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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리원 Dec 01. 2023

나의 첫 도쿄일탈

첫 도쿄여행의 맛은 해방과 일탈이었다


첫 도쿄여행의 맛은 해방과 일탈이었다.

자신들이 세상 모든 가치의 척도라고 믿는 사람들 틈에서 눈물을 삼키던 직장생활이었다. 맏딸은 살림밑천이라는 말에 나를 구겨 넣던 부모님에게 저항하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다.  금요일 밤에 출발해 월요일 새벽에 돌아오는 주말여행을 시도했다.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날아갈 것 같은 해방감을 느꼈던 건, 나의 일상이 주는 스트레스가 지대했던 탓이리라.


모든 게 다 신기했다. 출퇴근할 때마다 타던 지하철도 여행지에서의 감각은 달랐다.  낯선 문화의 관광지나 맛 집을 찾아가는 것, 서울이라면 사지도 않았을 이색적인 물건을 쇼핑하는 것, 밤늦도록 발바닥이 뜨겁게 걸어 다녀 보기도 했다.


낯선 곳에 혼자 뚝 떨어진 고립된 감각은 이상한 카타르시스를 불러왔다. 아는 사람도 없고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안전함보다 불안감이 더 큰 아슬한 마음은 켜켜이 묵었던 억압감을 상쇄시켰다. 자주 오게 될 것 같다는 예감도 들었다. 그리고 정말 일본은 해마다 한 번씩 찾게 되었다.  


    



딱히 일본이 좋다거나 일본 특유의 문화에 이끌렸던 것은 아니다. 우리 집은 형편이 빠듯했다. 문예 창작과에 가고 싶었지만, 아빠는 ‘글 쓰는 직업은 배고프다’고 하셨다. 내 밑으로 동생이 둘이나 있으니 ‘맏딸의 할 일’ 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나는 상경계열을 전공했고 무난하게 취업했으며 ‘살림밑천’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앞가림을 했다. 다니던 회사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건 금세 깨달았지만 그만둘 수 없었던 건, 동생들이 줄줄이 대학에 다니고 있어서였다.

     

글 쓰는 것을 배부른 사람들의 취미생활쯤으로 간주해 버리는 부모님을 마냥 원망만 할 수도 없었다. 경주마처럼 달리느라 고단했던 나는 글쓰기에 대한 열망도 잊어버렸다. 억압된 마음은 여행지에서 의외의 해방감을 느꼈을 것이다.  

    

한 때 YOLO라는 말이 유행했다. 인생은 한 번 뿐이니 현재 나의 행복을 중시하는 태도를 뜻하는 말로 해석되곤 한다. 그렇다고 재산을 탕진해서까지 여행 가는 무모함을 시도할 용기가 K장녀인 내게는 없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의 나는 나름대로 숨 쉴 구멍으로 여행을 택한 게 아니었나 싶다.  


    

첫 도쿄여행 이후 14년이 흐른 뒤, 다시 도쿄를 찾았다.  

이번에는 여동생과 함께 각자의 딸들을 데리고 오다이바를 걸었다. 알 수 없는 그리움이 고개를 들어 목구멍을 자극했다. 여기저기에 어리고 풋풋하던 내가 있었다. 근데 만질 수도 안아볼 수도 없었다. 그 ‘나’는 나만 보이고, 나만 알고 있었다.  얼마든지 몇 번이고 도쿄에는 갈 수 있지만, 그 시절로는 갈 수 없었다. 내가 그리워한 게 도쿄인지, 그때인지, 그때의 나인지 알 수 없었다.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른 채 찾아야 한다는 절실함만 남은 감정이었다.


나는 아마도 내가 그리웠으리라. 어딘가에 있을 새로운 인생을 기대하는 막연함도 20대라 가능했다. 속박당했지만 자유로웠던 나라는 걸 비로소 알게 된다. 그 속박은 부모님이 아닌 내가 스스로 했다. 글이 쓰고 싶으면 쓰면 되니까.


바로 지금 이 순간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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