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린 시절 글짓기하는 시간을 좋아하지 않았다.방학숙제로 빠지지 않던 독후감을 쓰는 것도 빈곤한 어휘 실력을 가진 나에겐 고통이었다. 그래서 중학교 1학년 때는 매일 써서 담임선생님께 검사받아야 하던 문집을 글 대신 그림(지금으로 보면 짧은 웹툰)으로 채웠다. 어느 날 6교시 후 자습시간에 내 문집만 따로 빼서 갖다 주신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이거 네가 그린 거지? 너무 재미있어서 교무실에서 선생님들끼리 다 돌려봤어. "
그리고 미술시간이면 어김없이 내 작품이 칠판 앞에 전시되었다. 미술학원은 근처도 가보지 않았는데 '나 그림에 소질이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한 때 했던 것 같다. 그때부터였다. 글보다 그림이 편해진 것이.
그러다 대학교 4학년, 취업을 앞두고 지금의 회사에 지원하기 위해 500자 분량의 자소서와 장점, 보완점 등을 작성했다. 당시 학교에서 지원해주던 자소서 코칭 전문가가 내 자소서를 읽더니 술술 읽혀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며 참신하게(?) 잘 썼다고 칭찬을 해줬다. 그러면서 내 자소서를 강의 때 예제로 사용해도 되겠냐고 묻길래 흔쾌히 허락해줬다. 글로 칭찬받은 건 그때가 처음이어서 어리둥절해하며..
가끔 친구들과 메일을 주고받을 때면 "네 글은 꼭 말하는 것처럼 술술 읽혀"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래서 이젠 내 글엔 '날것'의 장점이 있나 보다 하고 생각하고 있다.
입사하고서부터 지금까지 약 14년 동안 읽은 책 중 인상 깊은 구절이나 내용들을 조그마한 노트(동료들이 보고 '일수 노트'같다고 함)에 적어두고 있는데 어느새 그것도 2권이 되었다. 처음엔 그냥 두고두고 되새김질하려고 적었는데, 읽다 보니 내 상황에 빗대어 생각해보게 되고, 그러다 보니 몽글몽글한 내 생각이 생겼다.
이 생각을 그림으로 풀어내기엔 아직 그 실력이 미흡해 어쭙잖은 글로 풀어내는 곳이 이곳이다. 그래서 이곳은 내겐 일기장 같은 곳이다. 가족들은 물론 친구들, 회사 동료들 그 누구도 모른다.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는 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