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다른 경험의 장이 열리는 일
“엄마 어디예요?”
지난주 금요일, 간단한 저녁거리를 사들고 집으로 가는 길에 아이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집을 10분 정도 남겨둔 상황.
“응, 엄마 한 10분만 있으면 도착해. 배고파? 조금만 기다려 금방 갈게.”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중문을 열고 나를 반겨주는 사춘기 아들. 집에 왔는데 아무도 없어서 허전했던 건가? 퇴근 시간이 지났는데 아빠도 없고, 엄마도 없으니 당황을 한 것인가?
“엄마, 나 C랑 축구하다가 C가 공인 줄 알고 내 손을 차는 바람에 손가락 다쳤어요.”
“손? 어디?”
왼손 중지가 부어있다. 살짝 눌렀더니 아프다고 얼굴을 찌푸린다. 꽤나 아픈 모양이다. 살살 움직이지만 어느 이상으로는 손가락 관절이 구부러지지 않는다. 너무 세게 차서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는 아이. 학원 갔다가 집으로 오는 길에 친구를 만나 학교 운동장에서 운동을 좀 했다고 하는데, 그 30분 사이에 사달이 난 것이다.
“참을 만 해? 일단 밥부터 먹자. 배 고프지?”
회식이 있어 늦게 오는 신랑 덕에 저녁은 시우랑 내가 좋아하는 분식으로 준비했다. 김밥과 순대 떡볶이.
배가 많이 고팠는지 참치가 들어간 고소한 김밥과 맵달맵달 번갈아 가며 혀를 강타하는 빨간 떡볶이, 탱글탱글한 느낌 전해지는 순대를 입안으로 마구마구 넣는 아이를 한참을 봤다. 농부는 논에 물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고, 부모는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른다더니 정말 그런 것 같다. 그 모습만 봐도 흐뭇하다. 하지만 내 배도 고프네? 둘이 시시껄렁한 농담 주고받으며 저녁을 먹었다. 손가락은 아프지만 참을만하다는 아이. 상황 지켜보고 내일 아침에 병원을 가도 되겠거니 하고 난 예배를 위해 교회로 향했다.
9시. 혼자 있는 아이가 걱정이 되어 예배 중간에 나오고야 말았다. 집으로 와서 아이를 보니 샤워를 마친 상태였는지 잠옷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손가락은 두 시간 전보다 더 부어있었다. 뼈가 부러지면 붓는다는 기본 상식은 있었다. 공인 줄 알고 온 힘을 다해 찬 발에 손가락이 맞았다, 손가락 한 개가 두 개를 붙여놓은 것만큼 부었다, 손가락이 구부러지지 않는다. 이것은 골절이 의심 가는 상황이었다.
“시우야 옷 입어! 응급실 가야 할 것 같아.”
집에서 도보 20분 거리에 있는 병원. 우리 모자는 마치 산책 나온 사람처럼 응급실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21시 20분, 드디어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응급실에 가보니… 금요일 밤 응급실은 이런 모습인 건지, 아니면 내가 가서 그런 것인지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내가 사는 곳 주민이 다 와 있는 건가 싶을 만큼. 대기 시간이 상당히 길어지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고, 보호자는 한 명만 들어갈 수 있는 상황. 부부가 응급실에 와 있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아이는 피칠갑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혼자 감당 가능하겠단 계산이 나왔다. 응급실로 와 달라고 전화한 지 10분 만에 회식하느라 피곤할 테니 병원에 오지 말고 집에 가서 쉬고 있으라고 했다. 그리고 끊임없는 기다림의 시간.
기다린 지 한 시간 만에 엑스레이를 찍었다. 골절이 맞았다. 발에 손가락이 맞으면서 손가락이 꺾였고 그 과정에 골절이 일어났는데, 인대가 같이 뜯겼고, 성장판이 다친 것 같다고 했다. 확실한 걸 봐야 한다고 CT를 찍자고 한다.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성장판? 이것은 내가 예상했던 시나리오가 아니었다. 아이도 생각이 많은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러더니…
“엄마, C가 이 소식 알면 되게 당황하겠죠? 엄청 걱정할 거 같은데요…..”
야 이노무 좌쉭아!! 넌 지금 그게 신경 쓰이냐!!
나라면 너 때문에 다쳤다고 난리를 칠 거 같은데 그 순간 친구 걱정을 하다니.. 너… 내 아들 아닌 거 같아.
기다린 지 두 시간 만에 CT를 찍었고, 결과는 다행히 성장판에 크게 영향을 미칠 것 같지 않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아이 입에서는 “주여~~“ 하는 소리가 나와 혼자 또 얼마나 웃었던지… 사진 판독하는 시간, 처치실에서 부목 대고 처치하는 시간, 퇴원 수속 밟는 시간까지 총 3시간이 넘게 응급실에 있었다. 자정이 넘어서야 집에 갈 수 있게 된 우리.
“엄마, 아빠 온대요?”
“왜?”
“아빠 보고 싶어서요. 아빠 보면 나 안길 거야.”
“아빠 금방 차 갖고 오신대. 수고했다 아들.”
삼일 만에 외래 진료를 와서 다시 엑스레이를 찍었다. 골절이 맞고 성장판에도 조금 손상이 갔지만 성장이나 손가락 관절에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지 않다고 하신다. 일단은 반깁스를 하고 다음 주에 다시 보자고 한다. 일자로 부목을 대고 있으면 손가락이 그대로 굳어질 수 있으니 약간 구부린 상태에서 깁스를 해야 한다고 하셨다. 살면서 골절의 골자 부근도 가보지 않은 나로서는 너무 신기하고 속 터지는 경험이었다. 부목을 대고 간단하게 처치한 것과 다르게 반깁스를 한다고 하니 아이 얼굴빛이 점점 어두워진다. 그 이유는…
“엄마, 저…. 게임은 할 수 있겠죠?”
”이 녀석아! 너 그게 제일 걱정되니? “
깁스해 주시는 분도 아이 말에 빵빵 터지신다. 핸드폰 잘 잡을 수 있도록 손가락 각도 잘 조절해서 굳혀주시겠다고 했다. 이렇게 화기애애한 반깁스의 현장이라니… 초등학교 3학년 때는 석 달 사이에 발가락 골절을 두 번이나 겪더니.. 이번에는 손가락. 날도 더운데…
손이 다치니 생각보다 힘들고 자기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조금 낙담을 했지만, 오랜만에 아이로 돌아간 게 마냥 싫지만은 않은 눈치다.
아파도 웃을 수 있고, 실수지만 다치게 한 친구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지내는 그 마음이 이쁘고 고와서 눈물이 난다. 내가 아들 하나는 잘 둔 거 같다. 나 안 닮아서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