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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 Feb 17. 2020

빨간 망치 1

포방터 연돈과 뉴욕 오오토야와 폴란드 회사

    리얼리티나 경연 프로그램들에 워낙 흥미가 없고, 또 한국 쇼들은 거의 보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백종원 씨가 나오는 쇼도 본 적이 없다. 골목식당이니 수요 미식회니 냉부해니 현지 어쩌고 하는 그런 것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역시나 별로 흥미가 없다. (요즘 유튜브로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를 보고 있기는 하다. 더 낡아서 매운 요리 먹기 힘들어지기 전에 태국이 너무 가고 싶다...)


    영상으로 보는 요리 프로그램은 연말 All-access pass를 반값에 구매해버려서 강제로 보고 있는 마스터클래스 French Laundry의 Thomas Keller 영상이나 유튜브의 Joshua Weissman 뿐이다. 기본적으로 예능을 싫어하고 영상으로 지식을 습득하는 취미가 없어서 그렇다. 가끔 보는 승우 아빠는 요리 콘텐츠보단 시장분석이나 요리 게임 콘텐츠가 재밌다.


    작년 여름에 연돈에 가보자는 요청을 받기는 했는데, 골목식당이 무슨 프로그램인지 최근에서야 알았고, 새벽 첫 차 시간에 줄을 서면 못 먹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에 단박에 거절했다. 한국에서는 30분 이상 줄 서야 한다고 하면 곧장 대안을 찾는 편이고, 뉴욕에서도 한 시간 이상 줄 서는 걸 피하는데, 밤새워 기다려야 한다니 그것은 기운 넘치는 젊은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고, 낡고 지친 나는 미타니야의 9천 원인지 만 원짜리 돈카츠면 충분한 사람이라서 포기가 쉬웠다.


Cotoletta alla milanesa (출처: Wikipedia)

    뉴욕에서는 서빙하는 이들이 다 일본인인 일식집에서도 돈카츠를 시키면 밀라네사가 나오기도 한다. 주로 퀸즈에서 많이 당할 수 있다. 밀라네사 Milanesa는 중남미식 커틀릿으로,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유럽식 커틀릿을 남미로 들고 온 것이 라틴 아메리카 전역으로 퍼져나간 듯하다. 뉴욕에서는 어떤 국적의 중남미 식당을 가도 웬만하면 볼 수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나르코스의 등장인물이 이 밀라네사를 팬에 튀기면서 일본식 빵가루를 쓰면 더 바삭하고 맛있다고 하는 장면도 있다.


    돈카츠가 제대로 나오는 곳들은 좀 비싼 편이고 그중에 오오토야를 가끔 가는데 돈카츠 정식이 기본 20불이 넘고, 맥주도 한 잔 하고, 세금도 내고 그러다 보면 1인당 30불이 넘게 나간다. 다행히(?) 팁은 음식 값에 포함이다. 본토의 오오토야는 비교적 저렴한 식당이라고 들었는데, 뉴욕에서는 일식이 저렴하지 않은 편이라서 콘셉트를 약간 달리 잡은 듯. 하여튼 뭐든 저렴하지는 않고 저녁에는 줄도 보통 30분 이상 선다. 그리고 그렇게 맛있지는 않다. 그래서 자주 먹지는 안-못한다.


    여하튼 연돈이 하도 회자되니까 최근에 관련 영상들을 보았는데, 안 그래도 힘든 요식업, 사장님들 참 요령 없게 힘들게 돈 번다 싶었다. 또 그 와중에 어떻게든 벗겨 먹으려 드는 양아치들은 적재적소에 기가 막히게 대기하고 있어서 다들 고생이 많다. 


    그런데 쭉 보다가 보니 과거 포방터 시장 영상에서 눈이 가는 장면이 있었다. 남 사장님이 고기 손질하는 모습을 보니 연육기가 너무 좋아 보였다.


