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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트라슈 Aug 26. 2020

어디든 똑같아. 다들 그렇게 살아.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런 최악의 취업난 시대에 국내 최고의 대기업, 업무능력을 인정받아 여자 임원으로도 손색없을 거라는 평가를 받던 내가 퇴사를 하겠다고 했을 때 선후배, 동료들은 모두 놀랐다. 재미있는 건 늘 퇴사를 입에 달고 다니던 동기보다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잘 다니던 내가 퇴사를 말했다는 것.


중견관리자에, 업무도 손에 익어 별 문제없던 내가 돌연 퇴사를 해야겠다 마음먹은 건.. 돌이켜보면 이미 몇 년 전부터 시그널이 있었던 것 같다. 


어떻게든 과장 진급을 하려고 고과권자인 상사 퇴근시간까지 맞추고 술친구를 자청하던 동기의 낯선 모습을 보았을 때.. 사내 성추행 사건으로 가해자가 퇴사조치를 당했음에도 경각심을 가지기보다 피해자가 누군지, 평소 처신을 잘했는지에 대한 2차 가해 수준의 가십거리에만 관심을 가지는 동료들을 보았을 때.. 모친상을 당한 동료가 업무적 이유 없이 돌려 막기 식 고과로 피해받는 것을 보았을 때.. 성희롱, 성차별적인 언행을 일상적으로 하는 상사를 부서원 모두가 잘못된 걸 알면서도 아무도 나서지 않는 것을 보았을 때.. 능력보다 인맥으로 관련 업체로 이직한 선배들이 현업 후배들에게 반 협박성 로비하는 것을 보았을 때.. 일 잘하던 동료들이 뒤돌아보지 않고 당당히 퇴사할 때 초점 없는 눈빛으로 어떻게든 정년까지 버텨보겠다는 무능한 동료들을 보았을 때..  


퇴사 결정을 알렸을 때 평소 젠틀한 이미지로 알려져 있던 상사의 첫마디는

 

"나가서 뭐하려고? 어디든 똑같아. 다들 그렇게 살아."


나를 달래려고, 잡으려고, 현실을 알려주려고 한 말이었을까? 무엇이든 상관없다. 다만 그 순간 잊고 있었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퇴근길 우연히 만난 상사와 그 와이프의 차에 동승하게 된 나는 두 사람의 대화를 자연스럽게 듣게 되었는데..

"그 집사님이 소개해준 아가씨 말이야, 어떻게 됐어?"

"어 지난 주말에 우리 부서 Y대 출신 친구랑 소개팅했을 거야. 어땠는지 물어보는걸 깜박했네.."

평소 학력, 학벌보다 능력으로 인정받는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라고 말하던 사람이었기에 부서원을 출신 대학으로 지칭하며 말하는 그가 낯설게 느껴졌다.


정말 다들 그렇게 사는 걸까?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내가 아직 순진무구해서, 세상 물정을 몰라서가 아니다. 나는 실제로 남들과 구별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보았고 직접 겪었다. 유래 없는 전염병으로 온라인 수업을 하는 요즘, 뉴스에서 일부 대학생들의 시험부정행위 소식이 들려온다. 이런 와중에 무감독 시험으로도 부정행위 없이 시험을 치르는 학교도 존재한다. 


10년이 넘는 직장생활을 하며 본 가장 무능하던 동료는 둘 다 명문대 출신이었고, 석사로 입사했지만 업무 능력이 미흡해 두 번의 진급 누락으로 학사로 입사한 동기들과 같이 진급하는 동료도 보았다. 


얼마 전 인스타그램에서 본 짧은 툰이 인상 깊다. 

출처. 인스타그램 @hongal.hongal


출처. 인스타그램 @hongal.hongal


출처. 인스타그램 @hongal.hongal



직장의 이름으로 평가받는 게 아닌, 오롯한 나로서 평가받기를 원한다. 내가 임하는 일을 진지하게 대하며, 말이 아닌 행동으로 선한 기운이 여러 사람에게 미치길 소원한다. 이 세상도 그렇게 조금씩 나아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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