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배경은 1986년. 80년대만 그랬겠나 싶지만 영화는 계급의식, 성차별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그게 현실이라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 시대를 초월하여 드러나는 인간의 날것을. 철학과 고민과 투쟁으로 천천히 개선시켜 나아가는 것이리라. 그러나 이도 사는 게 팍팍해지면 수면 위로 드러난다. 과연 '인간'의 그 생존본능에 기반한 이기적 본질은 부정당해야 하는 것인가. 부정한다고 없어지는가? 영화를 그냥 겉핥기식으로 보면 기분이 나빠진다. 불편하다.
운전을 하다 보면 욕이 저절로 나올 때가 있다. 1818, 병신은 기본이다. 아주 입에서 영어본토발음처럼 뷰웅, 시바 그런다. 소싯적 어머니가 우리를 키우면서 욕을 하더라도 십팔*이란 욕은 당신이 싫단 이유로 절대 안 하셨다. 주로 들었던 욕이 따무릴년아~ 였다. 그냥 들리는 발음대로 쓴 건데 들으면서도 따무릴년이 뭔가 했다. 알고 보니 딸 흘릴 년이었다. 고생할 년아~~ 그 뜻이었다. (생각해 보니 기분 나쁘네. 고생이나 지지리 하고 살라니.) 빈말이 있듯 빈욕도 있다 여기지만 빈욕이라도 욕은 자식한텐 하지 말자. 되도록이면. (이런 교훈을 얻어본다. ) 병신이란 욕. 이건 이상하게 어릴 때부터 싫었다. 야 이 병신아~ 살면서 이욕 한 번도 안 들어 본 사람 있을까? 차라리 등신아 가 나았다. 어감 때문인지 여하튼 참 싫었다. 욕이란 게 따지고 들어가면 장애인을 비하하고 여자를 비하하고 타자화 시키고 분리시키는 것이겠다. 마치 나는 거기서 홀연히 떨어져 있는 것처럼. (그게 인간의 한 면이겠지.) 성장하면서 본능과 사회화가 적절히 혼합이 되어가지만 내재되어 있는 이기심은 학벌과 성(sex)과 빈부로 계급을 머릿속으로 계산한다. 아, 쟤? 쟤는 나한테 안되지. 이런 생각이 있는 상태로 상대에게 잘해주다가도 그 상대가 나를 뛰어넘는 건 용납이 안 되는 것이다.
조용구(형사)는 백광호가 잡혀와서 취조를 당할 때 그에게 무지막지하게 발길질을 한다. 오른쪽 신발에 싸개를 입혀서(신발에 뭐라도 묻을까 그랬는지) 그 발로 찬다. 그러다가 밥때가 되어 짜장면을 시켜 먹는데 어이, 많이 먹어 자 하면서 젓가락 한가득 짜장면을 백광호 입에 넣어준다. 병 주고 약 주고 지맘대로다. (기생충의 박사장도 그러지. 참 친절하고 쿨한데 선을 넘으면 눈빛이 달라진다.)
어느 날 조용구가 박두만(송강호)에게 뜬금없는 질문을 한다. 형, 진짜 대학교 가서 엠티 가면 남녀가 같이 한방에서.. 어쩌고저쩌고 그래요? ..? 그래요? 몰라 인마. 난 전문대 나와서. 저기 4년제 나온 서태윤(김상경)한테 물어봐.
권기옥(여 경찰)이 비 오는 날 빨간 옷으로 위장했을 때 조용구가 그런다. 히야~~ 쟤가 평소엔 몰랐는데 저리 꾸미니 볼만하네? (여성을 애초에 동료로 인정하지 않는 듯이. 사무실에서 커피심부름은 권기옥 차지다.) 그녀가 평소 듣던 라디오에서 이상한 점을(비 오는 날 신청곡이 우울한 편지이고 그 곡이 나오면 사건이 일어나는) 포착하고 얘기하니 박두만이 비웃으며 한마디 한다. 소설 쓰고 있네~
박두만과 전미선이 만나는 장소는 허름한 여관이다. 동네에서 야매로 치료를 하고 주사를 놓아주며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는 그녀가 머물고 있는 곳으로 박두만이 주로 찾아온다. 마치 본향을 찾듯, 회귀본능 발동하듯이 그녀를 찾아온다. 그러면서 그녀가 수사에 팁이라도 주듯 얘기하는 것을 전문가의 얘기처럼 믿고 그대로 실행한다. 무당을 찾아가 보라는 말도 듣는다. 어느 날 그녀가 형사 사무실에 먼저 전화를 하고 만나자고 했다. 만나서 대뜸 하는 말이 왜 바쁜 사람 오라 가라 해? 였다.
영화의 부분 부분 생각나는 장면들인데 시대상을 반영하는 소설 같다. 지금 읽으면 참 불편하기 그지없는. 겉으로 드러난 투박스러움과는 상반된 내면의 온기를 읽어내라는 것인지 뭣인지... 하여튼 저러한 것들이 한번 볼 땐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서 두어 번 더 보고 있자니 심기가 불편했다. 뭐 살인의 추억뿐이겠나? 그때는 그때 통용되는 모습으로지금은 지금의 모습으로 여전히 내재된 차별과 특권의식,사대주의는 변함없는데. 변함없지만 그걸 알았을 때는 조금이라도 변화할 수 있지 않을까?