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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트라슈 Aug 13. 2020

그들의 문화 - 호칭

'누나'는 되는데 '오빠'는 안돼?


미리 밝혀두지만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그렇다고 여성혐오론자는 더더욱 아니고 평범한 직장인에 소시민이다.


처음 직장을 들어오고서 업무보다 적응이 힘들었던 게.. 호칭이다. 철저한 남성 위주의, 그리고 그들의 관계에 따라 수시로 바뀌는 호칭은, 남초 회사에 희귀한 여자 엔지니어로서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많았고

그럼에도 이해를 요구당하는 경우도 많았다.


부서 배치 후 처음 교육받은 건 사내에선 어떠한 경우에도 '오빠'란 단어 금지.  신입사원이니까 그냥 모두에게 '선배님' 혹은 직급이 있는 분들껜 '과장님' '부장님'으로 부르란 것이었다. 남자 동기의 경우는 군대를 다녀오기 때문에 보통 여자 동기들보다 나이가 많았는데 공식자리에선 '~씨' 혹은 '~님'으로 불렀다.


그렇게 몇 달을 꼬박꼬박 '선배님' '과장님' 부르니까 한 번은 남자 선배가 대뜸 "넌 그 여자 대리랑 안 친하냐? 왜 매번 '선배님 선배님' 하고 불러? 보는 우리가 다 어색하게.. 동성(同性)이니까 그냥 편하게 '언니'라고 불러." 뭐지? 당사자도 아니고 제삼자가.. 갸우뚱해하면서도 그 여자 선배에게 가서 호칭에 대해 상의해보니 흔쾌히 그러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이미 그들 사이는 '형'이 공식 호칭이 되어있었다. 이런 것도 누구 참견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당시에도 정말 이해가 안 됐지만 조직생활이니까. 하고 애써 이해하고 적응하려 했다.


어느 해는 유독 신입사원을 많이 뽑아서 그 해 입사 동기들이 많았는데, 그러면서 자연스레 족보(?)도 꼬이게 되었다. 남자들 중 누구는 재수를, 누구는 입사를 늦게 하고, 심지어 군대를 안 다녀오고 바로 입사한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선배보다 나이가 많은 후배들도 종종 있었고, 남자들은 그런 어색한 관계를 견디기 힘들어한다는 것도 덕분에 알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만의 술자리에서 호칭을 정리하기로 의기투합했는지 갑자기 후배 여사원에게 그 동기 남사원이 말한다. "OO아, 우리 어제 족보 다 정리했거든? 네가 선배긴 하지만 나이가 △△, □□(이번에 들어온 신입)보다 두 살 어리니 서로 불편하지 않게 그냥 재네가 말 놓는 걸로 하자." 갑작스러운 제안을 가장한 지시에 어쩔 줄 몰라하던 그 후배는 주위 분위기를 살피며 마지못해 "응.."이라고 대답했다.


이후 남자후배들이 탄력을 받았는지 한참 선배인 나에게도 도전을 해왔다. 어느 회식자리에서 분위기가 무르익을 즘 후배 대리가 내 앞에 술잔을 가지고 오더니 "선배님, 이제 같이 일 한지도 오래됐는데 '누나'라고 불러도 되죠?" 평소 싹싹한 성격에 일도 꼼꼼히 잘해서 늘 칭찬하던 후배가 그러길래 조금 당황했지만 "미안한데 그건 아닌 것 같아."라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하지만 술이 취해서인지 장난인 줄 알고 두 번 세 번 계속 같은 질문을 한다. 나는 계속 거절을 하고 있는데 그걸 옆에서 보던 '남자' 파트장이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그래, 그냥 '누나'라고 불러."라며 본인이 정리를 해버린다. 그런 식으로 어물쩍 넘어가버리  후회한다는 것을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다시 한번 정색을 하고 힘주어 말했다. "저는 안될 것 같다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일순간 분위기는 싸~해졌고, 이후 부서에서 나는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되는 여자가 되었다.


물론 호칭이 중요치는 않다. 그런데 남자들의 관계에 의해서 여자-남자의 호칭이 정리가 되고, 무엇보다 '오빠'는 안되는데 '누나'는 되게 해 달라? 이 무슨 공평치 못한 상황인가. 직장 내 성희롱이며, 성차별 등으로 이슈가 많이 되고 있고 실제로도 관련 교육들을 온라인, 오프라인 등으로 많이 받고 있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이런 호칭에서 조차 성차별이 있고, 타인을 존중하지 못하는 태도가 나오는데 어떻게 의식이 바뀔 수 있을까?


인간관계에서 가장 기본인 '존중'을 먼저 익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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