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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트라슈 Aug 31. 2020

모르면 모른다고 해도 괜찮아

솔직해질 용기

내가 몸담고 있는 분야는 언론이나 외부인들로부터 우리나라를 지탱해주는 국내 최대 산업, GDP의 20%를 넘는 규모의 산업 등의 화려한 수식어가 붙는 평가를 받는다. 그래서 뉴스 기사의 몇 줄, 새로 짓는 공장의 항공사진만으로도 충분히 투자하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다. 


하지만 정작 그곳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겐 어느 선배의 말마따나 

농민적 근면성과 개인의 희생에 기반한 제조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회사의 소식은 언론을 통해 더 빨리 접하고 그룹 차원의 자기 계발 휴가, 재택근무와 같은 혁신적인 제도 적용에서는 늘 제외된다. 최첨단 산업의 중심은 태풍의 눈처럼 아이러니가 가득하다. 


하지만 이런 주변 상황을 제하고라도, 공학도인 나에게 이 산업은 충분히 매력이 있다. 이 곳에서의 나의 역할은 늘 적절한 긴장을 유지하며 논문을 찾아 공부하고, 새로운 현상을 발견하면 어떤 메커니즘에 의한 것인지를 규명해낸다. 특히 집단 지성이 아주 유용하게 작용하는데, 구성원 각자가 겪은 단독적인 상황들을 공유하다 보면 어느새 디테일의 함정에 가려졌던 큰 줄기의 보편적인 법칙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아주 희열 넘치는 일이다.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분은 어느 부장님이었다. (지금은 상무님이 되심) 당시 나는 한창 실무에 재미 들린 대리 1년 차였다. 연말이라 모두 일찍 퇴근한 저녁, 혼자 셀에 남아서 그날 평가한 데이터를 정리하고 있는데 우리 셀로 부장님이 들어오셨다. 같은 부서는 아니지만 바로 옆 부서여서 복도를 오가며 인사를 드린 게 다인데, 그날은 우리 부서가 담당하는 공정 중 특정 장비의 구조에 대해 질문을 하기 위해 방문하신 것이었다. 


멋쩍은 웃음으로 늦은 시간에 방문한 것에(저녁 7시쯤으로 기억한다) 양해를 구하며 방문 목적을 간단히 설명하셨다. 찾고 계신 자료가 마침 내가 가지고 있는 자료라 폴더를 뒤지고 있는데 옆 자리의 의자를 끌고 오시더니 옆에 앉아서 업무 노트를 펼치신다. 마치 신입사원처럼. 자료를 보며 설명을 해 드리자 몇 가지는 노트에 필기를, 그리고 중간중간 질문도 하시며 자료는 메일로 전송을 해달라 요청하시고 다시 한번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돌아가셨다. 인상 깊었던 건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홍대리님" 하며 존칭을 써가며 질문을 하셨던 것.


당시 그분은 부장 말년 차의 옆 부서 부서장이셨다. 한 부서의 부서장이 다른 부서의 대리 1년 차에게 마치 신입사원처럼 노트에 필기를 해가며 설명을 듣는다? 그건 직장 생활을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좀처럼 일어나기 힘든 일이다. 10년 넘게 직장 생활을 한 나도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으니. 보통 그 정도 직급의 상사들은 필요한 일이나 자료가 있으면 본인 자리로 사람을 부른다. 그분의 그런 태도는 상대방이 나이는 어리지만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해준 것과 더불어, 비록 직급은 한참 어리지만 한 부서의 대표로서도 존중해준 것이었다.  


자아가 바로 서고 당당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자세에서도 여유가 묻어난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엔 다른 부서의 부장님이 나를 불렀다. 성함도 제대로 모를 정도로 낯선 분인데 배경 설명 없이 대뜸 초면에 반말로 질문 공세가 쏟아진다. 상황을 보니 그 부서의 임원이 아침 미팅 때 알아보라고 한 내용이 우리 부서와 연관이 되어있어서 나를 부른 것이었다. 아는 대로 설명을 해 드리는데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 그거 예전엔 A조건이었던 거 말하는 거지?" 하며 말을 끊으며 아는 척을 한다. 


