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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트라슈 Aug 16. 2020

나는 일머리가 있는 사람일까

간단한 일머리 자가진단


국내 최고의 대기업답게 우리 회사는 해외 유명 대학의 석박사부터 국내 유수의 대학 석박사까지 다양한 인재가 모여있다. S급 인재 대우를 받으며 입사하는 이런 우수한 사람들과 달리 나는 아주 평범한 학사 공채 출신이다.


그런 내가 치열한 경쟁이 일상인 이곳에서 "일머리 있다" "센스 있게 일한다" "일 잘한다"라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이미 많은 사례들로 공부머리와 일머리는 별개라는 게 증명되었지만, 오늘은 그동안 내가 회사에서 겪은 일머리 있는 사람들의 공통점을 토대로 나만의 해석을 해보고자 한다.


직장에서의 업무 능력은 다면평가 항목을 보면 '도덕성, 창의, 열정, 리더십, 소통, 전문성' 등.. 온갖 그럴듯한 말은 다 갖다 놓은 듯 하지만, 실제 업무를 하면서 '아, 이 사람 일 잘한다'라고 느끼는 경우는 대부분 딱 두 가지 항목에서 판가름 난다. '효율성'과 '상황판단력'이 그것이다.



효율성

간단히 예를 들어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식탁을 차린다고 생각해보자.


A는 냉장고 문을 열기 전 냉장고에 어떤 반찬이 있는지 미리 예상을 해보고, 문을 열고는 그 반찬을 하나씩 다 꺼내고 마지막에 잊지 않고 물까지 꺼내 둔다. 그리고 쟁반을 이용해 한꺼번에 식탁으로 옮긴다. 이에 반해 B는 다짜고짜 냉장고 문부터 연다. 보이는 순으로 반찬을 꺼내놓고 하나 둘 손으로 반찬 그릇을 식탁으로 옮겨와 일단 앉는다. 식사를 하려는데 김치가 없는 걸 확인하고 다시 냉장고로 가서 김치를 꺼내온다. 그리고는 한참 먹다가 매운 반찬 때문에 물을 마시기 위해 다시 냉장고로 가서 물을 꺼내온다.


일상에서 늘 일어나는 상황이다. 한 끼 식사를 하는데 A는 딱 한번 냉장고 문을 열었고, B는 세 번을 열었다. 전기세도 전기세지만, 작업 효율성으로 봤을 때 B는 A에 비해 3배나 효율이 떨어지는 행동을 한 것이다. (물론, 일부러 살을 빼려고 많이 움직였다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업무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소위 '일 잘한다'하는 사람은 업무의 전반적 시퀀스를 파악하고 있다. 그래서 처음 시작할 때 무엇이 필요한지, 중간에 어떤 상황이 예상되는지, 그리고 그러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지 등의 시나리오를 머릿속에 그려놓고 착수한다. 반면, 일 못하는 사람은 옆에서 바라보기만 해도 정신이 없다. 본인 머릿속에 그려진 지도가 없으니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우왕좌왕한다. 이런 사람이 리더의 자리에 오르면 그것만큼 비극이 없다. 이건 연차가 쌓인다고 나아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의 살아온 습관이 자연스레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직장에서 A와 같은 동료를 만나면 skill up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받아들이고, 자세히 관찰하고 그의 사소한 습관도 모방해야 한다. 반면 B와 같은 동료를 만나면(특히 상사로 만난다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주문을 수시로 되뇌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을 것이다.



상황 판단력

얼마 전 올린 '운전과 직장생활의 공통점' 이란 글과 같은 맥락이다.


최근 이슈인 자율주행 자동차는 '인지-판단-제어' 세 가지가 핵심 기술이다. 자각하지 못했지만 기존에 모두 사람이 하던 작업이다. 이 중 '인지'와 '제어'는 기술이 중요한 H/W적 요소가 강하고 '판단'은 S/W영역으로 볼 수 있다. 실제 운전자로서도 '판단'이 운전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 같다.


가령 임원 미팅이 끝나고 우리 부서 상무가 셀로 들어오면서 이유 없이 짜증을 낸다고 생각해보자. (실제 직장에서 흔히 있는 경우다) 그러면 평소 일 잘한다고 소문난 A는 당장 그 회의 간사에게 연락해 오늘 회의 안건이 무엇이었는지 파악하고 회의록을 사전에 입수,  agenda 중 우리 부서와 연관될만한 일들을 추론해 본다. 그리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임원 보고용 자료를 수집해놓기 시작한다. 때마침 부장이 상무님으로부터 지시받은 내용으로 필요한 자료들을 요청하면 그때 짜잔-하고 기다렸다는 듯 전송하여 부장의 신임을 얻게 된다.


반면 입사동기가 얼마 없는 해에 입사 해 운 좋게 과장을 단 B는 담당 상무가 짜증을 내도 이웃집 개가 짖는다고 생각한다. 부서의 분위기며 상황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늘 점심 메뉴가 무엇인지, 오후에 사내 유명인 세미나에 누가 강사로 오는지만 알아보다가 부장이 자료를 요청하면 그제야 자료를 찾아다닌다. 그나마 있는 사람이라도 발견하면 다행이지만, 자료를 가진 사람이 없으면 본인이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면 또 백퍼 야근이다. 그 사이 이미 부장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자료를 구하고, 야근까지 했음에도 B는 부장으로부터 잊힌다. (이런 사람들은 꼭 야근한걸 생색도 낸다)


신기한 건 A처럼 상황판단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대부분 주위 동료들과의 관계도 좋다. 이유는 상황판단력이란 늘 주위를 관찰하고 신경을 쓰고 있어야 가능한 것이라, 주위 동료들의 사소한 변화를 잘 캐치하기 때문이다. 반면 B같은 사람은 부서의 고문관으로 낙인찍혀 모두가 피하기 십상이다.



이처럼 사소한 일상에서부터 일머리 있는 사람은 티가 나기 마련이다. 일머리는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게 아니다. 생각 없이 흘러가는 대로 살지 않고 매 순간 자신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줄 알 때 비로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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