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눅진한 브라우니 Jan 09. 2024

베를린 천사의 시

빔 벤더스 영화

Wings of desire


아이가 아이였을 때

질문의 연속이었다

왜 나는 나이고

네가 아닐까

왜 난 여기에 있고

저기엔 없을까

시간은 언제 시작됐고

우주의 끝은 어디일까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은

꿈이 아닐까

보고 듣고 만지는 모든 것이

단지 환상이 아닐까

악이 존재하나

정말 나쁜 사람이 있을까

내가 지금의 내가 되기 이전에는

대체 무엇이었나

언젠가는 나란 존재가

더 이상 내가 아니게 될까


영화 속에서 천사가 나직하게 읊조리는 시이다.

중간 어느 부분에서 여주인공 마리온도 읊조린다. 눈에는 안 보이지만 곁에 있다는 걸 감지하듯.. 그녀는 누군가를 찾고 싶다고 형사 콜롬보에게 지나가듯 얘기한다.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콜롬보는 눈웃음으로 화답한다.


영화를 오래전에 봤을 땐 마리온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냥 두 천사, 특히 지상으로 내려와 살고 싶어 하는 그에게 주로 관심이 갔다.

마리온을 연기했던 solveig dommartin이 저렇게 아름다왔구나... 왜 예전엔 그런 생각이 안 들었을까? 화면이 훨씬 깨끗해져서 옛 영화를 방금 찍은 것처럼 볼 수 있어서 그런가? 아님 내가 달라진 것인가? 그녀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그 모습 마리온일 텐데.

기네스펠트로가 그녀를 많이 닮은 것도 같고.

영화가 끝나고 그녀를 검색해 봤는데 프랑스 여배우, 1961년 출생 그러면 지금 오십이 조금 넘은 나이인데.. 2007년 dead라고 뜬다. 

기분이 이상하다. 그녀가 죽은 줄 모르고 영화를 보고 나중에야 안다는 것이 이런 기분이구나...

왜 그렇게 일찍 떠났을까.

빔 벤더스와 영화를 많이 찍었는데 그의 뮤즈였을까?


무엇인가가 일어났다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놀라움이었다

어젯밤에 일어난 일인데

낮에도 계속되고 있다

지금까지

누가 누구인가

난 그녀 안에 있었고

그녀는 날 에워쌌다

타인과 같이 있다고

누가 감히 주장하겠는가

난 지금 함께 있다

유한적인 생명의 아이가 아닌

영원한 이미지를 잉태했다

지난밤 난 놀라운 걸 배웠다

그녀의 집에 갔었는데

마치 내 집처럼 느껴졌다

한 번이었다

한 번이었지만

영원이었다

그날밤의 일은

죽을 때까지 남을 것이다

그 속에서 살 것이다

둘이라고 하는 것의 놀라움

남과 여에 대한 놀라움

그것이 날 인간으로 만들었다

이제 난 안다

어떤 천사도 모르던 사실을


인간이 되어 마리온의 연인이 된 천사의 독백이다.

작가의 이전글 성탄절의 기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