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네 집을 완독 했다.
박완서 작가의 마지막 장편소설이라 할 수 있겠는데 오래전에 단편으로 발표한 후 연작으로 몇 편을 더 이어 써서 장편으로 완성하였다고 한다.
읽다 보면 장편 속의 단편이라 불려도 좋을 곳들이 있다.
특히 사촌조카 광수와 시어머니의 이웃사촌 춘이네 집 춘이에 대한 부분이 그랬다.
광수는 여자의 외사촌 언니의 맏아들이었다.
서글서글한 청년으로 잘 컸지만 공부를 못해서 대학시험에 떨어졌다. 똥통학교 지원해서 떨어지느니 괜찮은 대학 지원해서 떨어지는 게 낫다며 시험을 봤으니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그러면서 늘 하는 말이 명문대 시험 쳤다 떨어졌다고 으스대었다.
사촌언니는 장남에게 기대가 컸다. 사업자금을 대줬지만 벌이가 시원찮았고, 그렇다고 어디 취업도 안 하고.. 그러다가 집한칸 있던 것도 날려먹는다. 되는 일이 없으니 서글서글이 능글능글로 변했다. 어디 가서든 뻥이나 치고 다닌다. 가끔 놀러 와서 개기고 뭉개다가 보증을 서 달라거나 융자를 부탁한다.
야박하게 거절하진 못하고 얼마간의 용돈을 주고 보내곤 했는데 거기에 맛을 들였는지 자주 집에 들렀다.
한 가지를 꾸준하게 하지 못하던 광수가 이런 식으로 개개는 것 하나는 질리지도 않는지 느물거리며 잘했다.
그러다 남편의 소개로 중장비자격증을 하나 따서 월남으로 취업을 나갔는데 얼마간은 일을 잘하다가 차가 전복되는 사고가 나서 다리를 다치고 귀국하게 된다. (선한 의도로 했던 일이 이런 결과를 낳았다.)
사촌언니는 그때 장남이 보내온 돈을 착실히 모아 집 장만도 하고 미용사 며느리를 맞으며 가게도 하나 차려준다. 이후 마음 편히 눈을 감았는데.. 이후 문제가 생겼다. 아이들 내리 셋이 청각장애자로 태어난다.
그것의 원인을 좇느라 자신의 일가와 아내의 일가를 샅샅이 뒤지고 다니더니 결국은 이혼을 하고 주변 사람의 원성을 듣는다. 아이들의 미래를 도모할 시간에 나쁜 유전자를 찾아 헤매며 허송세월을 보냈으니 당연한 결과였으리라. 나중에 자식들을 이유로 다시 합쳐서 낳은 아이 둘은 문제가 없었다.
이후 얼굴이 훨씬 편해진 광수가 어느 날 놀러 와서 하는 이야기가 아이들의 장애의 원인이 고엽제였다는 사실을 확신한다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벌일 거라 호언장담을 한다. 거기에 그녀는 큰 혐오감을 느낀다.
p268
그는 변하지 않았다. 사람은 그리 쉽게 변하는 게 아니다. 그는 아마 생전 개개는 버릇을 못 버릴 것이다. 단지 개갤 수 있는 대상이 변했을 뿐이다. 평범하고 힘없는 사람한테 개개다가 국가라는 막강한 힘에 개갤 수 있게 되었으니 그 정도는 저절로 힘이 났을 것이다. 그 허세까지를 이해한다 해도 혐오감은 여전했다.
여자는 시댁의 둘도 없는 이웃사촌의 장녀 춘희가 미군부대에 취직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자신이 그만둔 자리에 춘희를 데려다 넣은 셈이다. 안정적인 벌이가 생기면서 춘희네 형편이 나아지게 되지만 사람은 환경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니.. 춘희는 집안의 가장으로 열심히 일하다가 한 미군과 사랑에 빠진다. 사랑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미국행이란 핑크빛 미래를 꿈꾸기도 했을 터인데, 나쁜 놈이 임신을 시켜놓고 도망가버린다. 춘희는 여자와 함께 애를 지우러 간다.
