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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트라슈 Aug 24. 2020

꼭 그래야만 속이 후련했습니까

동료라고 하지 마세요 소름 돋으니까

회사엔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요즘 드는 생각은 사회로 나오기 전 학생들에게 필요한 수업은 '사회에서 돌I를 만났을 때 대처 방법' '슬기로운 직장생활 노하우' '직장에서 돌I가 되지 않는 방법' 같은 게 아닐까 싶다.   



그 정도는 말로 해도 되잖아요

미팅을 하고 자리로 왔더니 그 사이 또 업무 메일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그중에서도 급해 보이는 빨간색의 [공문/긴급]을 먼저 읽었는데 응? 수신처가 부장님과 파트장을 제외 한 우리 셀의 8명이다. 왜 '공문'이지.. 궁금해하며 스크롤을 내리다 기가 차서 말문이 막혔다.


해당 메일의 요는 회사에서 정해 둔 작업표준이 있는데 그걸 누군가 어겨서 부서가 벌점을 받게 되었으니 주의해 달라. 였고 캡처된 근거 화면을 보니 예의상(?) 이름은 모자이크를 했지만 누가 봐도 타깃은 오대리였다. 그제야 뒤를 돌아 셀 분위기를 살폈다. 모두 자리에 앉아있었고, 오대리는 이 상황을 하소연이라도 하는지 누군가와 한창 메신저를 하고 있었다.


이 정도는 셀 가운데 테이블에서 말로 상황을 설명하고 왜 그랬는지 당사자 사유도 들어보며 지도하면 충분히 해결될 사안인데, 그걸 굳이 타 부서에 보낼 때도 잘 사용하지 않는 [공문/긴급]까지 사용해가며 부서원들에게 메일을 보낸 이 과장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 이과장의 태도에 꼭지가 돌았는지 오대리도 똑같이 응수하는 바람에 둘의 치열한 메일 공방전은 한참을 이어졌다. 거리 3m도 안되는 곳에서 멱살 잡을 용기는 없고 분풀이는 해야겠다는 듯이 분노의 타이핑질이 오갔다. 박수도 손뼉이 맞아야 친다는 말이 딱 맞는 상황이었다.




누구를 위한 사유서인지

공정평가가 끝나고 자리에 돌아와 오후 미팅 준비를 하는데 옆자리에 앉은 김대리가 결재문서를 작성 중이다. 책상 위 전화벨이 울리니 수화기를 어깨에 걸치고 통화를 하면서도 결재문서를 작성한다. 그 정도로 급한 건가? 싶어 몸을 기울여 화면을 보니 제목이 '사유서' 다.


전화를 끊은 김대리가 깊은 한숨을 쉬길래 무슨 사유서를 쓰냐고 물었더니 예의 그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는 "이과장님이 올리라고 해서요~" 한다. 들어보니 부서 공통 업무가 아닌, 이과장이 별도로 김대리에게 지시한 업무가 있는데 그 업무의 납기를 지키지 못해서 사유서를 올리는 것이라고 했다. 그것도 이미 1차로 올린 게 반려되어 (사유는 납기지연 이유 불충분..) 다시 올리고 있는 것이라 했다.


'가지가지한다'란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후배 앞에서 다른 선배 험담을 하는 못난 선배가 되진 말아야지라고 다짐했던 가느다란 이성의 끈이 나를 겨우 잡았다. 김대리는 사람이 좋아서 부서 내에서 후배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다만 업무처리가 미흡해 선배들로부터 종종 질책을 받았는데, 그날은 알고 보니 다른 선배들에게서도 비공식적으로 업무를 하나 둘 받은 상황에 가뜩이나 일처리가 느린 김대리가 knock down 된 것이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살짝 이과장에게 가서 그 사정을 말해주니 "업무 조율하는 것도 본인 능력이야. 그리고 난 분명 일주일 전에 말을 한 거고. 중간보고로 그 상황을 알려줬다면 나도 대응을 했을 거야. 납기가 이틀이나 지나서 이러는 건 말이 안 되지. 버릇을 고쳐야 돼" 이과장 입장에서 들어보면 맞는 말이긴 하다.


만사 천하태평인 김대리의 버릇을 고치기 위해 이과장은 사유서를 받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둘이서만 주고받는 사유서를 쓴다고 김대리의 업무 방법이 고쳐질까? 사유서 쓰고, 반려받고, 다시 쓰는 그 시간에 차라리 커피라도 한잔 하면서 서로 이야기를 들어보고, 업무가 몰릴 때 대응 방법 같은 실무 조언을 해 주는 게 훨씬 낫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럴듯한 말로 포장은 했지만 결국 이과장은 김대리를 '동료'가 아닌 '부하'로 여긴 것이다.



정녕 성격 좋고, 일 잘하고, 훈훈한 동료는 드라마에만 있는 것일까. 또 하루의 씁쓸한 날이 쌓여간다.



'그냥 다니는 거지 뭐' 中, 직장내일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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