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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트라슈 Aug 06. 2020

그 정도로?

언론과 현실의 괴리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미투 운동이 시작된 지 세 달이 지났을 때였다. 언론에서는 연신 물 만난 고기처럼 관련 내용을 쏟아냈고, 다른 나라의 유사한 사례들도 거듭 보도되었다. 이런 사회적 이슈가 생기면 대기업은 관공서보다 발 빠르게 움직인다. 다음날 바로 엘리베이터며 사무실 복도며 화장실 문에 '성희롱 금지' '성희롱 예방수칙' '이런 것도 성희롱에 해당됩니다' 등의 다양한 포스터가 붙는다. 하지만 이런 게 좋게 보이기보다는 어떻게 해서든 걸리면 안 된다..라는 느낌이 강해 그런 포스터를 볼 때마다 안타까움이 더 크다. 실제로 성희롱이나 성차별적 발언은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언행이기 때문에 이를 다 큰 성인에게 억지로 교육시킨다고 컨트롤되긴 힘들다. 보통 성장과정에서 어떤 가정교육을 받았는지에 더 좌지우지되기 때문이다. 


그런 시기에 파견 간 부서에서 겪은 일이다. 그 부서의 부서장은 정말 운이 좋아서 그 해에 진급 대상자가 없어 부장 진급 1회만 누락(?) 후 가까스로 부장이 된 사람이었는데, 아니었음 만년 과장으로 있었을 만큼 업무능력이 형편이 없었다. 그렇다 보니 본인도 그런 상황을 알아채고 업무보다는 인간미를 내세우며 후배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물론 그 '챙긴다'라는 표현은 일반적인 의미와 거리가 멀다. 배울 것이 있는 선배가 후배들의 앞날을 위해 업무적인 가르침을 주거나 조언을 하는 일반적인 의미와 달리, 잦은 술자리를 통해 후배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다른 사람들의 험담에 동조해주는 식의 방식으로 유대관계를 형성해 나갔다. 타 부서에까지 무능하기로 유명한 그런 자질의 사람을 부서장으로 앉힐 만큼 담당 임원은 본인의 생존에만 눈이 멀어 조직이 곪아가는 것을 알고도 방관하는 상황이었다. 


어느 날 미투 운동 관련 기사가 또 포털 1면에 떴을 때, 갑자기 사무실에서 제일 짬이 높은 나를 보며 

"또 이렇게 사회가 일하기 힘들게 만드네. 앞으로는 여사원들하고 대화도 하면 안 되겠어. 저~ 입구 쪽에 여사원들 앉히고 우리는 다 창가에 붙어서 업무 지시도 메신저나 메일로만 해야겠네" 

부서 사람들의 싸한 분위기와 상관없이 역시나 눈치까지 없는 그 부장은 말을 이어나간다. 

"그 정도로 이렇게 신고되는 거면 앞으로 회식도 같이 하면 안 되겠어. 그지??"

어디에 동조를 구하는 질문인지 모르겠으나.. 한심과 경멸을 최대한 무미건조한 말투에 담아 받아쳤다.

"아니 뭐 그동안 찔리는 일 있으셨어요? 왜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세요?"

했더니 일순간 얼굴이 뻘게져서는 한마디도 못하고 자리로 돌아간다. 


가끔 직장 내 성희롱, 성차별 등 성(性) 관련 문제가 떴을 때 일부 사람들은 이해가 안된다는 듯이 말한다. "아니 그 사람은 딸도 있다며? 그런데도 그랬대~??" 직접 다양한 케이스를 겪어보니 그건 단순히 '딸자식'이 있으면 발생하지 않을 일이 아니다. '어떤 딸자식'이 있는지와, 그동안 '여자에 대한 가치관이 어떻게 정립된 가정에서 커왔는지'가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실례로 어느 부서의 여사원이 일 년이 넘는 동안 한 부장의 성차별 발언을 참다못해 임원에게 신고를 했더니 그 임원이 한다는 말이 "고졸에, 살아오면서 고학력 여성을 많이 겪어보지 못한 남자는 그런(성차별적인) 발언을 할 수도 있다"였고 실제로 그 부장은 어떤 인사처벌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뒤에 알게 된 그 부장의 가정 배경은 실업계 고교를 졸업 후 입사하여 고졸 오퍼레이터 여사원을 만나 결혼을 했고, 딸 하나와 아들 하나가 있는데 딸은 어릴 때부터 공부와 거리가 멀고 외모 꾸미는데만 치중하더니 고3이 되어 해당 성적으로 갈 수 있는 대학이 없자 큰 키만 믿고 승무원이 되겠다며 한 전문대에 수시로 지원을 했다고 했다. 그 부장에게 '여자'는 외모로만 취직도 되고 남자만 잘 만나면 편하게 살아갈 수 있는 존재였던 것이다. 작금의 실태를 대변해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렇게 많은 교육을 시키고 주의를 주는 굴지의 대기업에서조차 이런 일이 벌어지는데, 얼마나 많은 곳에서 많은 여성들이 말 못 할 눈물을 흘리고 있을까. 


더 안타까운 것은 신체적 성희롱과 같이 직접 증거가 있지 않은 이상 사내에서는 이런 언어적 성희롱은 처벌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장기간에 걸쳐 공황장애에 걸릴 정도로 언어적 성희롱을 받았다 하더라도 가해자가 징계나 처벌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기껏 인사과에서 대응하는 것은 성희롱 피해자를 다른 부서를 옮기는 것. 도대체 무엇을 잘못해서 피해자가 옮겨야 할까? 추후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가해자를 따로 교육시키고 그 사람을 옮겨야 하는데 회사의 방식은 늘 피해자를 잘못이라도 한 사람처럼 도주시키는 것이다. 그런 처리방식은 사내에 또 다른 가십거리가 되고, 그로 인해 야기된 2차 가해로 또 피해를 입는 건 역시나 피해자 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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