소형 수동 연육기 (출처: Wikipedia)

    그동안 돈카츠 먹는데 인당 3-4만 원 지출하는 게 아까워서 집에서 만들까 여러 번 생각했었다. 한국에서 냉동 돈까스 사 먹는 건 맛없어서 만들어서 냉동해놓던 시절을 떠올리니까, 고기 망치로 두들기는 거 고생스럽고 귀찮고 엄두가 안 났다. 돈카츠는 고기를 굳이 얇게 펴지 않아도 되니까 자연스레 연육기를 알아보게 되었는데, 미국에서 파는 소형 수동 연육기들은 전부 스탬프 형태다. 고기 위에 도구를 올리고 손으로 눌러 찍어서 칼날을 고기 안으로 밀어 넣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미국 온 이후로 팔꿈치에 문제가 생기고 제대로 낫질 않아서 그런 종류의 행동을 하면 통증이 있고 증세가 심해지는지라, 피자나 빵 반죽도 그만뒀고, 돈카츠 만들기는 그냥 꿈이었다. 

영상의 바로 그 연육기

    그런데 사장님이 쓰는 연육기가 망치 형태였다. 물론 충격은 전달되겠지만 그만큼 팔에 부담은 덜 갈 것 같은 것이다. 그래서 검색을 시작했다. 


    한국에도 미국 이베이에도 여기저기 판매 흔적은 있는데 전부 품절. (글을 발행하는 현 시점에서는 찾는 사람이 있다 보니 재입고가 되어서 88,000원에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원산지 및 브랜드 추적을 해보니 폴란드의 빅토르라는 회사에서 제조하는 연육기이고, 카피 제품이 흔하디 흔한 중국 온라인 쇼핑몰들에서도 잘 안 보이는... 레어템. 

연육기 디럭스 버전. 반대 부분에 매끈한 망치가 있다.

    웬만한 언어는 그냥 구글 번역기로 영 번역하면 주문할 만한데, 폴란드 회사 홈페이지가 불친절하고 주소 체계도 낯설어서 그냥 구매 배송 대행사를 찾아서 주문했다. 미국으로도 배송해주는 서비스가 있어서 매우 다행. 한국 배송비에 6천 원 정도 추가된 금액이다. 방송에 나온 망치보다 조금 더 업그레이드된 디럭스 버전이 있어서, 기본과 함께 주문했다. 연육기 두 개와 기타 수수료 배송료를 합하여 개당 6만 원 즈음. 원가는 2-3만 원 정도지만 한국서 사들고 오는 것보단 저렴해서 주문했다. 색은 랜덤 배송이고, 둘 다 빨간색이 당첨되었다. 2주쯤 걸린다는데 어쨌든 열심히 오고 있다.


    어제 코스트코를 간 김에 돼지 등심, 안심 가격도 확인했는데 통째로 사면 파운드 당 2-3불 정도로 저렴하더라. 돼지고기를 두껍게 쓸 일이 카레 이외에는 없고 그것도 주로 목살-어깻살을 쓰기 때문에 안심은 더더욱 살 일이 드물어서 구경조차 한 일이 없다. 원래도 근막과 지방 등 식감이나 냄새에 영향을 끼치는 부분을 꽤 제거하고 먹기는 하지만 아주 다 벗겨내는 정도는 아닌데, 오랜만에 손질 좀 하게 생겼다. 왕창 만들어서 두고두고 먹을 수 있겠지...?(지나치게 밝은 미래)


    빵가루도 반죽도 좀 알아봐야 하고, 실제로 만들기 전까지 연구를 좀 해야 한다. 연육기 성능이 부디 괜찮았으면 좋겠다. 


    이제 돈카츠를 만들어야 할 텐데... 사실 만들기 싫다. 한국에 계신 분들은 연돈이 아니더라도 그냥 사드시길 권한다. 만 원에서 만 오천 원 정도면 괜찮은 카츠 집들이 (비교적) 널린 게 서울이다. 나중에 차차 쓰게 되겠지만, 이 시리즈의 이름이 시시포스의 집밥인, 먹기에만 재능이 있던 사람이 이렇게 요리를 열심히 하게 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2020년 1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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