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리원 Dec 01. 2023

여행의 당위를 찾아서

남편이 실직했다

남편이 실직했다.   

    

자발적 실직이었다. 2016년 12월 31일이었고, 아이는 초등1학년이었다. 나의 입이 화근이었다.  며칠 전 남편은 넌지시 내게 자신이 회사를 그만두면 어쩌겠느냐 물어봤었다.  가타부타 앞뒤 상황 설명 없이 그렇게만 말했기에, 힘든 직장생활을 토로하며 순간의 위로를 기대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나도 회사 그만두게 되면 여행이나 다니자는 빈말로 응수했다.    

  

내가 뱉은 말이 있기에 무어라 반응할 수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저 믿기지 않아 표정관리가 벅찰 뿐이었다. 겨울방학 중이던 아이는 출근하지 않는 아빠에게 “아빠도 방학했어?”라며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새해가 시작되고 일주일쯤 지나자 남편이 혼자 바람 쐬러 강원도로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했다. 기왕 가는 거 아이도 방학이니 다 같이 다녀오자고 제안했다. 적어도 ‘여행이나 다니자’라고 뱉은 내 말을 지켜야 울분이든 원망이든 할 수 있겠다 싶은 마음도 있었다.

     





여행지는 강원도가 아닌 일본 홋카이도로 정했다.  

우리에게 넘쳐나는 건 시간이었다. 소량의 퇴직금도 있었다. 바로 다음 주 출발로 항공권을 결제하고 호텔 동을 짜기 시작했다.  주눅 들어 보이던 남편의 도가 여행 계획을 세우며  나아지는 게 눈으로도 보였다. 동종업계에 6개월 안에 재취업할 수 있다고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좀 쉬면서 여행 다니며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 것도 괜찮을 거라 여겼다.  

    

홋카이도 치토세 공항에 도착해 짐을 찾고 밖으로 나가자, 생전 경험해 보지 못한 강추위가 피부에 와닿았다. 예약한 렌터카 업체 차량을 기다리며 서 있었다. 바깥에는 쌓인 눈 위로 또 눈이 쌓여 얼음처럼 단단해 보였는데, 아이는 그걸 연신 손으로 만지고 발로 건드리며 좋아하고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우리 미래도 얼음처럼 차가울 것이라는 걸. 남편은 그 후로 3년을 백수로 지냈다. 생각대로 일은 풀리지 않았지만, 잘 될 거라는 희망은 얼음처럼 견고했다. 시간과 기회가 될 때 여행을 다니자는 생각만은 확고해서 철없는 백수가족은 그 후로도 여러 번 여행가방을 꾸렸다.  

  


‘여행을 떠날 각오가 되어있는 사람만이 자기를 묶고 있는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 


나는 헤르만 헤세의 이 명언을 좋아한다. 미혼 시절부터 걸핏하면 떠나던 여행의 당위라도 된다는 듯,  결혼 후에는 독박육아에 대한 위로라도 되는 듯  되뇌곤 했다.  그러나 이 '백수들의 여행' 어떠한 속박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여실히 깨달았다.  이 글은 내가 수년간 여행을 다니며 찾고 싶었던 나 자신에 대한 고백이 될지 모르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