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amelized Onions & Japanese Curry
불과 며칠 전에 썼던 글에서 영상을 보지 않는 척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요즘 완전 유튜브 중독자이다.
하루 일정량의 귀여움을 봐야 하는데 인스타그램에 특정 품종 선호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계정이나, 남의 사진 영상 훔쳐와서 대충 제목학원에서 배운 것 같은 내용 붙여놓고 조회수 얻는 사이에 중간중간에 광고인 듯 아닌 듯 이상한 제품 광고나 넣고들... 괴로워서 인스타로 보는 양이 많이 줄었다. 대신에 자기 전에, 쉬는 시간에, 막간에, 아무 때나 귀여운 영상을... 남의 집 개 고양이 들을... 쥐도 새도... 열심히 보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추천에 뜨는 요리 채널들도 보게 되는데, 아무래도 쉽고 간단한, 원팟, 몇 분 같은 수식어가 들어가는 레시피는 잘 안 본다. 몇 번 따라 해 보았지만 결국 맛과 질감이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에 늘 후회하게 된다. 그렇다고 너무 from scratch인 레시피들은 발효 숙성 시간 장소가 모자라고, 베이킹 등에 스탠드 믹서가 필요하거나 가끔 바베큐 핏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어서, 뉴욕의 작은 아파트에서 그대로 따라 하긴 불가능하고, 어느 정도 기성품이나 반제품을 사용해서 대체한다. 뉴욕 탓을 하기엔 한국 1-2인 주거의 주방도 평균적으로 만만치 않게 좁아터져서 불만을 표시하기 좀 그렇지만, 한적한 교외 지역 단독 주택에 살면서 이것저것 뚝딱뚝딱 만드는 미국인들에게는 대적할 수 없다. 몇 가지 상온 발효를 시도해보았는데 환기의 문제인지 공기질의 문제인지 곰팡이가 너무 쉬이 피어버려서 포기했다.
사족으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한식 레시피들은 밥숟가락, 소주컵, 뭔지 모를 컵, 이런 것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유튜브에서는 비교적 계량 단위가 정확해지고 있다. 아마 전문가들의 대규모 상권 침해가 이런 현상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나 싶다.
근데 그렇게 유튜브 중독자가 된 것이 최근 한 두 달 새 일어난 일이라, 몇 개월 전에 올라온 것을 이제야 보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게 바로 양파값 폭락으로 인해 백종원 씨가 영상을 올려서 유행한 카라멜라이즈드 양파. 늘 한 번은 해보고 싶었는데 엄두가 안 나서 안 했던 것을 핑계 삼아 이제야 해보았다. 게으름이 심해서 한 번에 많이 할 거 아니면 안 하고 싶어 한다.
카라멜라이제이션Caramelization은 효소가 관여하지 않는 갈변 반응으로(효소가 관여하는 갈변 반응은 사과의 변색을 떠올리면 된다), 당류가 열에 의해 산화되면서 갈색과 방향 화합물 Aroma Compound을 통해 복합적인 향이 발달되는 과정을 말한다. 야채나 우유 및 유제품, 과일, 곡물 등에 포함된 포도당, 과당, 설탕, 유당 등의 당류에 110~203° C(230~397° F) 정도의 열을 가하면 카라멜화 반응이 시작된다. 과당이나 꿀로 인한 카라멜화 반응이 110° C의 가장 낮은 온도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색을 더 진하게 내고 싶다면 이를 이용한 음식을 만들면 된다. 생각보다 충분히 연구된 현상은 아니라고 하며, 어떤 주요 화합물(카라멜란, 디아세틸 등)이 어떻게 생산되는지에 대해서 잠시 찾아보다가 머리에 쥐가 나서 여기서 중단했다.
불 조절에 자신이 없다면 코팅 팬을 쓰는 게 낫지만, 맛은 스테인리스 쪽이 더 좋다(고 한다). 스테인리스는 수분이 증발하는 속도도 더 빠르다. 옆면에 경사가 있어서 수분이 빠져나가기 좋은 구조의 도구를 쓰는 것을 추천한다. 벽이 수직이고 높으면 수분이 잘 증발하지 못하고 고인다. 카본 스틸 웍을 쓰려고 했지만 코팅이 완전하지 않아서 약 8리터의 스톡 냄비를 사용하기로 했다.
인스턴트 팟, 슬로우 쿠커, 압력솥 등은 수분을 가두기 때문에 결국 수분을 날리는 시간이 따로 필요하며, 일부 제품은 뚜껑을 열기 전까지 상태를 볼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볼 수 있는 창이 있는 경우도 있다), 간단하고 중간에 계속 지켜보거나 저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수고를 덜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쪽을 활용해도 좋다. 압력솥의 경우에 양파죽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네이선 미어볼드 Nathan Myhrvold의 모더니스트 퀴진 앳 홈 Modernist Cuisine at Home에 압력솥을 이용한 레시피가 있는데, 뚜껑이 있는 유리병을 활용해서 양파가 물에 닿지 않게 찐 다음에 냄비에서 수분을 날리는 방식이다. 처음이니까 정공법으로, 많이 만들기로 했다. 다음번에는 압력솥을 사용한 레시피를 해 볼 생각이다.
