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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트라슈 Aug 21. 2020

직장에서의 아군, 적군 구별법

호구 탈출 넘버원

흔히 전쟁터로 비유되는 직장에서는 첫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자주 듣게 되는 말이 있다.


동기사랑 나라사랑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에겐 어떻게 기억될지 모르겠지만,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나는 이 말이 참 좋았다. 갓 학생티를 벗고 믿을 곳 하나 없이 아슬아슬 홀로서기하는 시점에 그래도 마음 의지할만한 곳을 공식적으로 지정해주는 느낌이랄까. 철없는 투정을 부려도 "우린 동기잖아" 한마디면 모두 이해될 것 같은 마법 같은 말이었다.


같은 해에 입사 면접을 보고, 연수를 받고, 부서 배치를 받고, 같은 부서에서 만난 동기는 말 그대로 '끈끈한 전우애'가 느껴진다. 공통으로 겪은 일들이 많아서인지, 처한 상황이 비슷해서인지 유독 동기들에게는 나이가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마음의 벽이 쉽게 허물어진다.


각자 부서 배치 후에는 적응하느라 한동안 연락이 뜸하다가, 어느 정도 신입 티를 벗으면 동기모임이란 명목 아래 부서별 정보를 나누고, 부서 선배들 험담도 한다. 그런 천진난만한 시기가 지나고 대리가 되면서 각자 부서의 중추(?) 실무 역할을 하고 대외 미팅에서도 만나게 된다. 때론 새로 들어온 신입들을 보며 "요즘 애들은~" 하며 올챙이 시절을 망각한 말들을 꺼내곤 하다. 그렇게 점점 직장인으로서의 무게감이 달라지는데, 이렇게 애틋한 동기들마저도 어쩔 수 없는 거리감이 느껴질 때가 고과 발표, 승격자 발표 때다.   


그건 마치 다 같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 그리고 중학교 성적에 따라 실업계와 인문계 예체능계 등으로 나뉘어 고등학교 진학, 그리고 대학교로 이어지는 사회 등급 제도와 꽤나 유사한 느낌이다.



뭐할 건데? 앞으로 무슨 계획 있어?

대리 3년 차. 파견 가 있던 내가 본인보다 높은 고과를 받았다는 것을 안 동기 A는 그때부터 나만 보면 줄기차게 묻는다. "뭐할 건데? 앞으로 무슨 계획 있어? 사내 대학원 지원할 거야? 지역전문가 어때? 아니면 전배 신청해~ 고과 좋은 사람들 다 OO부서로 전배가던데" A 덕분에 회사에 있는 제도란 제도는 다 들어본 것 같다. 정작 나는 업무에 치여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내고 있는데, 마치 그 좋은 고과로 어떤 혜택을 노리고 있는지만 궁금해하는 A가 새삼 낯설었다. 원래 이런 사람이었는데 그동안 내가 잘 몰랐었나? 하는 생각을 한참 했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점심을 먹고 산책 중 마주친 동기 B는 오랜만에 만나 반가워하는 나를 보며 근심 어린 표정으로 "왜 이렇게 살이 많이 빠졌어? 거기 일 많이 힘들어?" 하며 묻는다. 순간 나는 마치 신입사원이 된 것처럼 주위 사람들은 아랑곳 않고 "응~ 있잖아, 우리 지금 하는 제품에 OO조건이 잘 안 잡혀서 개고생 중인데, 그 와중에~~.." 하며 온갖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짧은 조우 끝에 헤어지면서 "조만간 술 한잔 해야겠네" 라며 빈말일지라도 그 어떤 말보다 위로가 되는 말을 해주었다.



그거 이제 인정 안 해주잖아.

사내에서 인정해주는 어학등급이 있다. 영어는 2013년까지 TOEIC 기준 860점 이상이 1급었다. 1급은 고과 가산점과 더불어 어학 유효기간이 9999년이라 회사를 다니는 동안은 어학시험 걱정은 안 해도 된다는 의미였다. 그 기회를 놓치면 회화시험만 성적이 인정이 되어 1급을 획득할 기회는 더 어려워지기 때문에 한 달을 잡고 점심시간에 30분씩 빈 회의실에서 공부를 했다. 그리고는 딱 한 달 만에 1급을 땄고, 주말 출근해서 성적을 확인 한 나는 기뻐하며, 내가 1급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동기 두 명에게 동시에 메시지를 보냈다. 동기들의 반응은 극명히 차이가 났는데 그 반응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가 않는다.



"나 영어 1급 땄어! ㅠㅠ"


동기1 : 와우!! 진짜 축하해. 고생했다 야. 어떻게 공부했냐. 공부한 자료 나한테 다 넘겨. 나도 따야지 ㅠㅠ


동기2: 그거 이제 인정 안 해주잖아.



동기1의 문자를 먼저 받고 마음이 따뜻해지며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가, 이어 동기2의 문자를 받고는 뭔가 마음 깊은 곳이 답답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몇 달 후 동기1은 똑같이 1급을 땄다. 가정이 있어서 퇴근 후에도 아이와 놀아 주느라 공부할 시간이 없었을 텐데 힘든 여건에서도 멋지게 해낸 동기1을 나는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반면 동기2는 본인이 늘 뒷담화하던 고과권자인 부장과 독대하는 술자리 인증샷에 "부럽쥐~?" 라는 문자를 보내온다.


어디선가 '진짜를 구별하는 계기는 반드시 온다'라는 문구를 본 적 있다. 직장에서도 아군과 적군을 구별하는 계기는 반드시 온다. 늘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다른 사람의 성취를 깎아내리는 사람을 곁에 두지 말고, 내가 어떤 모습을 해도 내편이 되어주고 나의 기쁨에 진정으로 같이 기뻐해 주는 사람을 곁에 두는 것. 그게 전쟁터 같은 사회생활을 버티게 해주는 가장 큰 힘이 아닐까 싶다.




출처.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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