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리원 Dec 15. 2023

오사카의 눈물 젖은 빵

젊음은 고단하고


'세상에 빵을 안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사생활들 p.127 꿈꾸는 인생, 김설지음>


책을 읽다 말고 빵 터져서 미친 듯 웃어버렸다. 빵을 안 좋아하는 사람 그게 바로 나다.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는 김설 작가의 말이 왜 이리 귀여우신지.


나는 여자들이 보편적으로 좋아하는 '커피와 빵'의 조합을 즐기지 않는다. 굳이 노선을 찾자면 빈 속에 카페인을 들이붓는 쪽이랄까.  어렸을 때부터 빵을 비롯해 단 음식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도 빵을 씹으면 손이 아닌 입으로 밀가루를 반죽하는 느낌이 든다.


빵보다 밥이나 면을 선호하는 건 단순한 취향이다. 밥의 찰짐, 면의 쫄깃함을 선호한다.  이런 나도 오사카 여행에서 맛본 빵은 '빵예찬'을 할 수밖에 없는 맛이었다.






 도쿄 일탈 1년 후 오사카로 떠났다.

이번엔 입사 동기들과 함께였다. 그 시절, 우리는 모두 가난했다. 그럴듯한 직장에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입사한 상태였지만 고작 입사 3년 차인 우리는 20대 중후반이었다.  누군가는 학자금 대출을 갚는 상태, 누군가는 다달이 내는 월세,  누군가는 친인척의 권유로 거액의 보험료를 납입하는 상태였다.  취직만 하면 자유로울 줄 알았던 착각은 해변가의 모래성처럼 허물어진 지 오래였다.  직장은 우리의 젊음을 더 옥죄는 도구였다.


 오사카 여행 4인방은 하필 애인도 없었다.

빚은 있고 애인은 없는 우리에게 일탈은 여행이었다.  가격과 시간이 부담이니 멀리 갈 수는 없고 가까운 일본이 딱이었다.  우리의 주머니 사정에 맞는 숙소의 벽은 종이장 같아 옆 방의 별소리가 다 들렸다. 창문도 활짝 열 수 없는 구조였다.


 오사카는 일본의 부엌이라 불릴 만큼 식도락 여행지다. 그러나 우리는  제대로 된 식당에 들어가 식사 한 기억이 없다. 대부분 주먹밥이나 길거리 음식으로 때웠다. 주먹밥 중에서도 제일 싼 걸 골라 "와 이렇게 맛없을 수 있나?" 라며 걷기 위해 먹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청승인지 모른다.


 그렇다고 아낀 돈으로 대단한 걸 한 것도 아니다. 하루는 교토에 다녀왔고 도톤보리를 걷고, 오사카성에 방문했다. 피곤했지만 더 많은 곳을 둘러보길 원했다. 여행은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딱 20대 다운 생각이다. 나이 든 지금은 많이 쉬고 맛있는 음식을 먹길 원한다.


 교토에서 돌아오던 날, 오사카의 어느 지하철 역이었을 것이다. 역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지하상가에 있던 빵집 이름은 지금도 기억난다. 허기진 영혼들을 사로잡는 빵냄새의 출처는  hokuo라는 빵집이었다. 거기서 잊을 수 없는 카레빵을 맛보았다. 겉바속촉이라는 말이 없던 당시, 한 입 베어 물었을 때의 감상은 맛있다, 끝내준다도 아닌 '회의감'이었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아끼고 동동거리며 여행했을까?

절약의 고단함을 한 번에 헹궈주는 맛이었다. 따끈하고 매콤한 카레를 부드러운 빵이 감싸고 바삭한 겉옷이 한번 더 감싸고 있었다. 카레빵을 깨물던 순간의 기분은 18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날은 크리스마스이브였다. 마지막 밤이니 숙소 근처에서 맥주를 한 잔씩 했다. 가난한 여행자의 안주는 풋콩이었다. 숙소로 돌아와 알아들을 수 없는 버라이어티 티브이쇼를 틀어놓고 있자니 가슴속 무언가 답답함이 치밀어 올랐다. 반 밖에 열리지 않는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도했다. 창 밖 아래 풍경은 주유소였다. 오토바이 몇 대와 젊은 남자들이 모여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주유소의 기름 냄새, 어렴풋한 소음, 차가운 밤의 공기, 까만 하늘. 그날 밤의 감각이 마치 내 미래 같아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풍경이 되었다.






 몇 년 전, 가족들과 교토여행을 갔을 때였다. 하필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고 있어 유명하다던 비와코 호수의 풍광을 볼 수 없었지만 일정대로 전망대에 올랐다. 보이는 거라곤 세차게 내리는 빗방울뿐이어서 카페에 앉아 낮맥을 했다. 안주는 카레빵이었다. 이 나라는 카레에 진심이구나 생각하 슬며시 웃음이 따라 나온다. 암울했던 오사카 여행에서 먹었던 카레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기억이란 과거로부터 불어오는 돌풍 다.  

덜컹덜컹 아무렇게나 돌아다니다가, 카레빵 하나로 그날의 감정까지 모두 환기시킨다. 그 바람은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들어 올려 뇌리의 깊은 곳까지 침범하고야 만다.



그래도 괜찮아




그때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빚이 좀 많아도 미래가 캄캄해도 뭐 어때. 넌 젊고 건강하아.


그 후로 그때처럼 맛있는 카레빵은 맛보지 못했다.

다시 그 빵집에 가 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예전처럼 맛있지 않을 것이라는 걸.  


젊음은 고단해서 애틋하고,

빵은 눈물 젖은 서러운 빵이 제일 맛있다.






이전 02화 나의 첫 도쿄일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