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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 새 Aug 12. 2021

제주는 재밌다

제주 단상5

     우리 부부는 2014년 첫 아이 여행을 시작으로 거의 매년 제주 여행을 갔다. 11월에 둘째 딸 생일과 내 생일, 결혼기념일이 모두 있어서 그것을 한꺼번에 기념하며 제주도를 간다.     



  처음 남편과 제주도에 가서 들렀던 고기 국수집과 흑돼지집의 이미지가 아직도 선명하다.  제주도에 밤늦게 도착했는데 배가 너무 고파서 문 열린 가게 아무 곳이나 들어갔는데, 거기서 먹은 고기 국수가 너무 맛있었다. 처음 남편과 함께 흑돼지를 먹던 날, 나는 임신 중이라 고기만 먹고 남편은 한라산 소주를 한 병을 들고 서빙하는 분께 사진을 부탁드렸던 기억도 생생하다.  


   

  어느 해에는 남편과 드라이브를 하다가 내가 갑자기 한마디를 툭 내뱉은 적이 있다.     


  “우와~ 제주도 진짜 좋다. 노는 게 이렇게 재밌는 줄 미처 몰랐네.” 


    

  말하고 나서 느꼈다. 내가 재미를 정말 못 느끼면서 자랐다는 것을. 그 말을 듣던 남편은 얼마나 못 놀아봤으면 그런 말을 다하는 거냐고 하면서 나를 놀렸었다.     



  나는 많이 못 놀고 컸다. 초등학교 1-2학년 때는 동네 놀이터에서 해질 때까지 놀았던 기억이 있는데 그 후로는 학원 열심히 다니고 집에서 공부하는 모범생이었다. 공부할 게 없어도 주로 혼자 집에서 놀았다. 나는 무거운 가정 분위기에 압도되어, 내가 재밌게 지내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다. 20대가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고생하는 엄마를 생각하면 친구들과 놀러 다니는 것도 커피 한잔 마시는 것도 사치였다. 나는 인생을 꽉 채워서 진지하게 살아야만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을 덜 느낄 수 있었다.     



  원가족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결혼을 했으니, 결혼해서는 불편한 마음 없이 남편과 놀러 다녔다. 비싸고 좋은 데를 다녔으면 또 엄마생각이 났을지 모르겠지만 남편도 나도 가볍게 걷고 길거리음식 먹는 거 좋아하는 소박한 스타일이라 마음이 가벼웠다. 평소에 그렇게 지내는 것도 좋았지만, 제주에 가면 특별히 더 좋았다. 바다도 좋고 오름도 좋고, 여러 명소들도 좋다. 그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높은 건물이 없어서 끊어지지 않고 볼 수 있는 활짝 펼쳐진 하늘이다. 제주 하늘을 보면 내 마음을 참 편안해진다.     



  이번 제주 여행은 아주 갑작스럽게 결정되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계획에 없던 것을 준비하는 것을 싫어하는 나는 제주도 여행이 반갑기도 했지만 준비하는 과정이 참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역시 제주는 제주였다. 제주 공항에 내리자 불편했던 마음은 다 사라졌고, 탁 트인 하늘이 마냥 좋았다. 평소에는 남편이 여행 스케줄을 짜면 그냥 따라갔지만, 이번에는 여행 중에 내가 즐거운 포인트를 좀 더 찾아보기로 했다.    


  

  나의 첫 번째 즐거움은 걷기였다. 늘 제주 올레길을 걷고 싶어 했는데 그 동안 아이들 때문에 못 걷는다고 미뤘다. 이번에는 어떻게든 걷기로 했다. 새벽 시간이 있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숙소 주변도 걷고, 바닷가도 걷고, 올레3코스 중 일부도 걸었다. 아침마다 그렇게 1-2시간씩 혼자서 걷으니 내 안에 생명력이 샘솟는 것이 느껴졌다. 올레3코스를 걷는 날, 남편에게 갔다가 숙소까지 똑같은 길 따라 돌아오는 게 뭔가 좀 아쉽다고 했더니 맘껏 걷다가 전화하면 아이들이랑 차를 타고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그 말만 믿고 바다와 하늘을 보면서 걸었던 그날 아침은 정말 행복했다. 남편도 참 고마웠다.     



  나의 두 번째 즐거움은 물놀이였다. 여행에서 첫 물놀이를 하던 날, 나는 혹시 발생하지 모를 안전사고를 걱정하며 물놀이 하고 있는 첫째아들과 둘째 딸 사이를 어기적어기적 걸으며 아이들을 주시했다. 물 흐름을 거슬러 움직이려고 하니 몸이 너무 무겁고 금세 피곤해졌다. 그러다가 우연히 아이들이 던져버린 튜브를 탈 일이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너무 재미있는 것이다! 또 한 번 내 안에 숨어있던 즐거운 마음이 반짝거렸다. 그 때부터 나는 해수욕을 갈 때마다 아이들과 같이 튜브를 타고 놀았다. 여행 중에 해수욕을 네 번 했는데 바닷가마다 특색이 다 달라서 그걸 느끼는 재미도 있었다. 특히 파도가 센 해변에서 파도를 타고 노는 것이 가장 재미있었다.      


  물놀이를 하면서 생각했다. 인생을 튜브 타듯 살고 싶다고. 파도 타듯이 살고 싶다고. 물속에서 애써 걷듯이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튜브타고 물 흐름에 나를 내맡기면, 이번 물놀이처럼 인생도 즐거워지지 않을까. 이번에 파도타기를 재밌게 했던 것처럼 끝없이 다가오는 인생의 파도도 느끼고 즐기고 보내줄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고나서부터 나는 바다가 인생이라고 생각하며 더 맘껏 놀아보았는데, 더 재밌었다. 앞으로의 일상도 더 즐거워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나의 세 번째 즐거움은 관람이었다. 나는 자연을 느끼는 여행을 특히 좋아하고, 티켓을 사서 뭔가 관람하는 것은 소비적인 여행이라고 생각해서 사실 딱히 좋아하진 않는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이니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하느라 말 공연도 보고, 스카이 워터쇼도 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또 너무 재밌었다. 신나는 음악과 멋진 공연을 보는데 내 몸도 함께 들썩이며 춤을 추고 싶어 해서 춤추기를 겨우 참았다. 특히 스카이 워터쇼를 보다가 마지막에는 눈물이 조금 흘렀다.      



  ‘아, 내가 이런 재미를 느껴보다니. 아이들 덕분에 이런 재밌는 것을 보게 되는 구나. 내가 아이들을 위해 왔지만, 어렸을 때 해보지 못했던 것을 아이들 덕분에 나도 볼 수 있게 되었네. 너무 재밌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너무 고맙다.’      



  이런 생각이 들어 아이들을 꼭 안아주고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신나는 쇼를 본 후 반응으로는 좀 과한 것 같아 얼른 눈물을 삼켰다.      



  제주야, 고맙다. 나에게 이런 즐거움을 느끼게 해 주어서. 남편과 아이들에 대한 고마움도 느끼게 해주어서. 내년에는 2주든 한 달이든, 제주에 더 오래 머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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