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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트라슈 Aug 05. 2020

직장 내 여성들이 욕먹는 이유

뼈 때리는 현실 이야기


홍 과장은 참 여자 같지 않게 일해


대기업 12년 차 여자 엔지니어. 대한민국 대표 남초 직장인 이곳에서 내가 자주 듣는 말이다.

처음엔 칭찬인 줄 알았다. 하지만 주위 '여자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보니 그 말은 칭찬으로 포장은 했지만 사실은 내가 속해있는 더 큰 카테고리에 대한 비하라는 걸 깨달았다.


여성 임원도 많이 배출하고, 신입사원 중 여성 비율도 높아졌지만 많은 여성 엔지니어들이 사라져 간다. 실제 현업에서 겪어보니 그 이유는 다양한데 가장 큰 것은 직장의 중요 프로젝트나 과제의 핵심에 여성의 진입이 힘들다는 것이다. 업무적으로 인정받고 있고, 무엇보다 그 분야는 가장 오래 해와서 당연히 프로젝트 담당자가 될 것이라 생각했던 선배를 제치고, 전배 온 지 3개월도 안된 남자 선배가 그 자리에 앉는 것을 보고 알았다. 남자들 사이의 암묵적 카르텔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서로 밀어주기. 분명 여자 선배가 어학 성적, 자격증 등 개인역량도 월등히 뛰어남에도 소위 가장에게 일감 몰아주기로 고과도 불평등하게 분배되던 현실을 보고 씁쓸함을 넘어 회의감마저 들었다.



그런 와중에도 여성들이 직장 내에서 욕을 먹는 이유 또한 분명하다.


업무 미팅을 가기 위해 부서원 몇몇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A4 사이즈의 회사에서 나눠주는 엔지니어용 스트링 노트를 팔에 끼고 있는 나를 보며, 여자 선배(B)가 대뜸

"얘, 그런 거 들고 다니면 쪽팔리지 않니?? 공순이 같잖아"

그러며 자기가 들고 있는 손바닥만 한 별다방 사제 수첩을 흔들어 보인다. 부서에서 일은 안 하기로 유명한 선배이고, 첨단산업의 특성상 짙은 화장이 금지된 회사임에도 젓가락도 잡기 힘들 만큼 긴 젤 네일에 속눈썹 연장술까지 한 사람이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는데, 정말 저런 사람이 같은 여자란 이유로 어디 가서 여자 엔지니어 욕 먹이는 언행을 하고 있다 생각하니 뒤늦은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직접 그림



B선배와 친한 C선배는 더 가관이다. ('끼리끼리 어울린다'는 옛말 틀린 게 없다) 화려한 싱글 라이프를 즐기는 C선배는 아직 미혼인 친구들이 많아서 주말만 끼워서 동남아나 일본으로 도깨비 여행도 자주 다녔는데 주로 아래와 같은 날이 타깃이었다. 공휴일이 달을 넘어가는 날에 있는 경우. 그 전달의 마지막 날에 보건휴가를 하나 쓰고, 새로운 달에 보건휴가를 하나 붙여서 개인 연차 사용 없이 무려 5일의 휴가를 가는 것이다. 처음엔 우연이겠지.. 했지만 몇 차례 같은 식의 수법(?)이 반복되자 남자 후배들로부터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저런 식으로 사용하라고 만든 게 보건 휴가인 거냐부터.. 왜 여자만 보건휴가 주냐는 원색적인 논란까지. 때문에 정작 정말 아파서 보건휴가를 사용해야 하는 사람들이 부서 사람들의 불편한 눈치를 봐야 했다.



이렇게 개인 소양, 양심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업무 능력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뜩이나 여성엔지니어가 드문 회사에, 일부 인원의 몰지각한 행동으로 전체 여성들이 욕먹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소처럼 묵묵히 일만 하는 나 같은 사람에겐 정말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같은 여성에 대한 직장 내 부정적인 인식은 쌓이는 건 쉬워도 없애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인식의 개선에 왕도는 없다. 각자 맡은 자리에서 요령 피우지 않고 본분에 충실한 것. 그것만이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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