했다.
버려진 폐가와 폐차의 풍경에 홀딱 마음을 빼앗기고 다시 돌아오는 길. 골목 담장마다 예쁜 분홍색 꽃들이 만발하게 피어 있는 게 보였다. 굽이친 골목의 그늘마다 한껏 늘어져 게으름을 자랑하는 고양이들도 사랑스럽게 보였다. 짜증스럽던 '작열하는 태양'도 나 자신이 프리즘이라 된 듯한 기분으로 받아들였다. 마음은 저절로 발그레해졌다.
그러나 마음이 뭐 어쨌다는 건 아니다
고작해야 마음일 뿐이고, 진심일 뿐이다.
그건 '추억'처럼 별 힘이 없다.
사진 찍힌 것처럼 선명히 머리에 남은 날이 되었을 뿐이다.
딸랏너이가 휴일이었기에 만날 수 있었던 풍경이었을 것이다. 그날 휴일이 아니고 다른 날처럼 번잡했더라면, 결코 마음 따위 빼앗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비어있음은 채우기에 더할 나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