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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트라슈 Oct 06. 2020

침묵을 원하는 자, 모두가 공범이다

악의 평범성

뉴스나 다큐 외 tv 자체를 잘 보지 않는 내가 몇 년 전부터 손꼽아 기다리던 드라마가 있다. 재작년 출장 중 우연히 시간 때울 요량으로 시청했던 '비밀의 숲' 후속 편이 그것이다. (이 외에 '시그널' 후속편도 기다리고 있는데 이건 왜 이렇게 안 나오는지 모르겠다ㅠㅠ)


이런 웰메이드 드라마가 있었다니!!


스토리, 구성, 촬영, 배우들의 연기..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명작 드라마였다. 후속 편은 엊그제 종영했지만 그 여운은 아직도 남아있다. 시즌1이 뭔가 빠른 전개에 휘몰아치는 긴박함이 있었다고 한다면, 시즌2는 비교적 잔잔한 전개로 초반에 지루하다는 둥 시즌1만 못하다는 둥 여러 의견이 분분했지만 오히려 난 현실성 있고 좋았던 것 같다. 생활 밀착형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인지 여운도 더 긴 것 같다.


그리고 나도 똑같이 겪은 상황들이라 (심지어 어느 부분은 대사까지 똑같아 소오름...) 너무 공감이 되고 마음이 아팠다. 배우들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감수성이 뛰어나서 일까, 어떻게 겪어보지 않은 상황에 그렇게 감정 이입을 잘할 수 있는지..  


인상 깊었던 씬과 대사를 소개하면,

출처. tvN 비밀의숲2
너랑 한주임처럼만 하면 수사권 조정도 필요 없을 텐데..
하긴 그쪽도 공조를 하긴 했어, 우부장 하고 최부장.

왜 그렇게 끝이 달랐을까?


마지막 질문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에 대한 답은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지 않을까? 어려운 수학 문제도 아니고 답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포기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출처. tvN 비밀의숲2
나도..?
뭐하긴, 일하지..


데자뷔 같은 씬이다. 특히 한여진 경감 역을 맡은 배두나 배우가 눈물을 참으면서 통화를 하는데 의지와 상관없이 떨어지는 닭똥 같은 눈물이 더 마음을 아프게 한다. 친정 같은 용산서 동료의 전화에 무너지는 마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 장면이다.


출처. tvN 비밀의숲2
강원도 가서는 좀 죽은 듯이 살 수 없겠냐? 눈에 안 띄게..
없구나?

그래, 너라도 다르게 살아야지


'너라도'라는 말이 핵심 포인트다. 이미 나와 이 조직은 돌아올 수 없는 요단강(?)을 건넜다는 걸 의미하는 것 같다. 내가 언젠가 선배한테 들은 말과 비슷한 맥락이라 더 공감되었던 대사다. 사내 메신저로 나눈 대화치고는 너무 길지만.. 당시 조직의 문제를 알리기 위해 이리저리 면담하며 상사에게 협박을 당하는 나를 보고 안타까워하던 선배가 해 준 말이다.


무리 속에서 갖는 안정감... 문제는 그 무리가 가는 방향에 대해서는 고민을 하지 않는다는 거지. 그걸 고민하고 얘기하면 낙인찍히는 거지.. 아 저 아이는 우리하고 노선이 달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장하면서 받는 교육은 부당함을 보면 부딪혀 싸워라 보다는 모난돌이 정 맞는다... 어디 가서 모나게 굴지 마라 이런 말을 듣고 성장하지... 사실은 모난 건 아니지, 잘못된 걸 잘못됐다고 지적하고 바로잡으려는 행동인데 그게 대부분의 무리에 속한 사람들의 의사에 반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거지...

나이를 먹어도 자아가 충만한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 현실의 벽에 계속 부딪히다 보면.. 내가 살면서 본 사람들 중에 몇 명 안됨....  사람들은 벽에 부딪히면서 잘 넘어온 사람들도 본인이 넘을 수 없다고 느껴지는 벽을 만나면 대부분 포기하고 현실과 타협하지 근데 일부 소수의 사람들은 끝까지 그 벽을 넘기 위해 방법을 찾고 또 넘어서지... 그런데 대부분 세상을 바꾼 건.. 끝까지 타협하지 않고, 희생했던 사람들이야.. 그런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는 거지...

내가 봤을 때 너는 벽을 넘어설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 될 거라 생각해... 그렇게 세상이 조금씩 변하고 바뀌는 거지... 보이는 프랑스혁명처럼 뒤집어지듯이 바뀌지 않는데... 나도 보면  말은 이렇게 해도 많이 타협하면서 사는데... 이건 아닌데 생하면서도 행동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지... 나도 그중에 하나고.

