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여선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
봄밤 (김수영)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靈感)이여
소설 '봄밤'에서 영경이 술에 젖어들어가며 자신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도 의식하지 못한 채 저 시를 읊조린다.
빅터 프랭클 같은 이는 인간은 이성으로 사유하는 존재이기 이전에 먼저 고통받는 인간이며 그것이 인간을 인간이 되게 하는 더 중요한 측면이라고 과감하게 말하면서 호모 파티엔스(homo patiens)라는 명칭을 제안한 바 있다. 그런데 나는 '봄밤'과 '이모' 같은 소설을 읽으며 호모 파티엔스를 달리 번역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고통은 '고통을 받다'라는 형태로만 사용되는데 이 경우 인간은 고통에 대해 수동적인 위치에 있는 것으로만 이해된다. 그러나 인간은 고통을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감당해내기도 한다. 환자(patient)는 견디는(patient) 사람이다. 그들은 고통을 받으면서 인생의 비참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고통을 견디면서 인간의 숭고함을 입증하기도 한다.
(안녕 주정뱅이 소설집 p259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글)
'봄밤'을 다시 한번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 가졌던 아픔과 답답함은 여전했지만 자만한 자의 목소리로 왜 악착같이 살지 못했냐고 할 수는 없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좀 더 독해지지.. 마치 영경의 언니들처럼 차라리 잘된 거라고 말하고 싶었다.
도저히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크나큰 고통 속에서는 까딱하면 자멸의 길로 발길이 가 닿을 수 있겠구나.. (영경은 이혼 후 아들까지 어이없이 빼앗기는 아픔을 겪는다.) 영경의 언니들처럼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그렇게 여우가 신포도를 대하듯 했다면 어땠을까.. 나라면, 어쩌면 그렇게라도 내가 살기 위해 그랬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람을 짓밟고 짓이기는 배신에 치를 떨었겠으나 거기에 내가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쳤을 테지... 생존본능의 말로는 이기심 말고 뭐가 있을까? 하면서.
수환의 삶은 또 어떠했나.. 주변의 사업 거래인이나 아내까지, 전부 그를 배신했다. 몸도 마음도 텅 비어버린 그는 공허한 눈동자의 영경을 알아본다.
서로의 공허함을 알아본 두 사람은 같이 살게 된다.
상대방에게 무엇인가를 줄 수 있거나 상대에게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 때 다가가는 사랑이 아닌, 공허함이 매개체가 되어 인연을 맺는다.
각각의 계절 소설집의 '하늘 높이 아름답게'를 읽었을 때처럼 이생망? 의 안타까움으로 울컥울컥 했다.
p267~268 신형철 님의 글을 또 덧붙인다. 이 글을 읽으며 아픈 속을 달랠 수 있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겪어야 하는 많은 불행들이 사회과학이나 사회과학의 눈으로 모두 해명될 수 있고 개선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인생'이니 '비극'이니 하는 말들이 과학에 미달하는 인식 수준에서 애용되는 감상적인 말로 보일 수 있다. 그들은 바다에서 295명이 서서히 수장되는 사건이 일어난 것도 과학적으로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고민해야지 감상적으로 접근할 일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그 말이 옳은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관찰자가 하는 말이다. 옳은 말은 관찰자가 하는 것이지 희생자 혹은 피해자가 하는 것이 아니다.
(중략)
지금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세상의 모든 말들이 다 위선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중략)
남에게 밧줄을 던져줄 때는 반드시 한쪽 끝을 잡고 있어라.
(중략)
문학이 위로가 아니라 고문이어야 한다는 말도 옳은 말이지만, 그럼에도 가끔은 문학이 위로가 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고통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의 말이기 때문이고 고통받는 사람에게는 그런 사람의 말만이 진실하게 들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