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 아빠
주위 친구들을 봐도 그렇고 보통의 딸들은 엄마랑 친하다고 하던데, 이상하게 나는 아빠가 더 편하다. 직장생활을 한 아빠는 가정주부였던 엄마보다 우리 남매들과 같이 한 절대적인 시간이 훨씬 적었음에도 그런 느낌이 드는 건 개인적으로 풀어야 할 연구과제였다.
그 과제의 실마리는 뜻밖의 곳에서 풀렸는데 언젠가 EBS에서 방영했던 '아이의 사생활'이란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아래는 해당 프로에 나왔던 자존감 높은 아이들이 가진, 남다른 의사소통 능력을 가능케 하는 '경청'하는 습관을 길러주는 부모의 태도이다. 그리고 그에 내 일화를 대입시켜 보았다.
주의 깊게 듣고 있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줘라.
아빠는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부터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눈을 맞추고 내 (헛소리에 가까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혹은 유치원생 무렵 아빠 친구들과 하는 부부동반 계모임에 따라갔을 때였다. 엄마는 오랜만에 만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나는 낯선 사람들을 어색해하며 아빠한테 찰싹 붙어서 "아빠 이 사람들 누구야?"라고 물어보았는데 아빠가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아빠 친구들을 한 명 한 명 가리키며 설명해주던 게 기억난다. "응, 아빠 중학교 동창들인데 저번에 횟집 한다는 아저씨 기억나? 저분은 아빠 어릴 때 윗동네 살던 분인데.." 그 어린 나이에도 아빠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감정 이입된 감탄사를 하라.
고등학생 때 중간고사 시험을 앞두고 화학2 과목을 공부하고 있을 때였다. 거실에서 다양한 COOH 기반 화학식을 정리한 노트를 외우고 있는 모습을 보고 "아빠도 고등학교 때 화학이 제일 좋았는데. 이 화학식은 개미산 아니야?" 덕분에 포름산이란 영어 이름만 알던 화학식의 한국식 이름도 알게 되었고, 아빠와 공통점을 또 하나 발견하게 되었다.
사회 초년생 시절, 새로 전배 온 과장의 안하무인 언행에 부서원들이 힘들어한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정말 그렇겠다, 아빠도 직장 생활하면서 그런 부분이 제일 힘들었어"하시며 내 상황에 대한 공감과 아빠의 직장생활 이야기를 들려주시고 마지막엔 적절한 조언도 잊지 않으셨다.
아이가 말하는 도중 끼어들지 마라.
아빠가 우리를 훈계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주로 우리 남매가 싸웠을 때였다. 아빠는 그때마다 우리를 나란히 앉히고 먼저 왜 싸웠는지 이유를 물었다. 한 명씩 돌아가며 각자 입장에서 흥분한 채 이유를 말하는데, 그 와중에도 아빠는 절대 우리말을 중간에 끊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었다. 그렇게 앉아서 서로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새 '그럴 수도 있겠다' 란 생각이 들면서 자연스레 화해를 하게 되었다.
주위 동료들을 보면 애들이 어릴 때부터 해외직구로 비싼 옷을 사입히고, 놀이동산 연간회원권을 끊어 주말이면 놀이동산을 데리고 가고, 매년 하와이며 괌으로 해외여행을 다니고, 다른 아이들에게 뒤쳐질까 전전긍긍해하며 온갖 사교육에 시간과 돈을 쏟는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그와 같은 상황과는 거리가 멀었다. 학원 하나 다니기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기억나는 건 주말이면 집 근처 공원에서 돗자리 하나 깔고 뛰어놀던 것, 가끔 아빠가 식빵에 계란옷을 입힌 프렌치토스트를 해준 것, 아침 식사하면서 들었던 아빠가 읽은 책 이야기, 교복을 다려주던 아빠 모습 등이다. 다른 사람들 눈엔 별 것 없어 보이는 이런 기억들이 내게는 그 무엇보다 소중하고 따뜻해서 정말 정서적으로는 남부럽지 않았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아빠는 나로 하여금 '존중받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도록 해 준 것 같다. 아이가 부모로부터 존중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건 대단한 행동이나 노력이 필요한 게 아니다. 이건 순전히 내 경험으로 비춰서 이야기를 하면 아이의 말에 귀 기울이기(아이의 질문에 충실히 답변해주기), 아이가 원치 않는 것을 하지 않으려는 노력 보이기. 이 두 가지만으로도 아이는 분명 느낄 수 있다.
앞의 '경청'에 관한 일화와 더불어 아빠는 내가 원치 않는 것은 당신의 오래된 습관일지라도 고치려는 노력을 보이셨다. 명절 친척들이 모이면 취업을 한 사촌오빠가 늘 집안 어른들의 질문 타깃이었다.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니? 연봉은 어떻게 되니? 만나는 사람은 있니? 등..
명절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살짝 "아빠, 그런데 연봉을 묻는 건 아무리 가족 간이래도 무례 질문일 수 있어. 앞으로 그런 질문은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했더니 "응? 그래? 이게 무례한 거였어? 몰랐네.. 가족들이니까 궁금해서 그랬지~" 하길래 "응, 그런 질문을 받으면 상대 입장에서는 불쾌할 수가 있지" 했더니 "아 그럼 아빠가 앞으로 조심해야겠다" 하시며 그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조카들의 연봉을 물으신 적이 없다. (심지어 아직 내 연봉도 모르심ㅠㅠ 아부지 죄송..)
다른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은 쉽다. 하지만 '~하지 말아 주세요'라고 하는 것을 안 하는 것은 훨씬 힘들다. 이런 경우는 보통 오래된 습관들이 많아서 늘 신경을 쓰지 않으면 쉽게 고쳐지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나 온다는 직장생활 3년 차 고비가 왔을 때, 밤늦게 퇴근하면서 오랜 고민 끝에 아빠와 엄마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 이제 그만해야 할 것 같아. 실망시켜드려 미안해요." 분명 주무시고 계실 시간임에도 1분 만에 아빠가 보낸 답장은 "그래 잘했다. 그동안 마음고생 많았다." 그 문자는 아직도 저장하고 있는데 볼 때마다 눈물이 난다.
한참이 지나 아빠한테 물어봤다.
"아빠, 다른 사람들은 자식이 힘들게 들어간 좋은 직장을 퇴사하겠다고 하면 다들 말린다고 하던데 아빠는 그때 왜 반대 안 했어?" 했더니 대수롭지 않게 아빠가 말한다. "응, 아빠는 그때 우리 딸은 그 회사 그만둬도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어."
자녀는 부모가 믿는 만큼 큰다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제는 내가 아빠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아빠가 우리 아빠여서 참 다행이야
고마워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