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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눅진한 브라우니 Jan 14. 2023

지 알고 내 알고 하늘이 알건만

박완서의 소설


내 모가지에 마늘 열접이면 고작인 것을, 감히 아파트 한 채를 이고 가려 했으니... 사람이 분수를 모르면 죄를 받는다니까. 그렇지만 아파트 한 채를 지 알고 내 알고 하늘까지 아는 일이건만.. 그렇게 감쪽같이 사람을 속여 넘길 수가 있담, 천벌을 받을 년...


박완서의 소설 '지 알고 내 알고 하늘이 알건만' 속에 나오는 구절이다.

1986년작 mbc 베스트셀러극장으로 방영을 했다.

진태엄마(정혜선)는 뇌출혈로 반신불수인 시아버지를 돌봐줄 사람으로 성남댁(정애란)을 데려온다. 성남댁은 모란시장에서 마늘을 팔던 여자였다. 시아버지(오현경)가 사는 13평 아파트에 같이 기거하면서 돌봐주면 시어머니처럼 생각하고 아파트도 주겠다고 사탕발림 같은 말로 꼬드겨서 3년을 시아버지 수발을 들게 한다.


당당한 걸음으로 머리에 인 마늘을 파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던 성남댁은 아파트를 주겠다는 말에 그래, 까짓 거 못하겠냐? 내 이 아파트라도 자식 놈한테 물려줄 수 있다면 못할게 뭐가 있겠나? 심정으로 3년을 진자리 마른자리 갈며 요양보호사 노릇을 하게 된다.

시아버지는 지극으로 자신을 돌봐주는 성남댁에게 며느리가 하는 말 믿지 말라고 하면서 다달이 주는 생활비를 아끼라고 잔소리를 한다. 반찬도 여러 개 놓지 말라고 한다. 그렇게 해서 돈이 남으면 모아서 그녀에게 모조리 준다.

성남댁은 속으로 말한다.

할아버지, 모르시나 본데요, 당신 며느리가 나한테 이 아파트 준댔어요... 그렇게 속으로만 되뇌면서도 푼돈 같은 돈을 미안해하면서 받는다. 시간이 갈수록 할아버지에게 정이 생기니 자식처럼 남편처럼 지극으로 돌보게 되는데...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성남댁은 아파트를 받지 못한다.

진태엄마는 유산상속 문제를 핑계로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기도 전에 집을 팔아버린다.

성남댁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혼자 사는 시아버지의 적적함을 달래기 위해 데려온 여자라는, 그저 그런 쑥덕공론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더 이상 그녀가 필요 없어진 진태엄마는 체면을 들먹이며 그녀를 구박한다.

순진하고 또 순진한 성남댁은 아파트를 바라는 마음이 분수에 맞지 않는 거라 되뇌며 마늘 열 접을 머리에 이고 당당히 걸었던 것처럼 차들이 달리는 고속도로를 걸어간다.


박완서의 소설 속 인물들은 그저 그런 (흔히 볼 수 있는, 나도 포함이 되는) 속내를 있는 그대로 까발리는 면이 아주 많다. 단순하게 선과 악으로 나눌 수 없는 인간의 속성을 말이다.

마치 말끔하게 도려낼 수 있는 암덩어리가 아닌, 전신에 퍼져 있어서 없앨 수 없는 질병을 가만가만 조심스럽게 다스리며 살아야 하는 속성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나도 모르게 내뱉거나 생각하는 것들... 이기적인 발로에서? 혹은 호기심에서?  험담 좋아하는 호사가 같은... 여하튼 그런 속성들을 박완서의 소설을 읽게 되면 한동안 머물면서 생각하게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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