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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트라슈 Aug 11. 2020

회사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대리 1년 차 후배가 전배 왔다. 바로 옆 사업장의 같은 업무를 하는 부서에서 온 터라 적응은 크게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환영회식을 포함한 화기애애한 일주일이 지나고 본격 업무에 투입되고부터 전혀 예상치 못한 난관에 봉착했다. 보통 입사 후 3개월이면 숙지하는 기본 업무 용어부터, 회사에 있는 시간 중 전반을 사용하는 기초 분석 프로그램의 사용법을 모르는 것이었다. 급기야 보다 못한 3년 차 사원이 옆에서 일일이 실무를 가르쳐 줘야 할 정도였다.


그제야 '이건 아니다' 싶어 그 대리가 있던 부서의 동료에게 물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 부서에서도 미숙한 업무처리로 문제를 많이 일으켜 모두가 포기한(?) 친구라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한마디 "그래도 사람은 좋아" 소름이 돋았다. 이는 보통 직장에서 고문관을 뜻하는 대표적인 말이다. 이 친구 어떻게 대리를 달았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오다가 멈췄다. 아.. 우리 회사는 대리는 그냥 달아주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친구를 가르치느라 스트레스가 쌓일 대로 쌓인 3년 차 사원이 티타임 때 하소연을 했다. 본인의 업무도 과중한데 선배인 '대리님'까지 데리고 다니며 알려줘야 하니 너무 힘들다는 것이었다. 더 이상 지켜볼 수만은 없어 파트장과 논의 후 사무실 자리배치를 다시 했다. 평소 침착하고 꼼꼼한 정 과장 옆에 그 대리를 앉혀서 업무를 배우게 했다. 그 대리의 수준을 정확히 간파한 정 과장은 크게 심호흡 후 마치 신입사원 대하듯 처음부터 업무를 차근차근 가르쳐나갔다. 출근하면 업무 시작 전 그날 해야 할 업무 list를 만들고, 점심시간 이후 중간 진행상황을 체크한 후 퇴근 전에는 오늘 완료된 업무와 미처 못한 업무를 정리해서 내일 할 일을 같이 list up 해나갔다. 정말 인간 보살이구나 할 정도로 큰 소리 한번 내지 않고 그렇게 3개월을 버텨냈다.


쏟은 정성이 효과가 있어서일까. 1년 차 대리는 출근하면 "오늘은 뭘 하면 돼요?"라고 묻는 게 일상이었는데 이젠 그 질문은 듣지 않게 되었다. 여전히 업무 메일을 발송하는 것은 미숙하지만 예전에 비하면 훨씬 나아진 편이다. 업무가 미흡할 때마다 부서의 동료들에게 꾸지람과 질책을 받았지만 그 또한 잘 이겨낸 대리가 기특하기도 했다.  


얼마 후 그 대리가 있던 이전 부서와 같이 회식하는 자리가 생겼다. 오랜만에 옛 동료들을 만나 기분 좋게 취한 대리를 보니 저렇게 밝은 사람이 우리 부서에 와서 그동안 온갖 구박을 받으며 힘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에 짠한 마음이 들었다. 대리를 포함해 1차에서 이미 거나하게 취한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몇몇 사람들만 2차 호프집에 갔는데 대리의 예전 부서 동료인 임 과장이 말한다. "신기하네.. 우린 저 친구 다 포기했었는데, 어떻게 저렇게 사람 만들었어?" 저희도 포기할 뻔했어요 라며 우스갯소리를 하다가 오히려 궁금해져서 되물었다. "아니 근데 그쪽 부서는 가뜩이나 사람이 부족하다면서 저 친구까지 포기하면 어떻게 업무를 했어요?" 돌아온 답변이 충격적이어서 순간 술이 다 깨버렸다.


"홍 과장, 고과 평가할 때 부서 내에서 10%는 하위 고과 줘야 하는 거 알지?"

"네 알죠"

"저 친구 원래 부서장이 전배 안 보내려고 했어. 그런데 어쩔 수 없이 보낸 거야"

이때까지도 이 말의 의미를 모르고 의아해하는 내게 친절히 풀어서 설명해준다.

"저런 친구가 부서에 있어야 깔아주는 거야. 저 대리처럼 누가 봐도 떨어지는 사람 아니고서야 다들 업무 능력은 고만고만해서 고과 시즌 되면 평가하는 게 정말 어려워. 그런데 저런 친구 하나 있으면 편하지. 그래서 난 절대 업무적으로 그 친구 지적 안 하잖아. "

헐.. 정말 1도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다. 너무 놀라 입을 못 다물고 있는 나에게

"저 친구 가고 나서 지금.. 부서장은 이번 고과 어떻게 줘야 하나 고민이 많아졌어. 대체자 물색해야지"


정말 직장은 총알 없는 전쟁터라는 게 틀린 말이 아니었다. 누구 한 명을 죽여야 본인이 살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그게 적군이 아니라 아군이라는 게 반전이라면 반전.. 서스펜스도 이런 서스펜스가 없다. 그때의 감정은 말로도, 글로도 표현이 안될 것 같다. 한동안 잊고 있던 불쾌한 메슥거림..


다음날 점심, 해장국을 기다리며 대리에게 물었다.

"가장 좋아하는 선배가 누구예요?"

어떻게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 건지.. 이 소설의 끝은 어디인지..

"임 OO 과장님이요!!" 라며 해맑게 웃는 대리의 모습에 나는 마음이 시렸다.


그리고 문득 내가 신입시절 나를 하도 갈궈서(?) 한동안 싫어했던 선배가 떠올랐다. 업무적으로 갈군 것인데.. 당시 갓 대학을 졸업한 후 콧대가 높아져있던 나는 자존심이 상했던 것이다. 이후 그 선배를 멀리하고 동기들을 만나면 험담도 하곤 했는데.. 이제 내가 그 선배의 위치가 되어보니 그렇게 질책해준 것 자체가 애정이 있어서였다는 걸 깨달았다. 오후엔 오랜만에 그 선배에게 메신저로 안부인사를 건넸다. 예상치 못한 연락에 당황해할 법도 한데 너무 반가워하는 선배의 모습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음번엔 곱창에 소주 한잔 사드려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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