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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트라슈 Aug 10. 2020

당신의 회사는 좋은 회사입니까?

짧은 질문 긴 생각


"Is it a good company?"


지구 반대편에서 만난 은퇴한 외교관의 짧은 질문. 숙소의 호스트와 게스트로 만나 서로 소개를 하고 무슨 일을 하고있는지 말하자..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는 우리 회사를 잘 알고 있다며 내 눈을 천천히 응시하면서 묻는다.  간단한 질문이라 생각할 필요도 없이 답변을 하려던 찰나, 다시 한번 힘주어 묻는 그를 보며 그제야 질문의 의미를 간파했다.


"So, do you think it's a good company?"


이에 조금 전의 자신감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이상하게 이 간단한 질문에 나는 바로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당당하게 "Yes"라고 할 자신이 없었다. 전 세계를 돌며 많은 경험을 하고 많은 사람을 접한 그 은퇴한 외교관은 마치 내 복잡한 심정을 훤히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 토닥거리면서 말했다. 그럴 수 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굉장히 화려하고 멋져 보이는 일이라도 네 마음의 소리는 다를 수 있다고. 그것은 네 잘못이 아니라며 나를 위로해준다. 순간 왈칵 눈물이 날 뻔했다.


한국 최고의 대기업, 대학생들이 입사하고 싶은 기업 1위.. 등 회사에 붙여진 화려한 타이틀과 달리 10년 넘게 다니면서 느낀 것은 '그들이 보여주고자 하는' '보인 대로 믿는' 것과는 많이 달랐다. 최고의 회사에 다닌다는 자부심이 생길 거라는 입사 연수 담당자의 말과 달리 시간이 갈수록 공허함과 헛헛함만 더 커졌다. 남부럽지 않은 연봉, 훌륭한 인프라를 갖춘 복지시설.. 정말 남들이 보기엔 그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직장인데.. 왜 그럴까. 많은 고민을 해봤지만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퇴근 후 삼삼오오 모인 술자리에서는 이런 서글픈 현실을 피하려는 듯 속 빈 대화만 오갔고, 연차가 쌓일수록 가식적인 웃음만 늘어갔다. 그런 고민을 했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쳇바퀴 도는 일상과 업무에 무뎌져 가던 어느 날, 짧지만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도 그 할아버지의 질문은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리고 드디어 긴 시간 나를 답답하게 했던 문제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나는 이 회사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이다.   


회사를 사랑하다니? 그런 터무니없는 말이 어디 있어? 회사는 그냥 월급 받고 딱 그만큼만 일해주는 곳이야. 그렇게 감성적으로 대하는 곳이 아니라고. 나의 고민을 마치 배부른 돼지의 투정으로 취급하던 동료들은 그래서인지 회사가 좋지 않은 소식으로 뉴스에 오르내리면.. '그럼 그렇지' 하는 냉담한 자세다. 분명 그들이 속해있는 곳인데.. 그런 그들의 태도가 나는 생경하기만 했다.


자신이 속한 조직, 단체를 사랑해 본 사람은 안다. 품위를 떨어뜨리는 행동을 하면 벌점, 징계를 받는다는 등의 강제성이 없어도 자신이 소속된 곳을 사랑하게 되면 스스로 아끼고 조심하게 된다. 남들이 잘 모르는 사정으로 욕이라도 할지라면 나서서 해명을 하고 싶어 진다. 마치 가족 같아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곳은 무언가 부족했다. 웬만한 시내버스 버금갈 만큼 많은 출퇴근 버스와 기본 8가지 이상되는 구내식당 메뉴, 3만 원이면 한 달 내내 언제든 이용 가능한 사내 헬스장과 50m 레인이 있는 깨끗한 수영장, 한 달마다 바뀌는 사내 조경.. 무엇 하나 부족한 것 없어 보이지만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었다.


마치 아주 부잣집 꼬맹이가 친구를 사귈 때 온갖 새롭고 화려한 장난감을 가져다주며 "이래도? 이래도? 이래도 나랑 안 놀 거야?"라는 느낌이랄까. 전혀 부족할 것 없어 보이는 이가 전전긍긍하는 모습. 시작부터가 잘못된 느낌이다. 그 꼬맹이는 장난감을 가져다주기 전에 친구의 손을 잡고 "안녕? 만나서 반가워. 난 OO야"라고 말을 해야 한다. 그리고 시간을 두고 자신의 생각과 친구의 생각을 교환하며 천천히 친구의 마음을 읽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물질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을 수 있다는 생각은 굉장한 착각이다.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中  ⓒStudio Ghibli


결혼을 앞둔 여인이 친구로부터 그 사람과 결혼하기로 결심한 이유에 대해 질문받았습니다. 그 여인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 사람과 함께 살면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야" 우리 주변에서 그런 답변을 기대하기는 힘듭니다. 능력 있고 나를 편안하게 해 주기 때문이란 것이 가장 많은 답변입니다. 능력 있고 편안하게 해 주기 때문이라는 우리 시대의 답변은 인간의 천박함을 다시 한번 확인케 합니다. 나를 보다 좋은 사람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관계야 말로 최고의 관계입니다.

- 신영복, 담론 中


시간이 걸리더라도, 불편한 현실을 마주 해야하더라도,

그 모든 걸 천천히, 편법이 아니라 정공법으로 이겨내고

나는 우리 회사가 여러 사람들로부터 마땅히 사랑받고 존경받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나를 보다 좋은 사람으로 이끌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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