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검은색인게 어때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간다
아들이 학교에서 활동한 것을 가지고 왔다.
<우리 가족과 이웃> 이라는 제목이 적혀있는 집을 색칠한 것이었다.
창문과 꽃 등 어느정도 틀은 주어진 것 같고,
그 틀을 원하는 색으로 색칠을 한 것 같았다.
그림을 보자마자
검은색에 압도당했다.
걱정과 불안이 엄습해왔다.
집이 검은색이라니....................
아들이 집을 그렇게 우울하고 검다고
느끼고 있는 것일까...............
그럴 수도 있겠다.
아들이 어렸을 때
내가 우울했을 때가 많았고,
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가 많았으니.
아들이 집을 검은색으로 느끼고 있을 여지가 충분했다.
속 얘기를 잘 안하는 아들이라
그림에 대해 물어도
"그냥 그렸어."가 끝이었다.
나는 혼자 걱정이 되고 또 되어
아들의 그림을 계속 살펴보았다.
아들의 마음에 닿으려고 애쓰면서.
'그림치료, 검정색' 이라고 검색창에 써서 이런 저런 글도 읽어보았다.
<검정색>은 실제로 우울을 나타내는 색깔이었다.
우울, 공포, 어두움, 절망, 허무, 절망 등등의 감정을 나타낸다.
하지만
고급스럽움, 권위있는, 품위있는, 세련된, 우아한, 힘과 권력도 나타낸다고 한다.
그리고 한 단어를 보았다.
무의식.
무의식을 나타내기도 한단다.
우울, 불안이라는 단어보다
무의식이라는 단어는
내가 조금 더 편안하게 느끼고 있다.
그래서 무의식이 포함하는
우울과 불안을
조금은 받아들일 수 있었다.
검은색은 나쁜 것이라는,
내 마음이 만들어낸 경계를 넘고나니
그림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검은 색을 바탕으로
알록달록한 문을 연 창문이 다시 보였다.
핑크, 노랑, 보라, 초록, 주황색이다.
노랑 꽃도 다시 보인다.
집 지붕이 노란색인 것도 그제야 보였다.
아들의 검정색은
무의식을 나타낼수도 있겠고
우울과 공포일 수도 있겠고
권위와 힘일 수도 있겠다.
무엇이 되었건
검정색 자체가 무슨 문제가 있을까.
마음이 검정색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나쁘기만 하랴.
검정색도 필요하니 있는 것이리라.
마음 깊이 찡했다.
오이디푸스가 떠오른다.
그가 부풀어오른 발(oedi-pus)로 살아가듯
그렇게 살아가는
나와 너가 느껴진다.
8살 아들에게 부풀어오른 발이 너무 아프진 않을까.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을 해줘도
어느 지점에서
아들의 발은 부풀어오를 것이다.
마음 아프지만 어쩌랴.
그게 아들의 선자리, 출발점인 것을.
아들이 나를 두더지로 묘사한 것도
검은색과
같은 맥락으로 다가온다.....
p.s. 약 한 달 전 아들의 그림을 보고 떠올랐으나 흘려보냈던 단상이었으나,
용기를 내어 글로 풀어쓰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