양파의 종류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가 있는데 색이 다른 적양파나 샬롯을 비롯한 양파형의 부추 속 Allium 재료들을 섞어 쓰는 게 좋다는 말도 있고, 기본 yellow나 좀 더 단맛이 나는 sweet(또는 vidalia) onion을 쓰는 것이 좋다는 의견도 있다. 어떤 재료를 어떤 비중으로 어떻게 쓸 건지 조리 시간은 어떻게 분배할 건지 고민하기도 싫고, 나중에 따로 카라멜라이즈드 해서 섞어 먹어도 별 차이 없을 것 같아서, yellow onion 단일품종으로 결정했다.
프렌치 어니언 수프를 만들 거라면 양파는 꼭지에서 뿌리로 세로로 얇게 썰어야 한다. 양파채의 질감을 살리고 싶다면 휘젓지 말고 양파를 포개어 쌓는 식으로 조리해야 한다. 카레 등 질감이 필요없는 요리만 할 것이라면 굳이 질감을 살릴 필요는 없다.
레시피를 찾아보다 보면 물, 베이킹 소다, 설탕 등을 사용하는 각종 "빠른" 카라멜라이즈드 어니언 테크닉들이 있는데, 시간과 기운이 있다면 약간의 소금을 제외한 나머지는 추천하지 않는다. 필요 이상으로 더 달아질 수도 있고, 정확하게 말하면 정제당은 반응을 빠르게 만든다고 보기는 어렵다. 당밀 등의 이물질이 있는 비정제 설탕들은 반응을 빠르게 할 수 있지만, 특유의 맛과 향들이 있기 때문에 결과물이 달라질 수 있다. 베이킹 소다는 질감이 물컹하게 씹히게 되거나, 조직이 풀어져 죽처럼 되어 질감이 나빠지거나, 쓴 맛이 나거나 할 수도 있고, 컨트롤하기 어렵다. 소금은 처음에 물을 뽑아내는데 도움을 주지만 최종적인 요리에 방해가 되지 않을 양을 써야 하니,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는 것 같다. 최종적으로 간을 해도 되지만 밑간을 먼저 한다는 생각으로 소금을 눈대중으로 뿌렸다.
백종원 씨는 한식에 쓸 거면 버터나 올리브 오일을 피하라고 하는데, 높은 온도를 필요로 하는 요리나 계란 부칠 때를 제외하곤 그 두 가지 기름으로 주로 요리를 하기 때문에 방해가 될 거 같지 않아서 버터, 올리브 오일 반반으로 시작했다.
코스트코에서 양파를 비교적... 작고 소중한... 한 포대(약 4.5kg)를 사다가 시작했다. 정리하고 껍질 벗기고 씻고 써는데 대략 30분가량 걸렸다.
8리터 스톡 팟이면 충분할 줄 알았는데 2/3 정도 넣으니까 저을 수 있는 한계까지 차서 일단 중불에 올리고 숨을 죽이면서 남은 양파를 끼워 넣었다. 한 시간이 되기 전까지 센 불과 중불 사이에서 불을 조절하면서 양파에서 나온 물을 날리려고 노력했다. 첫 한 시간은 거의 양파 물이 끓는 상태였다... 이때는 망한 줄 알고 묻고 더블로 가는 상황...
너무 높은 온도에서 끓이면 양파가 다 분해될 거 같고 스톡 팟에서 짧은 시간 내에 수분을 증발시키는 건 불가능에 가깝겠다 싶어서 어느 정도 나올 수분이 다 나왔을 때 국자로 양파 물을 퍼내서 프라이팬 위에서 졸이고 추가로 양파를 돌려가며 카라멜라이즈를 해서 합쳤다. 수분에 당분이 녹아 있을 것을 고려해서 버릴 수는 없었다.
버터와 올리브 오일을 섞어 썼는데 계량을 했지만 중간에 잠시 불 조절에 실패해서 (물을 쓸 기운이 없었다) 오일을 살짝 더 썼더니 기름이 돌아다니는 질감이 되었으나, 이걸 넣으면 기름을 더 넣게 된다는 걸 감안하고 요리하면 큰 문제는 없을 듯하다. 사실 만족스럽지 않아서 색이 더 나게 하고 싶었지만 저녁도 못 먹고 몸져누울 것 같아서 중단하고 오늘 쓸 것만 빼고 소분해서 냉동했다.
S&B 골든 카레 매운맛 한 팩을 4인분으로 놓고 조리를 하는데, 1인분에 45g씩 책정해서 양파를 넣었더니 엄청나게 달아졌다. 평소에 단맛 나는 식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이건 과한 거 같다. 2인분에 40g씩 넣으면 적당할 것 같고, 다음에 카레 만들 때 포스팅을 하게 되면 그것도 맛이 어떤지 기록을 해야겠다. 우동 건면을 삶고, 서니사이드 업을 부쳐 얹어 먹었다. 쪽파는 많이.
다음 날 오야꼬동을 만들 때 생양파와 섞어 썼는데 밖에서 사 먹는 맛이 났다. 다른 것들보다 달달한 일본 요리들에 잘 어울린다. 생양파를 좀 볶은 후에 간장소스를 만들 때 같이 첨가해서 졸인 후에 닭고기를 넣고 불을 끄고 계란물을 붓고 뚜껑을 닫아서 익힌 후에 밥 위에 부어서 먹었더니 생양파만 썼을 때보다 맛이 훌륭했다. 돈카츠를 만들게 되면 꼭 네기가츠동을 만들 생각.
2020년 1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