어느 프로그램에서 봤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갈등을 표면화하지 않고 피하는 문화라고 하더라고... 서구권은 갈등이 있으면 끝장을 보고 문제를 해결해야 넘어가는데  동양중에 특히 우리나라는 그런다고 하더라고... 상처가 있어도 당장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없으니 적당히 덮고 가는 거지... 안으로 계속 곪아가다 어느 순간 터지면 고름 조금 짜내고 또 덮고 가고 악순환의 연속이지... 부조리와 맞서 싸워야 하는데 생활인들이 그러기가 쉽지 않지...

미투로 불거지긴 했지만 이런 것들만 문제일까? 보면 미투는 사회 부조리가 표출된 극히 일부분일 뿐이고 이번에 문제가 된 유치원 지원금 유용도 그렇고... 굉장히 많지 근데 사람들이 몰라서 공론화하지 않았을까? 유치원에서 닭 두 마리로 50명을 먹였다는데 식자재 납품하는 사람이 몰랐을까? 주방에서 조리하는 사람들이 몰랐을까? 보육교사들이 몰랐을까?  다 알고 있으면서 본인 밥줄이 달렸으니 쉬쉬하는 거지... 우리 사회가 이렇게 굴러간다... 누가 이걸 바로잡을까... 성난 부모들이? 그동안 썩어 문드러진 유치원 원장들이? 내부에서 바꿔야 하는데 밥줄이 걸려있으니 누구 하나 쉽게 할 수 없는 거지...

비단 어린이집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이 그런 식으로 운영되고 돌아가고 있지 않을까?  어느 구조나 그래. 그게 문제인걸 아는데도 행동하는 사람들이 없는 게 문제지... 나도 그렇고  굉장히 무책임한 거지...


출처. EBS 지식채널e

현실에는 히어로물에 나오는 악당이 없다. 카페나 편의점 직원에게 하대하며 막말하는 아줌마도 집에가면 자기 강아지를 챙기는 사람일 수 있고, 직장에서 딸벌인 여직원에게 성희롱을 일삼고 남직원들에게 인격모독 발언을 하는 사람도 집에서는 좋은 남편, 아빠의 역할을 하고있을 수 있다. 이처럼 타인에게 많은 악행을 저지르면서도 '관행' '상사의 지시' 같은 말 뒤에 숨는 사람들은 해오던대로 똑같이 했을 뿐이라고 변명을 하겠지만, 그 자체가 죄악이 된다.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하는 무능, 자기가 무슨일을 하고 있는지 전혀 깨닫지 못하는데에 '악의 평범성'이란 특징이 있는 것이다.



출처. tvN 비밀의숲2

흔한 직장의 모습. 썩은 놈 위에 썩은 놈.. 사람은 더 이상 나아질 거란 희망이 없을 때 포기한다.



출처. tvN 비밀의숲2

그나마 괜찮은 사람은 일찍 나감.. 이 드라마 리얼리티가 정말 최고다.



출처. tvN 비밀의숲2

직장의 흔한 빌런들.. 이럴 시간에 일을 하지. 쫌!!  이들도 입사했을 때부터 이랬던 건 아닐 것이다. 질 안 좋은 상사들의 못된 짓만 보고 배운 것일 터.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선택이 가능하다. 큰 고민 없이 편하게 썩은 물에서 같이 뒹굴 것인지, 가시밭길이 될지언정 구분된 삶을 살 것인지. 그 선택의 기준이 가치관일 것이다.



출처. tvN 비밀의숲2

마지막으로 가장 그래도 인상 깊었던 것은.. 황시목 검사의 사소한 변화(눈 충혈)를 알아봐 주고, 물어봐주고, 들어주는 한여진 경감의 동료에 대한 관심과 경청, 공감의 자세였다. 이런 동료를 한 명만 만나도 직장생활은 성공한 거라 본다. 사소한 꿈 이야기까지 경청해주는.. 그래서 황시목 검사도 한여진 경감에게만은 마음을 연 게 아닐까.



정말 직장생활을 해보지 않고는 모를 작은 디테일까지 녹여낸 것을 보고.. 역시 작가는 작가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애청자로서 소소하게 바라는 게 있다면.. 그래도 러브라인은 없으면 좋겠다는 것? 동료로 남아야 그 관계가 오래간다는 건 누구나 알 것이다. 현실이든 드라마든..


정말 오랜만에 만난 멋진 작품 덕분에 당분간 행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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