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이 나에게 속삭이는 말을 듣고 싶어서
아침부터 마음이 싱숭생숭했는데
어디 나가지도 못하고
오전 내내 네 식구가 한 집에 있었다.
그러다가 오후 2시에 가지게 된
내 시간.
집 앞 동산을 오르기로 한다.
약속 없이 편하게 만날 수 있는
내 친구.
언제나처럼, 나에게 필요한 말을
해 줄거라 기대하면서.
산책로 입구. 예쁘다.
며칠 안 오는 사이 색깔이 바뀌었다.
산책하는 길,
오늘은 자꾸,
썩은(?),
못난,
벌레먹은
나뭇잎이 보인다.
나뭇잎은
힘찬 녹색으로 우거졌다가
예쁜 단풍으로 물들었다가
그림처럼 살포시 도로에 내려앉는줄 알았는데,
그런 나뭇잎들만 보였는데,
오늘 숲 속에는
그렇지 않은 나뭇잎들이 더 많았다.
나뭇잎에 왠 구멍이 그리 많은 것인지.
못생겼다.
징그럽다.
주위에 이미 떨어져서 낙엽이 된 나뭇잎들이 많은데,
구멍을 품고서라도 매달려있으니
그 힘이 대단한 것일까.
이미 낙엽이 된 나뭇잎이라고 못난 것일까.
내년 봄을 위한 밑거름이 되고 있을 터인데.
예쁜 단풍잎은 어디있는 거야?!
물드는 과정이 하나도 예쁘지가 않다.
줄기가 땅을 겨우 뚫고
세상에 나오고,
나오자마자
두 갈래로 갈라지기 시작했을 때
나무는 어땠을까
나무도 아팠을까
오늘 따라 나무와 나무 사이는
왜 또 이리 듬성 듬성해보일까.
몇 번을 걸었지만 보이지 않았던
쓰러져있는 나무도 보인다.
갈 때마다 나를 반겨우는
든든한 내 산
속에
아픔이 많은 것 같았다.
그런데
걷는 내내 드러난 아픔을 보니
나에게는 아픔으로 보이는 그 것들이
산에게는
그냥, 그저 그러한 당연한 일일 것 같기도 하다.
피할 수도 없지만
피해야 할 것도 아닌
그냥 그런 어떤 것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저기 반대편에 강렬하게 반짝이는,
내가 보길 바랬던 뜨거운 빨강이 보였다.
발길을 일부러 돌려
눈부신 풍경을 누려본다.
사람이 가져다 심은 예쁜 나무인 걸 알지만
내가 기분이 좋으니,
이것도 마음껏 누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