"아, 그건 아니고요. 이건 최근 새로 셋업 된 조건이고 말씀하신 건.. "라고 조심스레 말하자 그 민망함을 무마하려 다시 "어..? 그래~? 아니 분명 예전에 내가 O제품 담당일 때는 A조건이었는데.. 당시 담당자가 O책임이었고. 그 사이 바뀌었나 보네~" 하며 내가 입사하기도 전인 한참 전의 이야기까지 동원한다. 정작 그분이 원한 답변을 하는 데는 1분도 채 소요되지 않았는데 본인의 추억 회상에만 5분을 넘게 쏟아냈다. 


마치 '나 원래 이거 다 알고 있었는데, 시간이 오래돼서 검증해보려는 거야.' 하듯이 질문도 정확하지가 않고 떠보는 식이다. 그래서 대화가 자꾸 겉돈다. '나는 나이도 어리고 짬도 어린 너한테 답을 들을 위인이 아니다' 란 식의 꼰대 마인드가 곳곳에서 묻어나는 화법에 알고 있는 것도 말해주기 싫어진다.  


뭔가를 숨기려는 사람은 항상 사설이 길다. 




회사에서 보면 유독 여유가 있고 매사에 당당한 사람이 있다. 반면 처한 상황은 같은데 늘 노심초사에 전전긍긍해하는 사람도 있다. 직급이나 학력의 고하, 맡은 책임의 경중을 떠나서 같은 상황을 대하는 이런 태도의 차이는 어디서 비롯되는 걸까. 


10여 년의 회사 생활을 통해 공통점을 하나 발견했다. 여유 있고 당당한 사람들은 스스로에게는 물론, 타인에게 솔직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다른 부서의 업무라 모르는 것이 당연한 부분 조차 '이 부분은 제가 잘 몰라서 질문드립니다' 혹은 '제가 궁금해서 그러는데'와 같이 솔직함을 기본으로 갖추고 스스로를 낮추면서 대화를 시작한다. 스스로를 낮춘다는 것은 굳이 손바닥을 비비며 아부를 하지 않아도 상대방을 높여주는 것으로 인식되어 이후의 대화는 물꼬를 트게 된다. 


반면 그 반대의 유형들은 대화의 시작이 떠보는 식이다. 한때 자신이 잘 알던 분야라 할 지라도 몇 년만 지나면 관련 기술들이 빠르게 바뀌는 시대인데 혼자만 옛날의 영광에 빠져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회의나 사적인 자리에서도 옛날이야기만 한다. 꼰대가 되는 것이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안타깝기도 하다. 그 영광의 시대 (?) 이후로는 한 번도 스스로를 인정하거나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은 적이 없다는 반증이니까. 


이 사소해 보이는 차이는 마치 갈림길처럼 시작은 아주 미약한 차이지만 그 끝은 정 반대의 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새로 전배 온 후배는 한창 업무를 익혀야 할 사원 2년 차 까지 다른 부서에 파견을 다녀온 탓에 동기들 대비 업무처리가 많이 미숙했다. 그래서 회의 내용은 따라가고 있는지, 업무를 수행하는데 어려움은 없는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었는데 결국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그 후배가 셋업 한 공정 조건이 잘못되어 그동안 진행된 물량들을 모두 걷어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윗선에 상황 보고가 끝나고 잘못 셋업 된 공정 조건을 살펴보니 신입사원도 하지 않을 기초적인 실수가 보였다. 영어 문법으로 비유를 하자면 1인칭 주어 I와 매칭 되는 현재형 동사는 am, You는 are, He/She/It과 같은 3인칭 단수는 is와 같은 기본 문법을 틀린 것이었다.


사건이 어느 정도 수습된 후 후배를 따로 불러 해당 조건을 인지하고 있었는지, 단순 실수였는지를 물었는데.. 눈을 제대로 맞추지도 않고 둘러대는 투로 '실수'였다는 것만 강조한다. 누가 봐도 해당 조건을 파악하지 못한 것인데 신입사원도 알고 있는 조건을 3년 차 사원인 본인이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던 것이다. 


솔직한 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


안타까운 마음에 선배에게 들었던 말을 해주며 도움을 주려했지만, 끝내 돌아서는 후배의 뒷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그 후배는 솔직함을 버리고 비겁함을 택함으로써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도 놓친 것이다.  


공부하는 학생이든, 일을 하는 직장인이든, 기술을 배우는 수습생이든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가려면 본인의 현재 위치를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솔직해야 한다. 솔직해지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스스로를 마주할 용기.


그리고 그 열쇠는 본인이 쥐고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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