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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눅진한 브라우니 Mar 24. 2023

영화 밀양

생각이 많아지는 영화

밀양을 다시 한번 봤다.

이 영화를 떠올렸을 때 어둡고 답답했던 했던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못보고 놓친 장면들도 많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는 복잡 미묘한 것들에 대한 이해가 예전보다는 그래도 좀 나아지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작은 빛이 너울너울 파장을 일으키며 산란하는 것이 보이는 것 같았다.


나이 서른에 우린 어느 곳에 어떤 얼굴로 서 있을까.

이런 가사의 노래가 있다.

삼십 대는 어떤 때인가.

뭘 안다고 하기도 그렇고

모른다고 하기도 그런.. 시절이 아닐까?


신애는 남편이 죽고 그의 고향인 밀양으로 아들과 함께 살러 온다.

남편이 입버릇처럼 밀양 가서 살고 싶다 했다고

아무 연고도 없는 곳으로 오다니..

어쩌면 핑계일 뿐,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처음부터 시작하고 싶었나 보다.

모든 걸 리셋하고 싶었나 보다.



밀양은 어떤 곳이에요?

카센터 사장에게 뜬금없는 질문을 한다.

삼십 대의 나이브함, 낯선 곳에 대한 막연한 동경..

피아노 학원을 차렸다.

동네 사람들과 잘 지내보고 싶은데 사람들은 겉으론 웃는데 거리감이 느껴진다.

자기들끼리 있을 땐 험담을 한다.


이상한 여자야, 남편 죽고 여길 왔다는 것도 이상하지? 글쎄 우리 가게 인테리어를 바꾸라대?


미용실에 신애가 있는 줄 모르고 그렇게 수군대다가 신애를 봤는데 놀라지도 않고 웃으며 인사를 한다.



앞집 약국주인은 전도하겠다고 신애에게

당신처럼 불행한 사람은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고 얘기한다.

남편 잃은걸 신애가 먼저 얘기한 건지 어쩐 건지

좁은 동네에 이미 소문이 퍼져버렸다.

남편이 없구나.. 하는 이,

남편 죽고 남편고향에 살러 온 이상한 여자라고 하는 이,

남편 잃은 불행한 여자라고 하는 이..


신애는 도시에 비해 작은 소읍에서 소박하고 수더분한 이들과의 만남을 기대했을까? 사랑했던 남자(신애를 두고 바람도 피우던)가 그렇게 가고 싶었던 곳이어서 그것 하나만으로도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나이 서른은 자기애와 자의식이 앞서기도 하고

내 뜻대로 풀리지 않는 것들이 서서히 아가리를 열고 다가오는 때이기도 하다. (뭐 어느 인들..)

사람 사는 곳은 산뜻함만 존재하지 않는다. 외지인을 경계하고 소외시킨다.

밑에서 내려다보고 있다. 선을 넘으면 안 된다.

무모함과 호기심으로 다가가면 안 된다.

신애는 부풀려서 스스로를 포장한다.

땅을 살 여유가 없어도 가진 척 있는 척을 한다.  

인정받고 싶어서 그랬는데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진다.

아이가 유괴되고 돈을 요구받고.. 아이는 죽고 범인은 웅변학원 원장으로 밝혀진다.


누구나 같을 수는 없는데 자꾸 내 삼십 대에 이입이 되어 신애의 삼십 대를 가늠하고 있다.

지나간 시간이 그저 아름다운 추억으로 여겨지는 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때 가능하다.

십 대와 이십 대 시절보다 삼십 대가 여전히 돌이키고 싶지 않은 이유는 때가 아직 안되어서일까?

여전히.. 나이 오십이 되고 육십이 되어도 생각도 하기 싫으면 어쩌나...

그 정도로 부끄럽고

돌이키고 싶지 않고 받아들이지 못해 내가 산산이 부서지는 때였던가..

기대하고 원했던 일들에서 한 발자국씩 물러서며 스스로 타협하기를 여러 차례.. 그게 많아지면 어쩌면 될 대로 돼라 심정이 되기도 하겠지.

남들 눈에 보일 것 같은 불행에 초점을 맞추고

남들 눈에만 보이는 불행을 나만 모르기도 한다.

아주 극악무도한 불행을 만나면, 그제야

아.. 나 참 더럽게 불행하구나. 라고 인정한다.

최소한의 자존심까지 삼켜버리는 잔인한 현실.. 신을 믿는다면 신애처럼 손가락질하고 싶어 진다.

하염없이 올라가고픈 풍선이 바람이 빠져 멈추고 내려가기 시작한다.


용서하라고 하는데

과연 용서가 그리 쉬운 일일까.

용서했다고 여기는 것 자체가 교만 아닌가.

나를 위한 용서... 용서도 결국은 나를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신애가 아들을 죽인 그 남자를 용서한다고 했을 때

위선 같았다. 아니, 위선이었다.



그 남자의 딸을 마주하는 장면들이 있었다.

아들이 없어지고 신애가 여기저기 헤맬 때 피아노학원 앞을 그 딸이 서성이던 장면

아들의 죽음 후 힘겹게 지내던 신애가 차를 타고 지나가다 그 딸이 깡패 같은 남자에게 맞고 있던 장면

맞고 있는 그 애의 처절한 눈빛과 신애의 두려운 눈빛이 교차한다.

신애가 정신병원 퇴원 후 김종찬(송강호)과 미용실에 들른다. 거기서 그의 딸을 또 만난다.

미용실 원장은 그 아이가 온 지 얼마 안 됐지만 헤어컷을 아주 잘한다고 칭찬한다.

그 애와 신애의 눈빛이 또 마주친다.

학교 그만두고 소년원 들어갔다 나왔다고, 거기서 미용기술을 배웠는지... 그전보다 훨씬 안정되어 보이던 그 아이가 머리카락을 자르는데 신애가 도중에 뛰쳐나온다.

어떤 마음이었을까.

불편했을 것이다. 아들을 죽인 남자의 딸이라니.. 그런데 묘하게 불편한 마음 한 구석으로 한줄기 옅은 빛이 들어오는 듯하다.

불량배에게 얻어맞고 있던, 겁에 질린 아이를 외면했던 마음이 안도한다.

그래도 여전한 불편함.. 신애는 반만 잘린 머리를 하고 집을 향해 걷는다.

걷다가 옷가게 주인을 만난다.

언제 나왔냐고 물으며 그녀는 신애에게 가게 인테리어를 바꿨다고 웃으며 얘기한다.


불행이고 행운이고.. 사람이 태어나서 살아가다 보면 겪게 되는 모든 일들을 어찌 불행과 행으로만 나눌 수 있을까..

나에게 주어진 일, 아니 이런 표현보다 그냥 내 앞에 떨어진 현실을 좋든지 싫든지 그 안에서 어떻게 풀어나가고 어떻게 기뻐해야 하는지.. 어쩌면 그런 생각들을 하기도 전에 그냥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조용히 사는 게 '삶' 일지도 모르겠다.

좋으면 좋아하고 슬프거나 힘들면 묵묵히 받아들여 인내하는 것...

서서히 알아가는 것.

내 의지로 안 되는 것들은 그저 시간의 흐름에 맡기는 것.

그게 삶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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