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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트라슈 Sep 04. 2020

그래도 타이틀 있을 때 결혼해야지?

그래서 당신은 행복한가요?

어르신들 표현으로는 혼기가 꽉 차다 못해 이미 넘쳐난 나는 예의 그 무례한 질문들을 종종 받는다. 대부분은 이 3종 세트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데


만나는 사람은 있어? 
그래서 결혼은 언제 해?
그래도 타이틀 있을 때 결혼해야지?


각자 밥벌이하기도 버거운 세상에 가족보다 내 미래를 더 신경 써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놀랍기도 하고.. 그들의 의도야 어찌 됐건 이젠 날 선 가시를 접고 가급적 의연하게(?) 대처하려 노력하고 있다. 



내가 아직 20대 사원일 때 어느 과장님이 하신 말씀은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가 않는다. 부서 회의가 끝나고 자리로 돌아가는 길에 무심코 내뱉은 그의 말은 이후 그의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여자는 어느 정도 다니다가 타이틀 있을 때 좋은 남자 잡아서 결혼하고 출산휴가, 육아휴직 다 끌어다 써서 2년 쉬고, 그러고 바로 퇴사하는 게 짱이야. 너도 그렇게 해. O대리 봤지? 내가 알려줘서 그렇게 했잖아. 진심으로 해주는 충고야."  


사내 커플로 결혼해서 토끼 같은 딸 둘이 있다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충격이었다. 무심코 하는 말과 행동에서 그 사람의 인격을 볼 수 있다고 하던가. 평소 술자리에서는 국내외 사회적 이슈에 관심 많고 자칭 깨어있는 지식인이라 말하던 그의 바닥을 본 것 같았다. 오로지 외모 하나만 보고 결혼했다는 와이프와는 대화가 안된다며 퇴근하고서도 집에 가는 것보다 후배들 모아서 술자리 갖는걸 더 좋아하는 그를 보며.. 그 가족들이 안타까워지는 건 내가 이상한 걸까. 


그에게 진지하게 물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당신은 행복한가요?



몇 년 전 야근을 하고 돌아오는 퇴근길에 고등학교 친구가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대학교를 수석 입학, 졸업을 하고서도 전공을 살리지 않고 공무원의 길을 걷고 있는 친구는 학창 시절 여러모로 내게 좋은 영향을 줬던 친구였다. 본인의 계획대로(?) 서른이 되기 전에 같은 직업의 남자와 결혼을 해 아이를 하나 두고 있던 친구는 육아휴직 중이었는데, 간단한 안부를 묻고 본론으로 들어간 친구의 첫마디는 의외였다. 


"결혼은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 


당시 업무에 치여 결혼의 '결'도 안중에 없던 나는 당황스러움도 잠시 그런 친구가 걱정되어 되물었다. 


"무슨 일 있어?"


아무 일도 없다며 아이와 평화롭게 놀고 있는 장면을 영상통화로 보여 주던 친구는 문득 내게 해주고 싶은 말이 생각나서 전화를 한 것이라 했다. 아직 네가 걱정하는 그런 조급함은 나는 절대 없다고 몇 차례 안심시키고서야 통화를 끝낸 나는 한참을 멍하게 서 있었다. 이렇게까지 말하는 사람마다 다른 그 결혼이란 건 도대체 정체가 무엇이길래.



얼마 전 한 예능 프로를 보던 중 재미있는 일화가 있었는데, 한 여자 가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가 한 말과 두 남자 가수가 받아친 말이 너무 똑같아서다. 결은 다르지만 내가 보기엔 와이프가 음식을 잘한다고 바람피우다가 돌아오는 놈(?)이나, 상대의 인성이나 가능성을 배제하고 현재의 직업, 연봉 같은 물질적 타이틀만 보고 결혼하는 사람이나.. 크게 다를 게 없어 보이는 건 기분 탓인 걸까. 

출처. SBS 미운우리새끼
출처. SBS 미운우리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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