이후 춘희는 돈이 되는 일은 뭐든 다 한다. 양공주, 미제물건 판매 등등... 7남매의 장녀로 생계와 동생들 학업을 위한 삶을 살아간다. 훗날 그녀의 바람대로 미군과 결혼, 동생들까지 미국으로 불러들여서 안정적인 일가를 이루지만 춘희가 무슨 일을 해서 현재를 이룩했는지 가족들은 입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오래전에 박완서의 '친절한 복희 씨'를 읽었다. 거기에 모든 인간관계 속엔 위선이 불가피하게 개입되어 있고 그건 꼭 필요한 윤활유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박완서 작가의 소설들을 전부 읽은 건 아니지만 굵직한 줄기 하나를 말해보라면 인간의 불완전함을 있는 그대로 내숭 떨지 않고 보여준다는 것이다. 오욕칠정, 그 이상의 수많은 생각과 감정을 지닌 인간의 다양성을
윤리나 도덕에 얽매이지 않고 천진하게 드러낸다고나 할까?
그 남자네 집에 나오는 여자는 6.25 전후 폐허가 된 서울에서 살았다. 남자네 집도 지척에 있었다. 먼 친척뻘 되는 그 집의 연하 남자와 요즘말로 플러팅을 즐기지만 연애에 흠뻑 빠져 지낼 수 없는 현실을 직시한다.
그러다가 그녀는 적당히 남편감으로 손색없는 사람과 결혼을 한다. 기혼자가 되어서도 그 남자와의 관계는 이어진다. 소위 말하는 육체적 불륜은 없었지만 예전처럼 플라토닉 한 만남을 가진다.
책을 읽으면서 여자가 발칙하게 느껴졌다. 착실한 남편과 일상의 안온함이 지루하게 느껴질 무렵 그 남자를 만나는 모습이 이기적으로 보였다.
책에는 그 남자 외에도 여자의 어머니, 시어머니, 남편, 사촌언니의 아들 광수, 춘희 등 여러 사람이 등장한다. 다양한 인간을 보는 재미도 있었다. 앞서 이야기했던 광수와 춘희에 대한 이야기는 뒷부분에서 꽤 길게 나온다. 여자는 개개는 광수, 중절수술을 해야 했던 춘희, 그밖에 산뜻하지 않은 인간들의 모습에 혐오감을 느낀다고 했다. 말 그대로 책에는 '혐오'한다고 나온다. 그럴 수밖에 없는 형편에 놓이지 않은 그녀의 입장에서는 그랬을 수도 있었겠으나 좀 얄밉게 느껴졌다. 얄밉게 여겨지도록 작가는 여자를 내숭 없이 드러내었다.
p387
나는 이 나이까지 목격한 타인의 삶이나 이 세상 돌아가는 켯속에 대한 이해를 여러 번 수정하면서 살아왔다. 거의 자의 반 타의 반이었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책 뒷부분에 있는 박완서 작가의 딸 호원숙의 추모에세이 마지막에 있는 구절이다.
이 짧은 구절을 보면서 소설 속 여자에 대한 반감이 무뎌지는 것 같았다. 나야말로 어떤 잣대를 들이댄 것 같았다. 그들을 혐오했던 시기가 있었지만 시간이 가면서 아마도 그녀는 변했을 것이다. 삶의 이력이 켜켜이 쌓이면서 인간의 다양함을 수긍하는 쪽으로 계속 수정해 나갔을 것이다.
그 남자에 대한 감정도 처음엔 작은 부분을 차지하는 사랑이었으나 후엔 여러 종류의 사랑이 합쳐진 포괄적인 사랑으로 변화되어 갔다. 한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이 그만큼 커졌기 때문일 것이다.
책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애끓는 마음을 참을 수 없어 그 남자를 안았다. 그 남자도 무너지듯이 안겨왔다. 우리의 포옹은 내가 꿈꾸던 포옹하고도 욕망하던 포옹하고도 달랐다. 우리의 포옹은 물처럼 담담하고 완벽했다. 우리의 결별은 그것으로 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