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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리원 Mar 08. 2024

유후인 첫 료칸의 기억

고맙다고 말해야 했는데..


12월 1일 유후인 터미널에 내리자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겨울에도 따뜻하다던 규슈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라고 했다. 우리는 코인 로커에 짐을 넣어두고 유모차를 끌며 우산도 없이 호기롭게 온천마을을 걸었다. 후쿠오카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오느라 도로가 꽤 많이 밀려 시간이 지체되었지만 이대로 숙소로 들어가긴 싫었다. 부츠가 젖는 줄도 모르고 걸으며 이거저것 구경하고 쇼핑했다.

     


이제 정말 예약한 료칸에 가야 할 시간이다. 구글맵을 켜고 외진 골목길을 찾아 들어갔다. 지금도 그렇지만 10여 년 전인 그때도 유후인에는 고급 료칸이 문전성시를 이뤘다. 그러나 연차보상금을 줄 돈이 없으니 억지로 휴가를 쓰라고 해서 얻는 시간이었다. 가장 싼 료칸을 예약했고, 그곳은 유후인 역에서도 외진 곳에 있었다. 걷는 골목에 가로등 없었다.

   

도착한 곳은 어릴 적 자주 갔던 시골 할머니댁 같은 분위기였다.

방문은 미닫이문, 삐거덕거리는 툇마루를 올라 다다미방으로 들어서자 방 한가운데 코타츠가 있었다. 반대편에도 커다란 미닫이창이 있었는데 그곳을 열자 중정이 나타났다. 여름이었다면 예쁜 정원을 볼 수 있을 듯했다. 낡은 시설이긴 했지만 그런대로 만족했다. 그날 밤은 눈이 펑펑 쏟아졌고 눈 내리는 노천탕에서의 목욕경험은 난생처음이라 꽤 낭만적이었다.



    


당시 아이는  살이었다. 우리는 예약사이트를 통해 아이 식사까지 포함됨을 확인하고 예약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조식은 어른 2인분만 나왔고, 아이에게 먹일만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곧 주인을 불러 아이 식사는 언제 나오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건 없다고 하는 게 아닌가? 나는 아이 식사가 나올 거라 생각했기에 전날 마트에서 아무것도 사지 않은 상태라 적잖이 당황했다.


      

우리가 한국인이라 그런가? 아니면 여기가 저렴한 곳이라 그런가?


이런 못난 생각은 왠지 억울한 마음을 불러온다. 억울함과 난폭한 마음이 뒤엉켜 영어로 항변했다. 당시에는 내가 일본어를 전혀 할 줄 몰랐다. 50대로 보이는 여주인도 우리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식당 내 다른 숙박객들이 흘끔흘끔 우리를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여주인은 곧 주방을 향해 누군가를 불렀다. 안에서는 순해 보이는 인상을 가진 청년이 나왔다. 한국인 유학생이라고 했다.


     

우리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유학생은 중간과정에서 뭔가 누락된 것 같다면서 주인에게 전달했고, 그녀는 수긍한다는 표정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잠시 후 오므라이스 하나를 만들어서 접시에 담아 나왔다. 웃으며 아이 앞에 내밀었다. 이건 돈을 받지 않겠다면서. 순간의 당혹은 머쓱하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된다.


    

퇴실을 하며 키를 내미는 우리에게 여주인은 유후인 에끼 마데?라고 물었다. 유후인 역까지 가느냐는 것이다. 그러더니 손수 데려다주겠다며 작은 경차 하나를 마당에 주차시켰다. 우리 짐이며 유모차를 뒷 트렁크에 실어주었다.


그의 친절이 일본인 특유의 오모테나시 정신에서 비롯된 것인지, 우리의 난폭했을지 모르는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뒷좌석에 아이와 함께 앉은 나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유후인 역까지 순식간에 도착하지 않았더라면 더 안절부절못했을 것이다. 그는 차에서 내려 몸소 우리의 짐을 내려주고 잘 가라고 인사했다. 저렴한 료칸이었지만 그의 서비스는 결코 저렴하지 않았다.


     

유후인 첫 료칸에서의 기억이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은 그녀의 친절 때문이다. 그분의 넉넉한 마음이 아니었더라면 유후인에 내리던 눈도, 처음 경험한 노천탕도, 아기자기 예쁜 골목들도 아름답게 기억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의 낯뜨거움을 오래도록 기억하려 한다. 같은 상황에 놓이더라도 한번 더 생각하고 배려하려 한다.  손해보더라도 의연하게 넘길 줄 아는 넉넉한 마음을 장착하고 싶다. 여행이 주는 선물은 이러한 마음의 성장이 아닐까.


벌써 12년 전 일이다. 그녀는 아직 거기에서 료칸을 하고 있을까? 훌쩍 커버린 아이와 다시 한번 그곳을 방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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