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트라슈 Aug 18. 2020

종교는 잘 모르지만

일상 고찰3


나는 무교다. 집안은 불교라 매년 부처님 오신 날이면 부모님은 절에 간다. 그럼에도 어릴 때부터 종교선택의 자유를 존중해주신 덕분에 방학이면 친구를 따라 여름 성경학교에 참석하고, 중학교 때는 불교학생회에도 잠시 몸담았다. 대학생 때는 채플을 4년 내내 들었고, 재작년 갔던 스페인 그라나다에서는 현지인에게서 잘 어울릴 것 같다며(칭찬..이겠지) 이슬람 전통 모자도 선물 받았다.


가끔 어떤 종교든 깊게 심취한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나는 아직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그렇게 아무 이유 없이 믿어본 적이 없으니까. 그런 순수한 믿음이 신기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부럽기도 하다.



회사 후배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때문에 주말근무는 무조건 토요일에 해야 한다고 해서 내가 늘 일요일 근무를 하곤 했다. 어느 날 점심을 먹고 티타임을 하는데 우연히 교회 이야기가 나왔다. 사람들이 어느 교회 다니냐고 후배에게 묻자, OO 동네에 있는 교회에 다닌다고 했다. 그 동네는 회사 근처에 사는 후배의 집에서 30km나 떨어진 곳이라, 집 근처에도 교회가 많은데 왜 그렇게 멀리 가냐는 질문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부잣집 여자 만나려고요


씨-익 웃는 후배를 보 일순간 모두 말문이 막혔다. 갑분싸를 어떻게든 무마해보려고 다른 선배가 "에이, 농담이지?" 했더니 이 후배가  "진짠데요" 라며 정색을 한다. 덕분에 나는 OO란 동네가 부자동네인지도 처음 알았다. 항간에 일부 정치인들이 기독교표를 의식해서 선거철이면 어김없이 교회에 간다는 이야기가 있긴 했지만, 가까이서 이런 이유로 교회를 가는 사람은 처음 봐서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그로부터 몇 년 뒤, 다른 부서로 전배를 온 나에게 예전의 그 후배가 청첩장을 들고 찾아왔다. 그다지 친분은 없던 사이라 어색한 축하를 한 뒤, 예전의 그 대화가 생각나 "저번에 말했던, 그런 분 드디어 만난 거예요?"라고 물었더니 마치 그걸 물어주길 기다렸다는 듯이 "그럼요! 여자 친구가 OO동네 출신인데 지금 방송 쪽 일 하고 있어요. 사진 볼래요?" 라며 자랑스럽게 말한다.

 


대학교 친구는 대학생 때 개인적인 상황들로 방황을 하다 뒤늦게 공부에 뜻을 두고 늦깎이 학생 생활을 이어갔는데, 어느 날 들려온 소식은 목사님과 결혼을 한다는 것이었다. 결혼식 후 집들이를 갔더니 결혼을 하며 종교에 한층 더 심취한 친구는 예전보다 한결 심리적,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보였다. 신도시에서 개척교회를 운영하며 알콩달콩 살고 있는 친구는, 각자 바쁜 사정들로 자주 연락을 못해도 가끔 "널 위해 기도하고 있어" 라며 짧은 메시지를 보내온다.



가까이서 두 명의 종교인을 접하면서, 요 근래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일을 겪으며 오래전 읽은 책의 내용이 떠올랐다.

신앙이란 이 세상에 보이는 것을 초월하여 절대자와 진리 또는 법이 존재하는 것을 믿으며 이에 따라 자기 삶을 살기로 결단하는 것이다. 진리에서 삶과 죽음의 의미를 배우고, 그 가르침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그런 참 신앙의 삶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자아에 대한 관심이 보통 사람보다 훨씬 적다. 자기의 안락, 이익, 명예에 대한 욕심도 적은 반면 다른 사람의 어려움과 필요에 대해서는 훨씬 민감해 기꺼이 남을 돕는다. 말 대신, 삶의 태도와 행동으로 자신이 누리는 기쁨과 평화를 보여 준다. 삶에 영원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평안하다.

반면 껍데기 신앙을 가진 사람은 말이 앞서고, 삶에서 기쁨과 평화의 향기가 나지 않는다. 근본 체질이 변화되지 않은 것이다. 자기 이익을 위하여 신앙생활을 하므로 항상 자아가 중심이 되어 죽는 법이 없다. 종교를 이용하는 것이지, 진리에 몸을 바치겠다는 결단이 없다. 이런 사람일수록 종교적 독선에 빠져 교리를 내세우고 타인을 비판한다.

잘못된 신앙은 무종교보다 더 해롭다. 이처럼 신앙은 삶에 자유를 주는 날개가 될 수도, 메마르고 황폐케 하는 굴레가 될 수도 있다. 자신의 신앙이 어느 쪽인지 아는 방법은 단순하다. 자신에 대한 관심(욕심)이 줄었는지, 타인에 대한 관심(사랑)이 늘었는지, 사는 맛이 새로워졌는지(의미) 살피면 된다.

성공과 행복은 진리에 따라 사는 삶의 결과이지, 신앙의 목적이 될 수 없다. 신이 원하는 것은 외적으로 성공한 삶이 아니라, 자유롭고 새롭게 변화된 삶이다. 날아오르지 못하는 삶, 날개 없는 신앙은 참된 것이 아니다.

- 윤재윤 판사, 날개 없는 신앙 - '우는 사람과 함께 울라' 中






   

매거진의 이전글 제가 글 쓰는 건 비밀이에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