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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리원 Feb 01. 2024

상해의 식당에서

남편은 어쩌고들 왔어?

“남편은 어쩌고들 왔어?”


상해의 한 식당에서 우리 맞은편에 앉은 아주머니가 한 말이었다. 여자 넷으로만 이루어진 우리 일행을 보며 아가씨인지 아줌마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둘은 결혼했고 둘은 안 했어요라고 답했다. 그러자 남편은 어쩌고?라는 말이 돌아왔다. 그 중년의 아주머니는 아들 손주 며느리와 함께였다.  

    

그 친구들과 몇 년이 흐른 후 칭다오에 함께 갔다. 그때에는 모두 기혼자였다. 식당에 앉아 동파육을 기다리는데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딸아이를 잘 픽업했으니 걱정 말고 여행 즐기라는 말.  아이를 바꿔달라고 한 후 이모 말 잘 듣고 얌전히 놀고 있으라고 말했다. 내 통화를 들은 건너편 한국인 아주머니가 또 참견 아닌 참견을 했다.


“아가씨인 줄 알았는데, 애 엄마였어? 대단하네. 남편 애 다 두고 여행도 다니고”


악의 없이 한 말이었겠지만, 우리는 모두 못 들은 척 대꾸하지 않고 식사했다. 패키지여행의 단점은 이런 순간이다. 타인의 침범을 견뎌야 하는 순간.      






얼마 전 그 친구들과의 여행 동영상을 다시 보는데, 당시의 대화가 들려왔다. 우리는 모두 가족을 두고 혼자 떠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남편 아이 친정 시댁 등 가족 얘기를 하고 있었다.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여행을 와서까지 종속됨을 버릴 수 없는 것인가? 이것은 여자여서일까? 남자가 혼자 여행한다면 과연 대단하다는 말을 들을 것인가? 왠지 씁쓸해지는 기분을 삼키며 동영상을 껐다.



일상을 잊고 싶어 떠나왔지만, 어쩔 수 없게도 일상을 다시 들여다 보게 되는 게 여행인가보다. 그리고 그 일상의 빈틈을 발견하고 보듬게 된다.

  


우리는 학창 시절 앙드레 지드를 나눠 읽고, 조지 마이클의 음반을 빌려 듣는 사이였다.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을 보고 줄리에트 비노쉬처럼 자유롭게 사랑할 줄 알았다. 그러나 결혼하고 생계에 허덕이며 통속적인 삶으로 앞장섰다. 꿈 많던 소녀 시절은 꿈으로 남았다. 삶의 허기짐을 느낄 때마다 여행 짐을 꾸리지만 두고 온 가족들의 일상이 또 다른 짐으로 남겨지는 건, 나의 과업인지 여자로서의 숙명인지 여전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조금씩 결별하는 중이다.

비록 명절에는 친정보다 시댁에 먼저 가야 하고, 모임이 있으면 집에 남은 가족들을 위한 식사를 준비해 놓고 나와야 하지만 이것이 나에게 내재된 가부장제의 영향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바꿀 수 없는 현실에 조금씩 부딪히며 틈을 만들고 조각내고 있을 뿐이다.


내가 나를 먼저 무르게 만들어 타인에게는 ‘여자 혼자 여행 다니고 대단하다’라는 말을 내뱉지 않는 사람이 되고싶다. 물론 혼자 여행 다녀도 안전한 세상이 선행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고.      


다시 친구들과의 여행을 준비 중이다. 다시 내 일상의 빈 틈을 들여다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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