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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트라슈 Aug 11. 2020

고길동이 불쌍해지면

일상 고찰2


모처럼 3일간의 예상치 않은 휴가가 생겨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일어나 오랜만에 동네 수영장에 갔다. 한 때 접영까지 익혔지만 오랫동안 수영을 안 해서 물이나 먹지 않을까.. 긴장하며 샤워실에 입실했다. 때마침 오전 어머니반 강습이 있는 시간인지 샤워실 한쪽이 왁자지껄했다. 목욕탕도 그렇지만 목욕탕의 축소판인 수영장 샤워실에서는 평소 목소리로 말해도 쩌렁쩌렁 확성기처럼 울린다. 그래서 원치 않게 뒤쪽 어머니들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수영장 샤워실의 풍경 (직접 그림)


노랑 수모 아주머니 : 아니 글쎄, 지난 주말에 베란다에 화초를 몇 개 심었거든? 그런데 갑자기 남편이 은퇴하면 무조건 시골 가서 텃밭 가꾸며 살거라는 거야~


마사지팩 아주머니 : 어머, 언니 남편도 그래?? 우리 남편도 틈만 나면 그 소리야~ 아니 도대체 사회생활이 뭐가 그렇게 힘들다고.. 그냥 사람 좀 만나고 하면서 사는 거지. 남자들이란 왜 이렇게 다들 엄살을 부리는지 몰라~


노랑 수모 아주머니 : 내 말이!! 지들만 사회생활하나? 여하튼 난 절대 안 따라갈 거야. 시골 가서 어떻게 살아~ 혼자 가서 살라고 해야지.


마사지팩 아주머니 : 그래 혼자 가서 살라고 해~ 그런 벌레 많고 불편한 데서 어떻게 살아~




우리 엄마보다 한참 어린 40대 중후반쯤 되어 보이는.. 딱 봐도 사회생활 한번 않다가 결혼하며 소위 부자동네라 불리는 곳에 정착하여 오전에는 수영 강습받고, 끝나면 삼삼오오 동네 핫한 카페에서 브런치를 즐기는 아주머니들이었다. (보통 이렇게 공감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매너 또한 ddong이다)


그곳에 없는 사람 취급받으며 이 한심한 대화를 듣고 있자니 문득 얼굴도 모르는 그들의 남편이 너무 불쌍하단 생각이 들었다. 결혼이야 서로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나서 한다지만.. 그들의 남편들은 알고 있을까? 보통의 직장이라면 부장급쯤 되었을 것이다. 본인이 직장에서 상사, 후배들한테 치여 하루하루 밥벌이를 하고 있을 때 그토록 믿고 의지하는 반려자가 이런 언행을 하고 다닐지.


며칠 후 점심을 먹고 사내 산책을 하던 중 이 일화를 들은 시니컬한 동기가 말한다.

"남편이 뭐가 불쌍해? 본인이 자초한 거지. 본인이 그런 여자를 와이프로 골랐잖아"








음.. 듣고 보니 그렇네.

괜한 오지랖이었네..







* 배경 이미지 출처 : 웹에서 돌아다니는 것 사용. 출처가 명시된 곳이 없는데 혹시 아시는 분 계시면 알려주시면 수정하겠습니다.

* 수영장 일화는 코로나19 이전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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